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마음의 시차

by 지니샘

내 인생에는 떠올릴 때마다 매번 감정이 변하는 사건이 하나 있어.


어렸을 적 내가 여덟 살에서 아홉 살이 될 무렵이었어. 동생이 갑자기 발뒤꿈치가 아프다고 해서 병원에 갔더니 암이 있다는 거야. 희귀병이었지. 결국 엄마랑 동생은 서울에 있는 큰 병원으로 가게 됐고, 아빠랑 나만 집에 남았어. 그런데 엄마가 올라가기 전에 걱정이 많으셨나 봐. 아빠는 새벽에 나갔다가 밤늦게나 들어오시니까 초등학생인 나를 혼자 챙기기가 힘드실 것 같았거든.

당시 우리가 살던 아파트 9층 이웃들은 정말 친했어. 아무 집이나 들어가서 "이모 밥 주세요" 하면 기꺼이 밥을 주시고 매일 만나서 삶을 공유할 정도였으니까. 9층 사람들 모두가 그랬어. 그래서 나랑 나이가 비슷한 아이를 키우던 옆집에서 우리 집 사정을 다 알고는, 나를 같이 학교 보내게 본인들 집에 맡기라고 하셨어. 그렇게 나는 바로 옆집, 나보다 두 살 많은 언니가 있던 집에서 살게 됐지.


처음에는 동생이 아픈 게 얼마나 심각한 건지 잘 몰랐어. 그냥 큰 병에 걸렸나 보다 하는 정도였지. 엄마랑 동생이 내 곁에 없다는 게 너무 슬프긴 했지만, 내가 좋아하는 옆집 언니 집에서 사는 건 또 새로운 일이라 여러 감정이 공존하고 있었어. 옆집 이모는 나를 진짜 딸처럼 대해주셨고 나는 그 집에 있는 동안 정말 그 집 가족이 된 것처럼 배려받으면서 잘 지냈어.


그래도 진짜 우리 엄마, 아빠가 아니고 우리 가족이 아닌 건 어쩔 수 없더라. 하루는 머리가 너무 아파서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는데 이모한테는 아프다는 말이 안 나오는 거야. 그래서 언니랑 장난치는 척하면서 하루 종일 누워만 있었어. 저녁에 이모가 밥 먹으라고 해서 겨우 일어났는데 밥을 한 번 씹을 때마다 머리가 너무너무 아픈 거야. 결국 밥을 먹다가 울음이 터졌고 그제야 내가 고열이 나는 걸 알아차린 이모가 나를 병원에 데려가셨어. 분명 그 집도 너무 편했는데 엄마나 아빠한테 칭얼거리는 것처럼은 못하니까 어린 나이에도 그걸 인지하고 행동했던 거지.


아빠는 바로 옆집인 원래 우리 집에 계셨지만 생활 패턴이 너무 달라서 잘 만나지 못했어. 나도 아빠랑 못 만나는 게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하루는 가정통신문 서명을 받으러 집에 잠깐 들렀어. 그때 아빠가 혼자 잡채밥을 시켜서 TV를 보며 드시고 계시더라고. 집에 들어가자마자 그 모습을 보는데 눈물이 확 났어. 우리 가족이 다 흩어져 있다는 사실이 너무 슬펐고 원래는 모두가 함께해서 온기가 넘치던 집에 아빠만 덩그러니 남겨진 모습이 마음을 아프게 했거든. 아빠 앞에서는 안 울려고 엄청 참았는데 결국은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어.


동생은 정말 그 큰 암을 이겨내고 1년 만에 병원에서 나왔어. 그동안 엄마는 동생을 살리려고 엄청난 노력을 하셨지. 나는 내가 안심할 수 있는 환경에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그저 엄마와 동생이 어서 돌아오기만을 바라왔어. 하지만 그런 시간들을 보내며 나는 울고 싶거나 슬프고 화나는 감정을 표현하기보다 참는 법을 배우게 된 것 같아. 눈물을 많이 참을 수 있게 되었거든. 모두에게 너무 감사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은 참 슬픈 시절이었어. 다시 가족들이 모였을 때, 마치 퍼즐이 딱 맞춰진 것처럼 폭싹 안겨지는 느낌이 들었는데 그때 비로소 집이 따뜻하다고 느꼈단다.


중, 고등학생 사춘기 때는 이 이야기가 내 인생의 고난이자 시련이라고 생각했어. 사실 그렇게까지 모질고 힘든 환경은 아니었을지 몰라도 그때 내가 가장 많이 울고 싶었고 상황을 떠올릴 때마다 눈물이 날 것 같았으니까. 대학생이 되어서는 여전히 슬프지만 그러면서 내가 참 많이 철이 들었구나 싶더라고. 그 어린 나이에 여러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참 많이 노력했다는 걸 깨달은 거지.


서른이 된 지금은 이 기억이 가슴 아프긴 해도 슬픔보다는 당시 한 명 한 명의 마음들이 보이기 시작해. 누군가는 죽어나가기도 하는 병실에서 암과 싸워야 했던 동생, 그런 자식을 보며 대신 아프고 싶었을 엄마, 가족도 못 보고 혼자만의 생활을 견딘 아빠, 식구가 하나 더 늘어난 상황을 감당해 준 옆집 가족들, 그리고 그 속에서 내 감정이 짐이 되지 않게 숨기려 애쓰던 나까지. 이제는 1인칭이 아니라 전지적 작가 시점처럼 그때를 볼 수 있게 된 거야.


이 경험은 지금의 나에게 참 많은 영향을 주었어. 어릴 적 아픔을 숨기려 했던 행동은 타인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는 무의식적인 배려를 가르쳐주었거든. 덕분에 성인이 된 지금도 직장이나 관계에서 상대방의 입장을 먼저 고려하는 태도를 갖게 됐어. 쉽게 불평하거나 의존하기보다 스스로 해결하려는 강한 책임감을 가지게 되었고 사소한 상황에도 더 많이 감사하게 되었지.


또 그때의 상황을 다각도로 이해해 본 과정 덕분에 삶의 문제나 갈등이 생겨도 섣불리 판단하지 않게 됐어. 한 상황에도 동생, 부모님, 옆집 이모처럼 다양한 관점이 존재한다는 걸 깊이 이해하니까 복잡한 인간관계 속에서도 나만의 해결 방식을 찾아가게 되더라고. 결국 이 모든 일은 나에게 연결의 가치를 알려주었어. 단절보다는 연결과 온기를 추구하는 것이 내 삶의 동력이 되었고, 나는 오늘도 그런 삶의 태도 속에서 사람들과 따뜻하게 연결되며 살아가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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