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ra Wong's Unsolicited Advice for Murderers』 제목이 너무 길어서 제목에도 부제목에도 들어가지 못했다. 제목, 표지부터 이미 웃기겠다가 작정한 책인 걸 알 수 있다. 기본 줄기는 Whodunit(who done it, 누가 범인인지를 찾아내는 미스터리, 추리, 탐정물 장르)물이지만, 궁극적으로 코미디다. 요즘 말로는 코지 미스터리에 포함되지 않을까 싶다. 읽는 내내 내적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동남아시아인이라면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
작은 찻집을 운영하고 있는 중년의 중국인 베라가 자신의 가게에서 시신을 발견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주인공이 동양인인 만큼, 영어로 쓰인 책이지만 동양인 특유의 모습을 많이 담고 있어서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나쁘게 말하면 스테레오 타입일까?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 책이 코미디라는 것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한낱 동남아시아인은 필자는 커피는 몸에 나쁘다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한다고 젊은이들을 다그치면서도 어찌 되었든 대량의 음식을 해서 주변인들을 배불리 먹이는 베라의 모습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며 깔깔 웃으며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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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의 삶을 엿보고 이해하기
베라는 전반적으로 우리가 '전형적인 중년'이라고 여기는 모습 그대로를 보여준다. 그래서 어쩌면 중년들의 행동 중에 조금 짜증 나고 피곤하게 느끼는 부분 역시 가지고 있다. 몇 부분에서 나 역시 베라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고 과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베라의 관점에서 그의 생활과 행동을 들여다보면 그들도 그들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사실이 조금씩 보인다. 의도가 좋다고 해서 모든 것이 다 용서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타인의 다소 황당한 행동의 이유를 알게 됐을 때 우리는 그를 좀 더 이해하고 너그러워질 수 있다. 중년의 베라의 관점을 통해 그저 귀찮고 피곤하다고 생각했던 많은 면들을 약간은 누그러진 마음으로, 조금은 사랑스럽게 들여다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추리물...이었지?
추리물이라는 기대는 밀어 두고, 사건이 포함된 일상물로서 생각하면 편하게 읽을 수 있다. '추리는 어디 간 거야? 내가 원한 추리물은 이게 아니야!'란 생각이 머리에 가득하다면 읽는 내내 지루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건 자체가 완전히 허술하다는 뜻은 아니다.
시신을 발견한 후에 베라는 혼자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소란을 떤다. 그러면서 (베라 입장에서는 주요 용의자인) 3명의 인물들을 만나게 되고, 그 각각의 인물(베라 포함 총 4인)들의 관점을 오가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과학적이거나 논리적인 방식으로 수사하고, 탐사하기보다는 그저 베라가 세 명을 의심해 셋과 얽히면서 지내는 일상이 계속된다. 증거를 찾기 위해 위험을 불사하거나 진지하고 논리적인 추리보다는 일상적인 장면이 훨씬 더 많이 등장하고, 어떻게 보면 사건은 뒷전이다. 그리고 그 점이 이 이야기를 더욱 편안하고 유머러스하게 만들어준다.
사건 자체만 떼어놓고 본다면 꽤나 단출하지만 그래도 충분히 흥미롭게 짜인 사건이기도 하다. 다만 그것을 풀어가는 과정이 중요한 작품이 아니다. 사실 『Vera Wong's Unsolicited Advice for Murderers』는 추리물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베라라는 고집 세고 멋대로 구는 동양아줌마의 오지랖이 주변에 영향을 미치는 이야기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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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라의 과격하지만 다정한 오지랖 속에서 성장하고 치유받는 인물들
베라를 제외하고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깊은 상처를 가지고 있고 심적으로 많이 약해진 상태의 소심한 인물들이라 이런 자기 비하에 빠진 캐릭터를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이 세 사람 시점의 이야기가 유쾌하지는 않을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는 자신감 넘치고 외향적인 인싸보다는 아싸에 소심하고 풀 죽은 캐릭터가 훨씬 더 공감이 되는 편이라 한껏 공감하고 안타까워하며 읽었지만, 모든 캐릭터들이 단순히 '소심하다'는 단어로 표현하기엔 많이 망가져 있어 답답한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 셋 모두가 약해빠진 인물이기 때문에야 말로 베라와 좋은 균형을 이룬다. 다소 난폭하다시피 강한 성격의 베라가 셋의 한계를 넘어서도록 밀어붙이면서 모두가 천천히 나아가기 시작한다. 그렇게 서로를 지켜보고 이해하고 관계를 가지면서 등장인물 각각의 내적 상처를 치유하고 성장하는 과정이 이 책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베라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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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문용 영어 원서 추리 소설로 추천
다른 범죄 추리물에 비해서 어려운 표현이 확연히 적다. 복잡한 수사 과정이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고 복잡하고 어려운 추적 과정 역시 없다. 일상적인 장면이 많아 유용한 일상 용어를 많이 접하고 익힐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주인공이 중국인이고 중국의 정체성을 강하게 가지고 있는 인물이므로 중국 음식, 중국 식재료, 지역, 차 종류, 호칭 등 중국에 대한 배경 지식이 없으면 하나하나 찾아보는 게 귀찮을 수 있다. 물론 이런 고유 명사들은 대충 넘어가도 무방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너무너무 웃기고 따뜻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부담을 내려놓고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영어 원서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 추천할 만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