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진짜 안매웠어?

하루 일기

by 지니샘

직진만 하는 고속도로에 1시간 전부터 지겨움을 느꼈다. '오늘 집에 가면 저녁은 뭘까' 혼자 집에 있는 냉장고 문을 열고 음식을 꺼내 그릇에 담고 아침에 엄마가 해두신 김치찌개를 보글보글 소리나게 끓이며 상상 속 먹방을 시작했다. 이제 도착했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랄 때쯤 전화가 왔다. 엄마셨다. "네 엄마 가고 있어요" "어디야~?" "지금 함양이에요" "그래도 경남에 들어왔네" "1시간 정도 더 걸릴 것 같아요" "아 그럼 아빠 머리 자르고 오신다고 했으니까 아빠랑 같이 밥 먹으면 되겠다! 조심해서 와~ 엄마는 이모들이랑 오늘 만나기로 해서 걸어가고 있다" "네 알겠어요~" 전화를 끊고 시속 100km의 지겨움을 헤치며 식탁에 아빠를 앉혀드렸다. 다시 걸려온 전화, 전복을 구워놓았다는 이야기에 혼자 있지도 않은 전복 향을 맡으며 달리고 또 달렸다.


도착할 때쯤 아빠가 어디냐고 물으셨다. "먼저 올라가 계시면 제가 전화드릴게요!" 주유를 해야 했다. 왕복 400km가 넘는 거리는 어제 넣은 기름을 도로에 다 흘려야지 가능했다. 힘든 하루다. 집에 가서 쉬고 싶다. 밥 먹고 싶다!


오자마자 외투도 벗지 않고 일단 밥을 전자레인지에 데웠다. 넣어두고 옷 갈아입으면 딱이지. 급한 마음에 그러기도전에 냉장고 문을 열고 반찬통을 다 꺼내놓았다. 옷 갈아입고! 갈아입고! 작은 그릇을 꺼내 반찬통에 있는 반찬을 먹을만큼만 내었다. 차 안에서 이미 에어프라이기에 구워 바삭함을 상상했던 빵과 토마토마리네이드를 꺼내려다가 냉장고에 옥수수가 있길래 노선을 변경했다. 옥수수랑 김치찌개! 공략! 어제 엄마가 해주셨던 오징어 볶음도 냄비에 담아 다시 끓여냈다. 채소와 오징어가 빨간 색깔만큼 맵삭하게 입맛을 돋운다. 양배추랑 깻잎에 싸먹으면 되겠다 싶어 다 식탁에 놓았다. 먹을 수 있는만큼만 덜어내고 냉장고에 돌아간 반찬통들을 뒤로하고 아빠와 마주앉아 밥을 먹었다.


"그 냄비는 호박죽이야?" 큰 냄비에 든 김치찌개를 보고 아빠가 물으셨다.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다. 어제는 엄마가 저 냄비에 호박죽을 항그 하셨으니까. "김치찌개에요. 아빠 아침에 안드셨어요?" 내가 일어나기 전에 엄마, 아빠는 아침 일과를 마치시고 출근까지 하시기에 나는 모르는 아침 이야기를 물어보니 "나는 안먹었는데" 하신다. 그럼 아빠는 큰 그릇에 김치찌개 떠드려야겠다. 국물을 좋아하시는 아빠를 위해 국물 위주로 뜨고 의자에 앉았다. 상이 다 차려졌다. 기다리던 저녁 상이.


