덧칠

덧칠

by 지니샘

덧칠을 할 때 기분은 두 가지다. 기대되거나 구리거나.


한쪽 눈을 감으며 구도를 잡는다. 두 눈에 담았던 가늠할 수 없는 세상을 일정한 크기의 종이에 옮기기 위해서다. 몇 개의 구획으로 나누어진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퍼즐판이 되어버렸다. 전체적으로 느껴지던 세상에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가 보인다. 하나씩 겉으로 드러난 형태를 따라 그려본다. 정확하지 않아도 괜찮다. 약간의 기술을 가진 내 손에서 다시 세상이 만들어진다. 회색빛 스케치에 생기를 불어 넣을 시간이다. 색칠을 할 때는 있는 그대로 똑같이 재현할 수도 있지만, 내가 느꼈던 감정을 투영시켜 나만의 것으로 재창조 할 수도 있다. 도구가 지나간 자리마다 사람에게 이름이 생기듯 존재를 갖추어 간다. 그림 안과 바깥은 완전히 똑같은 색을 흉내낸다 하더라도 결코 같을 수 없다. 이분법적인 선 긋기라기 보다는 본디 세상과 내가 만들어낸 세상은 다르지 않은가. 예술이 보는 사람의 몫이라면 같을 수도 있지만. 한폭의 새로운 세상이 만들어 지는 순간이다.


좀 더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가 멀리서 지켜본다. '색을 더 풍성하게 만들자' 누가 보면 왜 그러냐 말리는 행동을 한다. 빛에 따라, 구도에 따라, 관점에 따라 내가 보는 세상이 바뀌는 것처럼 화폭에 담은 세상은 색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더 풍성하게 만들어주기도 하고 부조화를 강조시키기도 하고! 칠하고 봐야지 알 수 있는터라 기대감에 추가되는 색을 가져간다. '한 번 만 더 칠하면 좋을 것 같은데' 후회를 담은 구린 감정이 올라온다. 아까 왜 안칠했냐고 좀 더 진하게 했어야지 라는 자책이 밀려와 잠시 몸을 뒤로 뺀다. 이렇게나 후회하고 다시 하기 겁나 하는 이유는 혹시나 하는 마음 때문이다. 덧대어 칠해진 부분이 너무 티가 날 수도 있고 지우기도 쉽지 않으니까. 사실 어느 쪽이든 얼마나 더 좋아질지 상상하며 좋아서 방방 거린다고 도구를 들고 뛸 때도, 조졌다를 반복하며 한숨과 함께 덧칠을 할 때도 있다.


감정들이 겹쳐진 그림을 완성한다. 어쩌면 그림이 완성되기 전까지 나는 양날의 검을 번갈아 쥐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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