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뢰즈가 씌워주는 안경 걸리적 거린다고 말하지 않기

by 지니샘

들뢰즈는 리좀과 같이 자유롭고 여러 출입구로 드나드는 철학을 말하면서, 언어를 왜 이렇게 그들만의 리그처럼 어렵게 만드는 것일까 고민하게 된다. 언어라는 건, 우리가 살아가는 그대로가 나온다. 일상적으로 우리가 쓰는 언어는, 유아교육에서 학부 때부터 배웠던 발달론을 당연시 여기는 것처럼 너무나도 당연하게 쓰다 보니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되지가 않는다. 들뢰즈는 기존의 의미가 붙잡고 있지 않은 새로운 단어를 던져서 계속적으로 탈주시키려고 한 게 아닐까.


들뢰즈의 언어를 보면 배치를 이해하려면 욕망을 알아야 하고, 욕망을 알면 흐름과도 연결되면서 리좀적으로 이어지고 생성되고 있다. 이렇게 국가와 자본주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이유도,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현실을 폭로하면서 새롭게 꿈꾸게 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싶다. 우리는 국가에서 태어나서 이런 세상에 살고 있는 게 너무나도 당연해서 국가나 자본주의를 당연하게 여긴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다가 그 이면에 우리를 소비시키고 자본에 따라 흘러가게 작동시키는 연예인들의 말과 예능 속에 나오는 상황들이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고 꾸며진 상황이라는 걸 알고 충격받았던 적이 있다. 요즘은 유튜브가 그러하겠지. 리얼이면 진짜 찐 리얼이라고 너무 순수하게 세상을 바라보던 나였다.


나와 같은 이런 사람들, 어쩌면 들뢰즈 본인도 국가와 자본주의 그리고 세상의 흐름을 당연하게 여겨서 이런 사람들이 특정한 방향으로 포획당하지 않도록 알려주는게 아닐까? 우리가 왜 이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 계속 시스템을 알려주면서 자극하고 건드리는 것이다.


국가나 자본주의 같은 것들은 공기처럼 당연하고 그 지면이 참으로 단단해 보이지만 저 아래에는 그럼에도 탈주하고 있는 소수자와 새로운 삶 그리고 예술성이 있다. 들뢰즈는 이런 틈새를 찾아서 탈영토화 할 수 있는 에너지가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을 알려주면서 현실을 새롭게 보는 안경을 씌워주려는 것 같다. 나는 앞에서 계속 안경을 들이미니까 내가 보던 세상이 안 보인다며 치우라고 손을 뻗기도 하는데 말이다.


내가 지금 몸 담고 있는 세상 시스템을 알아차려야 한다. 들뢰즈 철학이나 신유물론을 배우면서 세상 속 위계에 저항 없이 포획당하지 않겠다. 무엇이 지고 이기고, 잡고 잡히는 것에 끌려다니지 않고 어떻게 같이 공존하는가 혹은 더불어 사유할 수 있는가로 나아가겠다.


세상은 원래 이러니까 하고 포기하지 않을거다. 이 시스템 자체도 물질이고 들뢰즈가 말하는 배치 중 하나일 테니까, 그것과 다르지 않은 우리가 새로운 배치나 차이를 또 다시 생성할 수 있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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