밥 보다는 채소 위주로 먹으려고 깻잎을 손바닥 위에 올리는 사이, 아빠가 "여기 비벼먹을까?" 하시면서 오징어 볶음 그릇에 밥을 넣기 시작하셨다. "아빠! 오징어 볶음 매운데요?" 아빠는 매운걸 싫어하신다. 평소에는 맵다고 하면 거부부터 하시는데, 갑자기 쓰읍 쓰읍 계속 쓰읍하게 되는 오징어 볶음을 메인디쉬로 올린 아빠가 걱정되었다. "이거 김치찌개 아니가" 이미 비비고 있는 손과 맺지 못한 말이 오버랩 되었다. "아빠 매워도 괜찮아요?" 하자 말없이 한 입 크게 드신다. "괜찮아요?" 내 말에 눈을 아래에서 위로 눈의 움직임이 보이게끔 뜨시고 다른 곳을 쳐다보며 대답하신다. "응" 평소에 아빠라면 매운건 맵다고 하시면서 안먹고 싶다고도 하시는데 오늘은 다르다. 오징어 볶음이 덜 매워진걸까? 아빠가 매운데 맵지 않다고 하시는걸까? 그렇다면 왜 안매운 척 하시는거지? 뭘까? 의문과 걱정이 식탁 공기에 섞였다. 오징어 볶음을 못먹게 되어서 김치찌개에 쌈을 잔뜩 싼 내가 입에 왕 넣는데 아빠가 휴지를 뜯으신다. 뭔가 손도 분주하고 매우신 것 같다. "아빠 괜찮으세요? 옆에 물김치도 있어요" 아빠는 물김치를 엄청 좋아하신다. 근데 오늘은 반찬 뚜껑도 안여셨네. 물김치쪽으로 시선도 주지 않고 "괜찮다" 아빠가 대답하셨다. 한 입 한 입 커다란 한 술 한 술이 아빠 입으로 들어갈 때 나는 조마조마 했다. 오징어 볶음에 있는 고추는 이따금씩 혀를 아프게도 하니까. 깻잎에 싸드시면 좀 더 나으실텐데! 아니면 그냥 흰 밥을 드릴까. 내가 내 밥을 먹으면서도 말로 내뱉지 못한 이야기를 눈으로 전하고 있을 때 아빠가 일어나셨다. 반 넘게 드신 후였다. 들리지 않게 쓰읍 입 모양이 움직였다. "어디갔노" "여기에 있어요!" 물통을 알려드리자 "따신 물은 어쨌노, 치웠나" 물을 찾으신다. "아래에 있어요" 매운거에 따뜻한 건 더 열을 올려 힘들텐데 라는 우려는 나 혼자만 하고 매움을 이기는 아빠를 응원했다. 다시 마주한 아빠를 보며 "아빠 매우시죠? 괜찮으세요?" 몇 번째인지 모를 물음을 던졌다. "응 괜찮다. 안매운데?" 태연한 척 아빠의 표정이 나를 스쳤다. "네에" 그저 네라고 대답하고 나는 눈을 깔았다. 아빠가 휴지로 코를 푸셨다. 물도 한모금. 마지막 한 숟갈을 드시는 아빠께 애잔함과 대단하다는 응원과 속 아프시면 어쩌나 하는 나의 우려가 무겁게 전달되었다. 내 눈빛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빠는 코를 다시 풀고 물을 한 모금 더 드신 후 다 먹은 그릇을 옆으로 밀었다. 모든 행동을 멈추고 잠시 멍하니 계시기도 했다. 아빠 모습을 보는데 갑자기 웃음이 나오는거다. 입을 막았지만 내 현실감각을 비집고 터져나왔다. 푸흡흡흡 하고 웃는 나를 보며 아빠는 왜 라고 물었다. "아빠 괜찮아요? 매웠죠? 오징어 볶음 진짜 맵던데!!" 호들갑 약간 섞인 내 목소리가 그의 귓가를 간지럽히자 그는 다시 태연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안맵다" 하는 그를 보며 다시 한 번 웃음이 터져나와 나는 거의 우는 척을 했다. 우는 것 같은 웃음으로 아빠가 내가 아빠를 놀리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않으시면 좋겠다는 마음까지 나 혼자만 삼켰다. "아이고" 내 목소리와 함께 우리의 식사가 끝났다.


그의 한 쪽 눈에서 짧게 흐른 눈물을 나는 모르는 척 삼켰다. 하지만 웃음은 삼키지 못했다. 아빠 죄송해요. 너무 웃겼어요. 우리 아빠 속아, 대신 절대로 아프지는 말아라!


쿠키_ 소파에 가신 아빠께 "아빠 냉장고에 요거트 있어요 그거라도 드세요! 속 아파요!" "안먹어도 된다" 하는 아빠께, 벌떡 일어나 딸기를 슬라이스 하고 요거트에 딸기를 넣어 숟가락까지 얹어 소파로 배달했다.


내가 식탁에 돌아가 남은 식사를 마무리하는 동안 아빠는 곧 후루루짭짭 요거트를 다 드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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