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려다보면,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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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샘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아마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을 것이다. 오래묵은 정겨움을 가진 집, 이곳만의 특이성이 있다. 아파트는 당구장, 노래방, 보드게임 카페가 으슥하게 있는 상가 하나를 끼고 있다. 상가 옆 짧은 도로를 들어오면 지하주차장이 반기고 졸졸이 세워진 차들이 궁둥이만 들이밀고 나를 반긴다. 안쪽으로 들어가면서 아파트가 큰가? 싶으면 거기서 끝난다. 그게 다다. 전체적으로 부지는 입구 방향에 서서 아파트를 바라보았을 때 아래를 보는 디귿자 모양으로 생겼다. 내가 사는 집은 숫자 뒤에 나라는 이름이 붙는다. 예를 들면 101가동이 있고 101나동이 있는거다. 아파트동 사이 사이는 사람 8명 정도 발과 머리를 붙이고 누울 수 있을 정도로 넓기에 주차 공간이 확보 된다. 차 없는 집은 없을거다. 1대씩은 있다고 보고 고향 우리집도 가족이 모두 모이면 차만 4대인 것처럼 곳곳에 2대 이상씩 있으면 오자마자 차 후면을 마주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내가 사는 동 뒤편에도 주차장이 있다. 마주보며 주차할 수는 없지만 편도 주차는 가능하고 사람들은 재주 좋게도 그 앞에 평행주차를 하기도 한다. 아니 매일 주차를 한다.작년까지 차가 없던 나는 뒤쪽 주차장이 있는지도 몰랐었다. 이번에 차가 생기면서 아파트 뒤쪽도 뻔질나게 드나들게 되었다. 작년까지는 가보지도 않았던 새로운 공간을!


내 차를 가지러 가기 전에 친구가 우리집에 놀러왔다가 뒤편 주차장에 주차해 같이 걸어갈 일이 있었다. 우리 동 현관을 나와 자전거 꽂이도 지나 코너를 돌면 앞쪽에서 보면 잘 가려진 세계들이 눈에 들어온다. “어 저기 놀이터도 있네, 야 나는 여기 온지가 언젠데 놀이터 처음 봤다. 대박, 나는 오래돼서 놀이터도 없는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너무 좋은데?” 놀이터에 감탄하던 내 옆으로 “저것도 귀엽네” 고개를 까닥 위로 올리며 친구가 가리킨 턱을 따라가니 미끄럼틀 타는 시설물 위에 토토로도 있고 귀여운 캐릭터를 커다름하게 올려놓은 것이 아닌가! 진짜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놀이터 같았다. “우와! 야 나 진짜 처음 봤다” 친구의 턱을 따라 내 턱이 들리고 고개가 뒤로 젖혀졌다. 몸이 열림과 동시에 눈도 화들짝 열렸다. 긍정의 개방이었다. 이제 나는 아까와 다른 사람이 되었다. 놀이터의 존재를 알고 놀이터를 귀여워하는 사람! 몇 분 전 나에게서 차이가 생성되었다. 고개를 듦으로써 내 눈에 담기는 차이가.


어제도 빨리 오지 못했다. 뒤편에 주차한 차를 찾으러 가다 문득 마주한 시야를 빼곰 처들었다. 그냥 미끄럼틀이 아니라 캐릭터가 반기는 귀여운 미끄럼틀이 눈을 비추었다. ‘이야’ 다시 추임새를 넣었다. 한 발자국 발을 더 옮기려는데 머리에 딩 하고 파동이 울렸다. 고개 드는 일이 어렵나? 어렵고 쉽고를 떠나 고개를 왜 들 생각을 안해봤지? 저 놀이터 볼 때 내가 초점 맞추던 그 부분만 봤네. 아주 약간의 고개짓이 나를 바꿨다. 내 과거를, 볼 가능성을 변화시켰다. 조금이든 아니든 일단 움직여 보니 시선이 달라지고 관점이 바뀌고 내가 달라졌다. 일단 움직인 결과였다. ‘움직이지 않았다면?’ 영영 몰랐지 않을까, 놀이터도 미끄럼틀도 캐릭터도 모두를. 아마도.


우리는 사는대로 살아가는가? 내 언어가 내 세상이고, 사는대로만 살아지지는 않는다. 내가 어디를 보고 얼만큼 젖히고 굽히고 돌리고 내리고 찌푸리고 펴고 통통 거리고 행위하냐에 따라 내 작동이 달라진다. 나는 작동된다. 또 다른 행위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머리를 맞는다. 댕. 새로운 세계와의 얽힘은 나를, 나에게, 나도 움직인다. 그것이 자신의 주체성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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