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수학 숙제 앞에서, 말의 품격을 배우다

한자 ‘품(品)’의 세 개의 입이 가르친 한 가지—말의 온도

by 하랑팀장

품격(品格)이라는 단어를 가만히 들여다본다. 사전적으로는 사람 된 바탕과 타고난 성품을 뜻하지만, 그 글자 속에 숨겨진 형상은 훨씬 더 구체적인 메시지를 던진다. 품(品) 자를 구성하는 세 개의 입 구(口). 이는 결국 한 사람이 내뱉는 말들이 쌓이고 겹쳐져 그 사람의 격을 만든다는 의미일 것이다. 입을 어떻게 사용하는가, 즉 말을 어떻게 하느냐가 곧 그 사람의 본질이라는 옛사람들의 통찰에 깊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말은 사람을 투영하는 거울이고, 말이 그 사람의 세계를 규정한다는 사실은 리더로서, 또 부모로서 늘 가슴에 새기는 경구와도 같다.


토요일 오전, 여유로운 햇살 아래 커피 한 잔을 즐기던 평화는 딸아이의 울먹이는 표정 앞에 속절없이 무너졌다. 수학 학원 숙제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손도 대지 못했다는 고백. 학원 버스가 오기까지 남은 시간은 고작 3시간 남짓이었다.


딸아이가 숙제를 미룬 이유는 단순한 게으름이 아니었다. 개념이 온전히 이해되지 않으니 문제를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았고, 그 두려움이 차일피일 시간을 미룬 것이다. 머리로는 충분히 이해되는 상황이었다. 누구에게나 미지의 영역은 거대한 장벽처럼 느껴지기 마련이니까.


과거 수학을 가르치다 몇 번 큰소리를 냈던 전력이 있기에, 딸아이는 나에게 "절대 큰소리 내지 않겠다"는 단단한 약속을 받아낸 후에야 책상 앞에 앉았다. 나는 최대한 다정함을 유지하며 개념을 설명했고, 아이는 조금씩 이해의 실타래를 풀어가는 듯 보였다. 하지만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개념은 이해했으나 정작 단순한 산수 과정에서 버벅거리는 아이의 모습이 내 눈에는 '집중력 부족'으로 비치기 시작했다. 2시간 넘게 에너지를 쏟아부은 탓일까, 내 안의 인내심도 바닥을 드러냈다. 결국, 몇 번을 삼켰던 큰소리가 끝내 터져 나오고야 말았다.


나중에 마음이 가라앉은 뒤 딸아이에게 물었다. 왜 그랬느냐고. 아이의 대답은 가슴 아팠다. 엄마의 설명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곧 큰소리가 나올 것 같은 예감이 들자 긴장감에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 문제에 도저히 집중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딸을 돕겠다는 명분으로 시작한 일이 정작 딸의 학습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되고 있었다니. 나는 아이의 두 손을 잡고 진심을 다해 사과했다. "엄마가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미안해. 네가 느릿거리는 게 아니라 무서워서 얼어붙어 있었다는 걸 엄마가 미처 몰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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