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불
종종 와글와글한 교실 속 한 친구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린다.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는데도 말이다. "나는 운전을 안할거야. 왜냐면 나는 융통성이 없어서 운전하면 나도 위험하고 다른 사람들도 위험할 것 같거든!" 그 시절 즐겨하던 아이엠그라운드 자기 소개하기 놀이에서 하던 덴탈큐 손짓처럼 쭉 뻗은 검지를 이마 위쪽으로 가져다대는 친구를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운전은 융통성이 없으면 힘든거구나' 처음으로 운전하는 나를 그려보고 나는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지던 때였다.
익숙하지 않은 길이라 네비를 힐긋 힐긋 보았다. 옆에 타고 있는 선생님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방 500미터 앞에서 좌회전입니다" 명랑한 목소리가 내 귀에 들어와 다른 귀로 나가지 못하고 곱씹게 했다. 신호가 참 많다. 좌회전 하기 전에 직진 신호를 하나 더 받아서 가는데 앞서 가는 차는 내 맘 같지도 않다. 쨍하게 영원할 것 같던 초록불이 드디어 신호 아래에 머무르게 되었을쯤 내가 가까이에 가자마자 약한 기운을 내뿜는다. 아무래도 나에게만 느껴지는 기운같다. 앞에 차가 몇대 정도 있었지, 가지 말까. 고민과 동시에 노란불을 보고 차를 세웠다. 한 손으로는 옆에 있는 선생님이 쏠리지 않도록 받쳐드리며 "아이고 죄송합니다" 너스레를 떨었다. 조금 더 빨리 결정했다면 급브레이크 밟지 않았을텐데. 급감속, 급가속, 급출발로 매겨지는 안전운전 점수가 헤드업디스플레이 마냥 앞에 그려졌다. '노란불이 언제되는지 정확한 초를 세고 있을 수도 없고 아 그냥 좀 뒤에서 초록불 기다린다 싶으면 내 차례 때 바로 멈출까' 하는 고민들이 차 안을 채웠다.
불빛이 깜빡인다고 내 정신마저 껐다 켰다 반짝거리고 있으면 안된다. 어떻게 생긴줄도 모르던 운전대 잡은 나를 그리기만 하다 반박자 늦게라도 멈추는 운전자가 되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어떤 순간이든 내 결정에 따라 움직이는 나의 세상. 어느 것 하나 그냥 넘어가는 건 없다. 나에 의해서 나로 인해서 나를 위해서 선택하고 또 선택한다. 마치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주어진 역할은 선택이라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