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서 죽음이란? 결국 교육은

by 지니샘

죽은 참새 앞에 멈춰 선 아이들을 심는다. 싸늘하게 식은 참새 곁에 차마 다가가지 못하고 당장이라도 눈물이 터질 것 같은 사람은 나뿐이다.


참새에게 어떡해 하며 발을 동동 구르는 아이, 무덤을 만들어주자며 묫자리를 보러 다니는 아이, 계속 가까이서 보려 하고 만지려는 아이들이 참새를 둘러싼다. 장례식장의 어린 손주도 거의 울지 않는다. 부모가 우니 따라 울 수는 있겠지만, 아이들에게 죽음은 어른처럼 가라앉은 두려움을 마주하는 무거운 게 아닌 것 같다. 경험하지 않아서 그런 걸까?


모든 물질이 세상을 이루는 여기서, 나는 태어나는 순간 우리가 죽음에 더 가까이 있기에 아이들이 죽음을 더 잘 느끼고 있다고 생각한다. 거리가 더 가까운 거다. 죽음이란 소멸이 아니라 다른 방식의 있음으로 물질화되며 변하는 것일 뿐인데. 아이들은 우리가 죽음을 억지로 의미의 감옥에 가두는 짓을 하지 않고, 그저 몸이 겪는 자연스러운 전환으로 바라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우리도 모두 아이였는데, 우리는 왜 이토록 죽음을 두려워할까. 망각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모든 잠재력을 가진 채로 태어나지만, 사회가 씌워준 낡은 언어와 고정관념이 하나씩 앗아가 버린다. 살면서 잊어가기에 죽음이 이토록 무겁고 아픈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결국 교육의 역할이란 게 아이들을 지켜주고 우리를 가두던 낡은 지식을 언러닝하게 돕는 구조 작업이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아이들을 가르치려 들기보다 우리 어른들이 먼저 고정관념을 비워내서 아이들을 지켜주는 것. 낡은 환경 속에서도 아이가 스스로 자신과 연결된 사물과 자연을 중요한 것으로 생성하게 돕는 사유의 정원사가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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