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의 잔상

잔상

by 지니샘

오늘로써 확실히 알게 되었다. 노래방을 가고 싶지 않다. 누군가에게는 일상일 수 있지만, 나에게는 이상하고 슬프기도 하면서 동시에 또 다른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묘한 긴장감까지 동반한달까.


내가 살아가고 있는 곳은 마트가 없고 카페, 술집, 밥집이 몇 개 모여있는 시골마을이다. 도파민의 절여진 내가 안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상가 이층에 딱 하나 있는 코인 노래방 덕분이었다. 도시에 가도, 시골에 가도 사람 사는 곳에 코인 노래방 하나가 있는지를 유심히 살펴 보는 나에게는 오전 11시부터 새벽 4시까지 운영하는 코인 노래방 하나가 큰 위안이 되었다. 편도 저 아래에서부터 올라오는 흥이 입 전체를 감싸쥐면 에코 빵빵하게 널리 널리 바깥 세상을 구경시켜주고 싶어 혼이 나던 나, 언제 어떻게 나오고 싶을지 모르고 안달난 흥을 달래기 위해 꼭 필요한 곳이 노래방이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혼자 가기에 부담이 없는 코인노래방은 나에게 제격이었다.


매일 매일 노래방을 가도 갈 수 있다는 사람이 바로 나였다. 언제나 가고 싶고 노래 부르고 싶다는 마음이 내제하고 있어 노래방 옆을 지나가면 버튼을 누른 것처럼 계단을 오르 내리고 싶어졌다. 그래서 시간이 나면 주변 코노를 검색해 노래를 부르러 가기도 하고, 필이 통하는 친구를 만나면 필수 코스로 가고, 마음을 달래며 감성에 젖기도 했다. 들어가면 생각보다 많은 지출을 해도 더 크게 만족하고 돌아왔다. 나는 그런 사람이구나, 노래방을 지나치지 못 하는 속히 흥이 많은 사람이구나 했다. 그리고 언제까지나 영원히 변치않을 성향을 가진 사람이라고. 나를 표현하는 진리라고. 어쩌면 그러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영원한 진리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1분, 1초에도 사람은 저마다 모든 것이 변하기 때문이다. 아니 사람이 변하지 않는다 해도 영원과 진리는 이 말 자체로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영원이고 싶고, 진리로 삼고 싶은 그 때 그 사람들의 믿음일뿐. 언젠가 변화를 체화한 사람은 믿음의 잔상, 영원과 진리라는 단어를 두고 나를 추억하며 ’그게 영원하던 시절이 있었지‘ 하고 시절이라는 또 다른 개념을 말한다.


업무 강도가 올라갔던 작년, 길을 걷다 발견했다. 동네 잘 아는 코인 노래방 옆을 지나 가면서도 계단을 오르고 싶지 않아 했다는 것을 말이다. 유레카 같은 큰 발견에 곧장 원인을 탐구 하기 시작했다. 야근이라는 이슈가 몸을 지치게 해 당시에 지나가면서도 장소가 존재함을 인식하지 못했다. 몸이 지치니 장소에 대한 열정이 잊혀졌다. 첫 번째 변화였다. 몸이 회복되고 나서 또 언제나처럼 ’노래방 가고 싶다‘ 를 되뇌이는 직장인의 두 번째 변화가 나타났다. 어쩔 수 없는 경우를 빼고는 혼자 노래방에 가는 날이 적어졌다. 재미가 없었다. 혼자 가는 날은 영상을 찍었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이 멀어진달까 혼자가 반복되자 일상에서 종종 노래방을 잊었다. 번화가에서 눈으로 코인노래방을 쫓는 습관은 여전했지만 늘상 감기던 ’노래방 가고 싶다‘ 가 이따금씩 나타났다. 대망의 이번년도, 지금 현재 잘 자고 일어나 체력도, 장소도 존재하지만 노래방에 대한 열망과 열정은 사라졌다. 불현듯 가고 싶기는 하지만 열정은 사라졌다는 표현이 적절했다.


섭섭하다. 내가 좋아하던게 더이상 내 것이 아닌 것 같은, 슬픈 마음까지 든다. 이런 감정을 느낀다고 해서 다시 열정이 불타오르지도 않는다. 그저 흘러가는 일이자 감정이다. 넉넉하던 땔감으로 영원히 내 마음 속에서 타오를 것 같았던 불이 타닥 소리를 내며 푸르게 변하고, 불씨만 남아 불을 밝힌다. 아직 사라진 것은 아니기에 흥은 있지만 매일 같지는 않다. 말하고나니 더 차분해진 정서가 편안함을 가져다 준다. 아이러니하게 서운하면서 동시에 평안하다.


연기와 같이 어우러지는 잔상이 잠깐의 불씨를 밝힌다. 이번주, 노래방에 가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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