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스러운 아이
나이가 들수록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유치원에 다니는 전 유아를 안다. 알려고 한다. 1년을 매일 같이 눈 부딪히고 살다보면 알 수 밖에 없다. 더군다나 내 관심사는 아이들이니까. 내 스스로 누군가를 만날 때 평가나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그 자체를 봐주는 사람이 되겠다 다짐하지만 굳이 이전의 기억을 불러와 ’이 친구는 괜찮고, 저 친구는 좀 힘들겠다‘ 같은 수식어를 붙이고야 만다. 바로 뒤따라서 ’아 안하기로 했잖아‘ 하면서도 말이다. 그러고 그 아이를 보면 어떠냐고? 반반이다. 사실 성립될 수가 없는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기준에서 내가 가진 경험과 나를 두고 바라보니까. 나에게서는 그럴 수도 있지만 내가 바라본 그는 그가 아니다. 지금 상황에서 저 행동을 하고 싶은 사람일뿐이다. 자신만의 이유를 통해서.
나는 평가를 받고 있음을 아는 아이였다. 누군가 “잘한다” 해주면 말을 한 번 더 듣고 싶어서 노력했으니까. 내가 나를 생각해 볼 틈도 없이, 순간의 감정에는 집중하지만 거울 속 나를 보려는 눈 없이 오히려 귀를 열고 나에게 하나씩 입히고 입었다. 번지르한 나를, 물론 싫어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주변에는 별로 없었다. 사람을 좋아하는 것도 있지만 공기에 따라 사람이 좋아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내가 있었다. 이것도 항상 그렇지만은 않았지만 그런 나도 있었다. 직접적으로 “어른스럽다” 라는 말을 듣지는 않았지만 대신 “야무지네” 라는 표현을 입었다. 이를 위해 야무지기 위한 나로 업그레이드 해 나가기도 했고. 내 욕심도 더해졌기에 힘들고 마음이 무겁지는 않았지만 그보다 나는 이러한 수식어를 가진 사람이구나 라고 단정지어져갔다.
작년 아이들을 생각하다 “이 친구는 어른스러워요” 라는 말을 쏟아내며 인수인계 하던 내 모습을 보았다. 글자도 빨리 마스터 하고 나에게 편지를 자주 써왔다. 나만 보면 눈을 반짝이며 ’어떤 사랑을 줄까‘ 고민하는 모습도 보였다. 여자 아이들 사이에서 리더 역할을 하던 아이였고 그림책도 읽어주고 친구들을 도와주기도 했지만 나에게 티나지 않게 다른 아이들을 조종하기도 하던 아이였다. 자신의 주변 공기 흐름을 읽으며 눈을 재빠르게 굴릴 줄도 아는 걸 나는 나중에서야 보았다. 어른스럽다는 말이 P로서만 작동하지는 않은 듯 했다. 그럼에도 나보다 사회에 빠르게 집중해 버린 아이가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조금만 더 멋대로 해버리지 응원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정석대로 모든걸 지키는 아이는 아니었으나 차라리 땡깡을 부리며 말하고 싶은 건 하고 안하고 싶은 건 안해버렸으면 좋겠다 했다. 작정하고 내가 판을 깔아줘도 이 눈치, 저 눈치 조금씩 힐긋힐긋 움직이는 눈에 지금 현재의 아이를 인정해 버리기로 한 나였다. 그래도 이따금씩 마음놓고 울어버리거나 한껏 표현할 수 있게 시간도 마음도 공간도 나도 주었다.
이또한 모든게 내가 아는거다. 다만 나이가 들수록 상관없었던 무언가가 상관있게 되고 감정이 코스터를 타기도 한다. 변하고 있다. 나였던 내가 점점 내가 되고 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