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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호독서당

옥수동의 역사 6

by HWP


세종은 젊은 문신들에게 휴가를 주어 독서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는 사가독서제(賜暇讀書制)를 실시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독서를 할 수 있는 장소가 자택(自宅)으로 한정되었으므로 독서에만 전념하기에는 미흡하였고 세조 때에 폐지되게 되는데 그 뒤 성종이 다시 실시하였습니다.

그러나 자택에서 하는 독서는 내방객들 때문에 연구에 불편한 점이 많고, 절에서 하는 상사독서는 유교정책의 견지에서 볼 때 불교의 여러 폐습에 오염될 가능성이 허다하므로 상설국가기구인 독서당을 두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청을 받아들여서 1492년(성종 23)에 남호독서당(南湖讀書堂)을 개설하는데 그 장소는 지금의 마포 한강변에 있던 귀후서(歸厚署) 뒤쪽 언덕의 사찰이었다고 하며, 이 절을 20칸 정도로 확장하였다고 한다. 이 독서당에서는 1495년(연산군 1)부터 1498년까지 매년 5, 6명이 독서하였으나, 1504년 갑자사화의 여파로 폐쇄되었다.

연산군의 뒤를 이은 중종은 인재양성을 위해 독서장려책을 적극 권장하였고, 1507년에 독서당제도를 부활하여 지금의 동대문구 숭인동에 있던 정업원(淨業院)을 독서당으로 만들으나 독서에 전념할 수 있는 마땅한 장소가 아니라는 주청이 끊이지 않음에 따라 중종은 1517년에 두모포(豆毛浦) 정자를 고쳐지어 독서당을 설치하고 동호독서당(東湖讀書堂)이라 하였으며 이곳이 지금 옥수동이 있는 독서당터입니다.

이때부터 임진왜란이 일어나서 소각될 때까지 동호독서당은 75년 동안 학문연구와 도서열람의 도서관 기능을 수행하게 되나 임진왜란 이후 복구되지 못하다가 광해군 때 부활하였으나 그 기능이 크게 위축되었다고 합니다.

옥수동 주민센터 5층에는 동호독서당을 재현해 놓은 공간과 함께 작은 도서관이 있습니다. 이전 독서당의 흔적을 이렇게 보전하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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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샷(58).png 동호독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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