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통수가 얼얼한 요즘

교육

by 지니샘

대학원에 와서 책을 읽고 수업을 듣고 질적 연구를 시작하면서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에게 뒤통수를 많이 맞고 있습니다. 사실 뒤통수를 제가 대주러 가는 것이기도 합니다. 책을 읽고 수업을 듣다 보면 이제껏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것들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유아 교육 이론 해체하기’라는 책이었습니다. 유아교육을 전공하고 유치원 교사를 하면서 이때까지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발달, 진보에 대해 의심하면서 많은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내가 하는 말 하나하나, 행동 하나하나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게 젖어든 사회적 환경 때문에 비롯된 생각과 행동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나를 컨트롤하지 못하는 것이 과연 나인가 하는 존재에 대한 생각도 듭니다. 나를 구성하는 것은 과연 나에게서 만들어진 것일까 하는 근본적인 물음까지 던지게 됩니다. 내가 나에 대한 확신이나 믿음이 많았구나, 그리고 그 확신은 내가 아닌 외부의 거대한 이론에 의해 만들어진 것일 수 있구나라는 깨달음에 혼란스럽기도 합니다.

들뢰즈 철학을 공부하며 가랑비에 옷 젖듯 젖어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 생각은 제가 마른 상태임을 가정하고 한 이야기였습니다. 이제야 깨달은 사실은 저는 이미 발달이론에 푹 절여져 있어서 여기서 벗어난다 하더라도 쉽게 마르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더욱 말리려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들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고 싶다는 꿈을 가진 교사로서 '바람직하다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방향이 바람직한지에 대한 고민'보다는 '내가 가진 생각이 바람직한 것이 맞아, 이쪽으로 따라와'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저를 역사 속 발달심리학자들이 이끌고 있었다는 생각에 소름이 돋습니다. 이제는 계속해서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야겠다고 다짐합니다. 바람직하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국어사전의 정의는 '바랄 만한 가치가 있다'였습니다. 교육자로서 아이들에게 바랄 만한 가치라는 것을 무엇으로 상정해야 할지 다시 정립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나는 아이들의 어떤 모습을 바랄까? 라는 질문부터 시작하게 되었고, '아이들이 자기 자신을 알면서 건강하게 웃고 즐겼으면 좋겠다'는 답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를 아는 것이 우선시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로서 내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자각하고, 내 감정을 느끼고, 주변의 영향을 받더라도 나를 잃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아름다운 이상을 현실의 교실에서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까 하는 또 다른 질문을 낳았습니다. 아이들을 발달이라는 하나의 틀에 가두지 않고 그들 각자의 온전한 존재를 존중하는 과정은 제가 이제껏 배워온 방식과는 너무나도 달랐습니다.

사실 지금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책을 읽고 질문을 던지지만,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는 혼란에 휩싸여 있습니다. 그러나 이 혼란은 답답한 상태가 아닌 새로운 시작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알고 있는 것들을 다 토해내고 거기서 하나씩 질문을 던지고 대답하며 자료를 찾고, 그에 영향을 받으며 교사로서의 나를 다시 정립하고자 합니다. 교육에 대한 생각의 틀을 재구성한 교사로서 아이들을 다시 만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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