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로이탈
들뢰즈 세상 속 홈 파인 공간과 매끈한 공간이 점점 내 삶을 물들여 간다. 잉크가 번지듯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홈 파인 공간이 생겨 거푸집이 만들어졌네‘, ’매끈한 곳으로 계속 그렇게 의문을 가지자‘ 나의 일상 속에 언어를 사상을 철학을 침투시킨다. 잠식 당하기 보다는 그 속에서 한판 놀아볼 작정이다. 더듬거리면서 나에게 파인 홈을 문질렀다가 언제 갔는지도 모르게 미끄러져 보고 싶다.
수업 시간에 탈주선과 영토화 이야기를 듣다가 지금 보다 말랑한 머리로 미끌리던 내가 생각났다. 처음 이디야 알바를 하러 갔던 날, 매니저님은 자신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레시피는 여기에 있고 초코라떼를 만들려면 여기 있는 모카 펌프를 두 번 넣으면 돼” 지시에 따라 나는 컵을 들고 짜넣기만 하면 되었는데 말 잘 듣는 손에 비해 머리는 ’모카 펌프가 초코네! 이거 두 번 아니라 세 번 넣으면 더 맛있는거 아니야?‘ 쭉 뻗어나간 길을 따라 입까지 이르렀다. “이거 세 번 넣으면 더 맛있는거 아니에요?” 헤헤 웃는 나를 보며 희안한 애가 왔네 라는 표정을 짓던 매니저님은 “너 안되겠다, 너 레시피 다 외워와 알겠지?” 내 앞에 삽을 하나 던져주고 나한테 파라고 말했다. 또 말은 잘 듣는 나는 삽으로 몇 번 땅을 깨작거리고 “레시피 못 외우겠어요” 찡찡 거렸다. 알바를 하면서 내 음료를 만들 때 말고는 레시피를 보고 따라했다. 경제적인 이유, 사회적인 상황을 모두 이해한 나에게 조그마한 홈이 생겼다. 새롭게 취직을 했을 때도 모두가 ”얘들아 바르게 앉으세요“ 하면서 일명 양반 다리를 가르치는 것이다. ‘아니 왜 저게 바른 자세야? 바르다는게 뭔데? 바른 자세가 뭔데?’ 네이버에 바른 자세를 검색하다 내 말에 동조하듯 양반 다리의 부작용에 대해 이야기하는 포스팅을 읽고 ‘나는 바른 자세로 앉으세요 라고 말하는 교사가 되지 않겠어’ 휴대폰 잡은 손을 불끈 쥐었다. 왜 꼭 바른 자세로 아이들이 앉아서 이야기를 들어야 할까 정말 고민을 많이 했다. 편하게 누워서도, 엎드려서도 충분히 이야기는 잘 들을 수 있는데 말이다. 스케이트를 신고 세상 위를 쭉쭉 달렸다. 그러다 표지판이 하나 세워졌다. 공개 수업날, ”선생님반 애들은 왜 누워서 이야기를 들어요? 바르게 앉아서 아이들이 집중해서 이야기를 들어야지요. 바르게 앉으면 허리도 펴지도 성장기 아이들이 바르게 자세를 잡는다는게 얼마나 중요합니까” 관리자분의 이야기를 듣고 스케이트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그리고 바른 자세를 다시 한 번 뜯어서 생각했다. 허리를 펴고 다리를 구부려서 굽히기는 하지만 몸의 균형을 맞추면서 안정을 취하는 자세, 명상 할 때도 이 자세를 추천하긴 한다. 누워서 하는게 아니라. 스케이트를 벗고 그 자리에 앉았다. 내가 앉은 자리에 내 엉덩이만한 홈이 파였다. 그 후로 나는 “얘들아 바르게 앉아야지요” 허리를 펴고 성장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주는 교사가 되어 있었다. 그랬던 두 명의 내가 강의실에 앉아 교수님 수업을 듣는 중에 찾아왔다. 강의실 의자에서 그들을 마주한 나는 탈주선을 그리워했다. 수업이 끝나면서 “저는 이제 탈주선을 많이 찾으려구요!” 포부를 당당하게 밝히고 울퉁불퉁 길을 걸어나갔다. 홈도 파이고 매끄럽기도 한 그런 길이었다. 땅에 구멍이 난 줄 모르고 달려가는 척 미끌거리는 척 하지 않고 비우고 출발해 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