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대신 맥락을 공유하는 용기에 대하여
27년 전, 사회생활의 첫발을 떼던 무렵 누군가 내게 이런 말을 건넸다. “힘들면 힘들다고 말하세요. 그래야 주변에서 도움도 줄 수 있습니다.” 당시의 나는 그 조언을 일종의 ‘엄살 권유’로 받아들였다. 내 몫의 짐은 온전히 내 어깨로 감당해야 한다고 믿었고, 힘든 내색을 하는 것은 프로답지 못한 태도라 여겼다. 나약함을 보이지 않는 것이 책임감의 완결이라 믿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팀장이라는 자리에 앉아 여러 계절을 통과하며 깨달은 사실은 전혀 달랐다. 침묵은 때로 책임감이 아니라 잘못된 해석의 불씨가 되기도 한다. 관계가 깊어지고 조직이 단단해지는 순간은 완벽한 모습을 뽐낼 때가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빈틈과 곤궁함을 솔직하게 공유할 때 찾아오곤 했다.
때때로 정보의 부재는 타인에게 한없이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게 만든다. 얼마 전, 평소 성실하기로 평이 나 있던 동료의 태도가 눈에 띄게 달라진 적이 있다. 업무 몰입도가 높던 그는 자주 자리를 비웠고, 복도 끝에서 통화하는 모습이 반복됐다. 사정을 모르는 이들의 눈에는 그저 ‘해이해진 태도’로 비치기 십상이었다.
그러나 뒤늦게 알게 된 진실은 전혀 다른 색깔이었다. 건강하시던 어머니가 갑자기 암 진단을 받으셨고, 자식으로서 대학병원 진료 예약을 위해 온종일 전화기를 붙들고 고군분투했다. 그 속사정을 듣고 나니 이전의 차가웠던 의구심은 이내 안타까움과 이해로 바뀌었다. 만약 그가 상황을 미리 공유했더라면 어땠을까. 주변에서는 기꺼이 업무를 분담하거나 유연한 근무를 권했을 것이다.
맥락이 삭제된 정보는 오독을 낳는다. 상황을 알리는 것은 구걸이 아니다. 동료들이 나를 오해하지 않도록 돕는 최소한의 배려이자, 관계를 지키는 지혜다. 우리는 종종 ‘내가 알아서 버틴다’는 말을 성실함으로 착각한다. 그러나 조직에서 성실함은 혼자 견디는 능력이 아니라, 필요할 때 도움을 요청할 줄 아는 판단력으로도 증명된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