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함의 조건
인간이라는 존재는 만들어진 상태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다. 관계 덕분에 인간이 존재하며 그 대상은 어떤 것이든 될 수 있다.
다정함은 지능이라는 말이 돈다. 그렇다면 태어날 때 내재된 채 나오는 것일까? 아무것도 없이 혼자서도 다정하다는 말이 성립이 될까? 스스로에게 주는 다정함도 중요할 수 있지만, 세팅값이 이뿐이라면 다정이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는 어떻게 해석될 수 있을까. 그저 다정하다고 하고 싶을 뿐인데 여러 이야기가 떠돈다.
그럼 어떤 상태를 다정하다고 보는가? 사전적 정의에서는 정이 많아 따뜻하고 친절하다는 형용사로 풀이된다. 내가 아는 다정도 가까이에 있는듯 훈훈한 온도감을 전해주고 몸과 마음을 안심하고 포근하게 만들어주는 글자이자 의미이다. 멀지 않은 거리감을 선사하는데 전혀 기분 나쁘지 않다. 내 곁에 다정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살짝에서 씨익으로 미소가 지어진달까.
다정을 본다. 다정함을 읽는다. negative하지 않고 positive하기만 하다. 그도 그럴것이 농도가 조금 더 진해진다면 오그라든다며 두 손가락을 다 구부려버릴지도 모른다. 이름도 붙일 수 없겠지. 충분히 다가오지 못하는 거리라면 온도감이 전달되지도 않을 것이다. 거리와 온도와 선을 아는 다정함. 그거다.
쉽게 찾아보기는 힘들다. 일단 나부터도. 즐겨보는 연애 프로그램에서 흉내내는 사람들의 모습을 본다. 화면 너머 내가 닿지 못하는 그들의 공기를 느낄 수 없어 그럴지도 모르지만 하나같이 척 한다. 다정한 척. 진심은 감각으로 느껴질 수 있다. 모를수도 없고. 그들의 관계를 본다. 그의 척이 아닌 관계 속 분위기가 전해주는 다정함을 느낀다. 진심이 오가는 관계 속에서는 보인다. 난다. 들린다. 만져진다.
쳐대는 손가락에 푹신함을 주는 키보드의 다정함에 감사한다. 오글거리지 않는다. 미끌대지도 않고. 무한한 척 유한하게 흘러만 가는 시간은 다정하지 않다. 오히려 퍽퍽 자꾸만 두드려 맞는다. 괜찮다고 안심시켜주는 다정한 시간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