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ㄴX 아니, 논문

ㅇㄴ

by 지니샘

이전까지 내가 논문과 책을 보던 관점이 완전히 달라졌다. 전에는 그저 학문적으로 보지 않고 문장 문장을 이해하려고만 했었다. 그런데 막상 논문을 쓰려고 한 글자 한 글자를 직접 써 내려가다 보니 문장으로 이해되던 책과 논문 속 이야기들이 다 달아나 버리는 것 같다. 그 텍스트에 흡수된 내 생각만 남아버려서 이걸 어떻게 다시 학문적으로, 논문으로 풀어내야 할지 막막함이 느껴졌다.


2학기에 읽었던 셀러스 교수님의 말씀과 지도 교수님의 말씀이 머릿속에서 오버랩된다. 그러면서 연구자로서 논문을 쓴다는 글쓰기라는 행위 그 자체에 초점이 맞춰졌다. 일상에서도 계속해서 나에게 그리고 주제에 집중하며 내가 가지는 시선을 돌아보고 마주하고 다시 돌아보았다. 부유하며 떠다니던 질문들을 하나씩 손에 잡아 스스로 대답해 보기도 하고, 또 대답하지 못하기도 했다. 이런 논문이라는 행위를 하시는 모든 분이 너무나도 대단하다는 마음이 새삼스럽게 더 들었다.


비울 것도 없이 채우지 못하고 내부-작용되지 못한 채로 남은 내가 자꾸만 보여서, 어떤 글을 써야 할지 조심스럽고 무섭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만큼 논문을 적기 시작했을 때는 주제가 내 옆으로 와서 계속 나를 건드리는 것 같았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던 주제가 계속해서 나와 함께하며 주제가 내가 되는 경험을 하였고, 지금도 하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고 해서 글이, 논문이 잘 써지는 것은 아니다. 처음 쓰면서도 욕심에 너무 잘 쓰려고 해서 계속 더 쓰기가 어려웠다.


처음에는 교수님이 제안해 주신 AI 윤리에서 탐구를 시작했다. 하지만 현장에서 유아와 AI의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AI와 윤리를 붙여 AI 윤리라고 잡아도 혹은 따로 떨어뜨려 보아도 아무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유아들은 AI로 뭘 하지? 뭘 하고 있지?"라는 궁금증만 생겼다. 논문에서 보이는 AI 관련 놀이나 활동이 자연스러운 유아들의 놀이 상황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의심이 들어서 직접 유치원 현장을 보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그러다 AI가 아니라 시선을 넓혀 디지털을 주제로 삼았다. 디지털은 유치원 현장에서 나도 아이들과 많지는 않지만 시도했던 경험이 있어 그려지는 모습들이 있었다. 그래서 유아들과 함께했던 디지털과의 얽힘을 떠올렸다. 기록을 찾아보고 유아들의 놀이 사진, 영상을 찾아보다 유아~디지털~나의 얽힘을 발견하고, 내가 디지털에 대해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고 어떤 관점을 취하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다시 논문을 찾아보니 디지털을 활용하는 논문이 참 많았다.


유치원에 참여관찰을 나가 교실 속에서 유아들이 디지털과 마주하는 모습을 보고 기록했다. 자주 사용하지는 않고 있었지만, 유아들이 전자칠판에서 자신이 모르는 글자를 찾고자 검색할 때 몸을 숙이고 손가락을 두 번 치고 짧게 미는 행동, 스와이프하는 행동들을 보았다. 화이트보드 칠판에서 하던 것이 아닌 전자칠판에서만 보이는 행동들이었다. 그동안 읽었던 책으로 전자칠판의 행위성을 바라보고자 전자칠판이 어떻게 유아를 끌어당기는지 보았다.


인공지능과 대화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칠교놀이가 뭔지 모르겠다는 유아들의 말에 교사가 챗지피티 스피커 음성으로 대화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고, 유아들이 모두 모여들어 인공지능과 대화를 나누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칠교놀이는 일곱 개의 조각을~" 하는 인공지능의 이야기를 듣던 유아가 칠교놀이하던 교구 쪽으로 가서 직접 칠교판을 세어보더니 "선생님 진짜 일곱 개예요!"라고 말했다. 인공지능이 유아를 행위하게 만든 행위성을 가진다는 걸 보면서, 인공지능만이 아닌 이를 포함하는 디지털이라는 범위로 유아들과 디지털의 만남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남'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가장 먼저 읽었던 책인 『물질과의 만남』 때문이었다. "만남은 세계 자체와의 만남으로서 우리를 감응시키고 생각하게 하고 느끼게 하며 우리를 세계와 접속할 수 있게 하고 세계로부터 분리시키며 행동하도록 강요하고 요구하고 보살필 것을 촉구하고 관계 맺게 하고 질문 속으로 끌어들인다"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책에 나오는 물질들과의 만남과 그 질문들을 디지털로 바꾸어서 생각해 보았다.


'물질과 더불어 사유한다는 것이 무엇일까'를 '디지털과 더불어 사유한다는 것이 무엇일까'라는 말로 바꾸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면서 유아와 디지털의 만남을 기록하고 의미를 찾아내는 연구 주제를 설정했다. 『물질과의 새로운 만남』 책은 유아에게 일상적인 재료들을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며 물질의 행위성을 인정하는 기록을 하고 있었는데, 이런 물질과의 만남을 확장시켜 디지털과의 만남을 바라보고 싶어졌다.


글을 쓰면서도 부족함을 많이 깨닫는다. 사유의 흔적을 남기며,


모두 추운 하루 따뜻하게 꼭 따시게 보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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