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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에 간다. 나는 일상적으로 내가 하던 교사가 아니다/맞다. 신규교사가 아니다/맞다. 그럼 실습생... 같은...? 아니다/맞다. 연구자인가, 맞다/아니다. 어떠한 사람으로서의 프레임 보다 지금 '나'라는 존재가 유치원에 간다는 건 진정할 수 없고, 진정하기 힘든 일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의 꽃 중
김춘수의 꽃에서 내가 그에게로 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가 나의 꽃이 되어 그와 나라는 새로운 세계가 생성된다. 내가 나라서 내가 아니라 무엇인가 나에게로 와서 무언가와 관계한 나라는 사건이 형성되고 이는 계속해서 변화한다. 무엇인가 나에게 오지 않는다면 나는 내가 될 수 없을 것이다. 나를 인간이라는 존재로 가정했을 때, 여러 미생물들이 모여 만나고 관계하여 형성되는 나라는 존재부터가! 관계에 의해 형성되고 존재하는 a의 반복(a', a'', a'''...) 즉, 음악의 리토르넬로다. 바라드의 말처럼 존재는 멈추어서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얽히고 설키는 수많은 사건 속에서 끊임없이 생성되기 때문이다. 내가 나를 연구자로 인식하고 발걸음을 떼는 순간 나는 연구자라는 존재로 배치되고 구성된다. 나의 인식과 실천이 나의 존재방식을 실시간으로 연구라라는 이름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나는 현장을 기록하는 사람이 아니라 교실에서 아이들의 삶에 참여하여 배치됨으로써 아이들의 삶을 함께 만들어가는 존재가 된다. 연구자라는 이름보다 삶을 함께 만들어나가는 동반자라는 말로 나를 설명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