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 3년 차다. 동료 팀장들과 소통할 일 많고, 팀원들과 미팅도 자주 하며 상사에게 보고도 수시로 한다. 직장생활의 9할은 보고다. 서면보고로 시작했다가 안건이 이것저것으로 확대되면 나머지는 모두 구두로 전달된다. 핵심 내용을 말에 담는 것은 기본이다. 그 전달 방식은 다양하다. 또박또박 말하는 보고가 능사는 아니다.
최근 상사가 내 부서에서 사원 1명을 차출하여 B 부서로 보내면 좋겠다면서 생각해 보라고 말씀하셨다. 부드럽게 ‘생각해 보라’고 말씀하셨지만 ‘보내라’라는 복심을 알아챌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알겠습니다’라고 즉답하지 않았다.
‘B 부서에서 사원 1명이 퇴사한다고 내 부서에서 왜 채워줘야 하지?’
‘작년에도 B 부서에 사람을 보낸 적이 있었잖아!’
이런저런 생각에 마음이 꼬여 화가 스멀스멀 올랐다. 그렇다고 얼굴에 화를 보이거나 ‘어려울 것 같습니다’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 ‘제가 지금 당신 말을 듣고 있습니다’ 정도의 눈빛만 보냈다.
상사로부터 난감한 질문을 받았을 때 의도적으로 멈춤(Pause) 화법을 이용한다. ‘알겠습니다’ 하고 즉답하면 좋겠지만, 팀원 1명을 내보내면 빈자리의 업무를 누군가 떠안아야 할 테니 팀 분위기까지 고려해야 하는 처지에 쉽지 않은 결정이다.
상사에게 ‘알겠습니다. 보내겠습니다’라고 바로 대답하지 못했지만, 상사가 한 말은 내 마음에 묵직하게 남았다. 나는 사원들 한 명 한 명을 떠올리며 누구를 빼야 부서 내 여파가 가장 적을지 고민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선택이 쉽지 않았다.
매년 1월은 연중 가장 많은 인사이동이 있는 시기다. 불과 한 달 남짓 남은 시점에서 1명을 지원해 주라니…. 난감하기에 그지없다. 상사가 팀원 A를 염두에 놓고 말했다는 것을 알면서 A가 아닌 B를 인사 발령 내겠다고 말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진퇴양난 속에 있으니 갑갑했다. 며칠을 고민하여 ‘A를 파견하겠다’라고 말씀드리니 왜 발령이 아니고 파견이냐며 정색하셨다.
정색까지는 아니어도 파견에 대해서는 상사가 탐탁지 않게 생각할 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나 역시 부서를 총괄하는 부서장으로서 내 의견을 전달해야 했다. 가까운 미래에 사원 A를 발령낼 땐 내더라도 지금 당장 사원 A를 내주는 것이 쉽지 않음을 우회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두 번째 미팅에서는 상사가 내게 의견을 묻지 않고 지시했다.
“A를 발령 내세요.” 재고의 여지는 없어 보였다.
“네 알겠습니다.” 짧고 간결하게 성의를 담아 답했다.
이번 상사의 지시는 반드시 따라야 했다. 우리실 전체의 평가와 인사권이 상사의 고유권한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조직은 위계 구조(hierarchy)를 기반으로 운영되며 상위 리더는 조직 운영의 효율성을 위해 지시를 한다. 따라서 상사의 요청을 따르는 것은 상사의 권위(Authority)를 인정하고 조직 내 권위 체계를 수용한다는 의미이다.
부서장은 상사와 팀원 사이에서 균형을 지켜야 한다. 상사와 갈등을 피하는 것도 중요하고, 구성원과의 신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발령 관련 의사소통도 잘해야 한다. 이번 발령이 우리 실 차원에서 왜 중요한지를 사원에게 말하고, 팀장이 팀원들의 입장을 고려하고 있음을 느끼게 해야 한다.
팀장이 상사의 지시 사항을 전달만 하는 경우 팀원들의 신뢰를 잃을 수 있다. 발령 대상자인 A가 이번 발령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인다면 팀 사기와 업무 성과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다행히 사원 A는 종종 주변 사람들에게 ‘B 부서에서도 일하고 싶다’고 말을 해왔고, 실제 면담을 해보니 갑작스런 발령에 많이 놀라기는 했지만 수긍을 했다. 사원 A는 경력개발경로(CDP)만 본다면 B 부서 근무 경력이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는 나의 의견에 공감했다. A와 함께 일하는 동료 두 명에게도 발령의 배경과 취지를 설명하고 조속히 인원 충원이 되게끔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나의 산하에도 두 명의 파트장이 있다. 두 파트 간에 인력조정을 할라치면 묘한 분위기가 흐른다. 받고 싶은 마음과 내주고 싶지 않은 마음, 동시에 상사인 나의 심기(?)를 살피며 각자 기조를 취한다. 이번에 임원이 내게 사원 A를 B 부서로 보내는 것에 의견을 내라고 했던 초기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다.
