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모녀 파리 여행기
제가 여행에 대한 IQ가 좀 쓸데없이 발달을 한 사람입니다.
20세기에 부지런히 여행해 둔 덕분에, 그리고 결혼을 하면서 남편 것도 추가한 덕분에 마일리지가 풍부해졌을 때 어떻게 하면 최대한 활용하여 여행할 수 있을까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죠. 마침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회사에 들어갈 때까지 얼마간의 틈 시간이 생기기도 해서 딸이 24개월 되기 전에 10% 항공료 베네핏을 활용하여 둘이 같이 비즈니스로 파리를 가는 원대한 계획을 세웠습니다.
가는 비행기 안에서 아이를 찍은 사진이나 동영상이 없는 것이 너무 아쉬워요. 20개월짜리가 울지도 않고 그 커다란 의자에 앉아 12-3시간을 여행하던 의젓한 모습은 제 기억 속에만 있고 딸아이에게도 보여줄 수 없으니 여행에서 사진만 남는다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닌 듯합니다.
저는 90년대 말, 파리에서 2년간 회사생활을 했었지만 98년에 서울로 돌아온 처음 파리로 여행을 가는 기회였고 딸을 데리고 가는 첫 해외여행이기도 해서 여행루트는 개선문, 샹젤리제, 콩코드광장, 샹드마스, 루브르, 에펠탑, 트로카데로, 오페라 등 파리의 랜드마크들과 베르사유, 유로디즈니, 퐁텐블로 등 근교의 대표적인 관광지 위주로 인증숏 촬영을 목적으로 잡았습니다.
사진 속 주인공이 지금은 20살이 넘은 당시 20개월이던 통통하고 귀여운 모습의 제 딸입니다. 사진을 보시고 짐작하는 분들도 계실지 모르나 아이가 거의 주저앉아 있죠? 걷기 시작한 지 겨우 1년밖에 안된 아기다 보니 오랫동안 걸어 다니는 것은 무리였는데 저는 짐이 된다는 이유로 무모하게도 유모차도 안 가지고 이 애기를 데리고 여행을 떠났답니다. 요즘 엄마 아빠들은 아이들 데리고 여행할 때 경량 유모차 꼭 챙겨 다니던데 당시 저희 유모차는 접어서 들고 이동할 수 있는 사이즈가 아니라 이 여행만을 위해 따로 하나 사기도 뭐해서 그냥 떠났는데 다행히 그때 파리에 살던 친구가 제 딸보다 1살 위의 딸이 있어서 여행 중에 유모차를 빌려주었으니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제 팔이 떨어진 여행으로 기록되었을 거예요. 그 덕분에 두 아이를 같이 데리고 다닐 때는 한 살 많은 친구 딸이 뒤에 서서 같이 태우고 이동하고 중간에 아이가 낮잠을 잘 때도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었어요.
베르사유 궁전에서는 아이들과 같이 간 여행이다 보니 내부보다는 정원 위주로 돌아보았어요. 베르사유의 유명한 정원과 트리아농 앞의 잔디밭을 신나게 뛰어다니면서 놀았던 기억이 딸에게 남아있으면 더 좋겠지만 이 사진만으로 나중에 딸아이도 딸을 데려가서 같은 사진을 찍어줘도 새로운 추억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아이를 데리고 파리를 방문하는 분들은 벵센느 숲에 있는 Parc Zoologique de Paris 동물원도 추천합니다. 지금도 그럴지는 모르지만 저희가 갔을 때는 홍학, 얼룩말, 기린, 하마 같은 많은 동물들을 정말 가까이서 울타리 없이 만나볼 수 있었어요. 아이들의 최애 공간이기도 했습니다. 뒷모습 사진밖에 없다는 건 엄마보다 동물을 더 좋아한 거 맞죠? 한참 이름 불러서 건진 앞모습 사진도 하나 있긴 하네요 ^^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최고의 여행지는 유로디즈니랜드였겠죠? 당시는 명칭이 유로디즈니였는데 지금은 파리 디즈니랜드로 바뀐 것 같네요. 기억이 왜곡되었는지 다른 여행과 혼선이 있는지 분명 퍼레이드도 보고 사진도 많이 찍은 거 같았는데 찾아보니 아이 사진밖에 없더라고요. 딸이랑 파리를 5번이나 갔었고 디즈니랜드도 파리, 도쿄, 홍콩, LA에서 4번이나 갔다 보니 여행의 기억들이 다 뒤죽박죽 섞여버린 거 같은데 혹시 다른 분들도 이런 경험 있나요?
사진마다 아이가 함박 웃고 있는 걸 보면 디즈니랜드는 어른들도 동심으로 돌아갈 수 있는 공간이지만 진짜 아이에겐 더없이 즐거운 곳이 맞는 듯합니다. 아래줄 가운데 사진은 한글도 못 읽는 애기가 가이드북까지 들고 있는 모습이 마치 꼬마 탐험가 같네요. 다행히도 디즈니랜드에서는 유모차를 빌려줘서 구석구석 돌아다닐 수 있었어요. 만일 걸리고 안고 다녀야 했다면 가봤던 아이가 좋아하건 말건 아마 애초에 포기했을 것 같습니다ㅜ.ㅜ
파리에 왔는데 몽마르트르에 가서 초상화 하나는 그려줘야죠? 이때 그린 그림에 아저씨가 저희 딸을 만화주인공처럼 그려주셨었는데 액자라도 했어야 하는 그 그림을 잃어버렸어요. 사진으로라도 완성본을 남겨둘 걸 하는 후회가 드네요. 지겨웠을 텐데도 모델로 조용히 앉아있던 딸을 보면 아마 그때부터 연예인의 끼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어요.
20년도 훌쩍 지난 여행을 정리하다 보니 그때의 기억이 소록소록 나면서 딸내미 어렸을 때로 돌아가서 다시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래서 할머니들이 손녀딸을 키워주시는 거 같기도 해요. 이제는 엄마품을 떠나 자기 인생을 살고 있는 딸이지만 조만간 또 한 번 같이 여행을 하고 싶어 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