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은 커피
어쩌다 식어버렸을까, 차가운 온도 위를 적시는 공기가 무섭다. 책상 위 겨우 제 몸을 얹은 물체, 눈이 휘둥그레진채로 하얀 종이컵을 바라본다. 언제부터 여기에 있었던걸까. 어디에서 온 걸까. 바라보는 내 시선 속 잡념이 더해져 진해져버린 커피를 바라본다. 따끈할 때 남았을 향기도 어느샌가 묻혀버렸다. 손댈 생각도 않은채 그저 바라본다. 시각으로 식어빠진 향을 맡고 아이스와는 다른 맛을 느낀다. 더불어 그를 위해 저 하얗디 하얀 표면을 집는 손까지. 동그래졌던 눈이 커피 색을 빨아들인다. 전해진 감각으로 눈깔이 꼭 뭐와 같다.
_멜로가 체질이라는 드라마의 한 장면이 생각났다. 요새 쇼츠에 절여져 있어서 온갖 예능에 드라마가 떠다니지만 식은 커피라는 나에게 낯선 글자들로 인해 한때 내가 좋아하던 드라마의 특정한 장면이 재생되었다. 이또한 얼마전 쇼츠에서 보아서 번뜩였던 것 같다. 세 명의 친구가 땅콩집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가 실린 드라마다. 그 중 한주라는 친구가 아들을 데리고 와서 미혼모이자 직장인으로 살아간다. 한주의 이야기는 직장과 아들이 거의 전부다. 근데 둘 다 임팩트가 너무 강해서 유쾌하다가도 금새 진지해지고 생각을 하게 만든다. 저 커피는 어디나왔냐면, 직장에서. 내가 띄엄 띄엄 본 것도 있지만 내가 볼 때마다 한주라는 캐릭터는 자리에 앉아있기보다 사장님방과 직장 내 일부의 공간에서 움직인다. 정확하게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모르지만 내가 그린 장면에서 식어빠진 커피는 한주네 직장, 사장님방에 있었다. 종이컵이 아닌 텀블러도 아닌 그런 잔에 담긴 커피고 사실 커피의 내용물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른다. 커피잔만 클로즈업 되고 뒤로 사람들의 모습이 뿌옇게 지나간다. 그러다 커피가 흐려질쯤 사람들이 선명해진다. 어떤 색이고 모습인지, 향은 더군다나 맡을 수 없는 물질이 내 오감을 자극한다. 눈깔에는 쓸쓸함이 담긴다. 직장이라서 그럴까, 커피가 식어서 그럴까, 아무도 찾지 않아서 그럴까. 사장님방이라는 특수한 곳에 놓여진 커피가 사람들을 뒤에 두고 아무도 찾지 않는 그 커피가 자꾸 나를 끌어들인다. 생각하고 또 생각해 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