I 파트가 P 파트보다 일이 좀 적다. 부서 전체 인력을 가지고 부서를 운영해야 하는 팀장으로서 인력 운영의 효과와 생산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특정 업무는 1.7인분 업무이다. 2명이 하기에는 적지만 1명이 하기엔 업무량이 과하다. 이런 상황은 비일비재하다. 대체로 부서나 파트가 구분되어 발생하는 문제다. 그러니 I 파트 인력 1명을 빼서 P 파트로 이동시키라고 말할 때는 지시하듯 말하면 수용성이 낮아지니 배경 설명을 곁들여 의견을 청취하는, 이른바 전략적 소통이 필요하다.
내가 대리 과장 시절에,아부 실력(?)이 탁월한 분들은 업무 실력이 보통 또는 그 이상임에도 불구하고 ‘아부 잘한다’라는 평판만 주였다. 도드라진 한 면이 다른 면을 덮은 식인데, 나는 아부보다 업무 능력으로 승부를 보고 싶었다. 업무를 잘하는 것이 아부의 더 높고 세련된 버전이라고 생각했다. 기한 내에 상사의 기대 수준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참신한 아이디어를 보고하는 데 집중했다. 그런데 내가 팀장이 되고 보니 일을 잘하는 팀원도 필요하지만, 팀장을 응원하고 추진하고자 하는 일에 적극성을 띠어 팀 분위기를 이끄는 팀원이 더 귀하고 소중하다는 것을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예스맨을 깎아내리는 말들이 많다. 그러나 예스맨은 아무나 될 수 없다. 신입일 때야 상사가 하는 말에 ‘네, 네, 알겠습니다‘라고 반응하지만 5년 차만 되어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보다는 ‘안 되는 이유, 힘든 이유’를 읊어대곤 한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게 문제점 지적이다. 어려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추진해야 하기에 월급을 주고 직원을 채용하는 것이다.
팀장이 되어보니 예스맨을 좋아할 수밖에 없다. 내 주변에서 사회생활 10년 이상 된 사람 중에는 일은 못 하면서 무턱대고 Yes만을 외치는 직장인은 거의 없다. 아부하는 실력이 더 두드러져서 그렇지 그들의 업무 능력은 보통 이상이었다.
아부만으로 부서장에 기용될 수 없다. 부서장이 일을 못 하면 그 여파가 고스란히 임원에게 미치기 때문이다. 임원 자신을 위해서라도 그런 선택은 하지 않는다. 누가 일 못 하는 사람을 기용하여 피해 보거나 스트레스를 사서 받겠는가.
일 잘하는 사람이 예스맨이면 금상첨화이다. 예스맨의 가치는 앞으로 더 주목받을 것이다.
내 사례로 다시 돌아오자. 나는 왜 이왕 발령 날 사원에 대해 굳이 ‘파견’이라는 간 보기(?) 제안을 했을까? 그것도 나보다 팀장 경험이 더 오래되고 현재 우리 부문의 수장인 노련한 리더를 상대로 말이다.
상사가 나에게 그 제안을 쉽게 하지 않았음을 빨리 깨우쳐야 했다. 부서장인 나조차도 내 산하 파트 간 인력조정에 관해서라면 말을 꺼내기 전에 얼마나 고심했던가?
30명 이상의 팀원 중 한 명을 발령 내는 것인데 왜 내 주머니에서 돈이 나가는 양 생각하며 어떻게든 천천히 내놓으려 했을까? 인사권은 상사의 고유권한인 것을 내 입으로 여러 차례 말했으면서 말이다.
수학 개념을 이해했다고 문제에 적용하여 단박에 잘 푸는 것은 아니다. 나 역시 머리로 아는 것과 실제 상황에 접목해 보는 것에 부족함이 있었다. 안되는 방향보다는 되는 방향으로 각도를 틀고 실행 방안을 고심하여 추진하는 것이 내 월급 값인데 말이다. 상사의 권위를 인정하고 지시를 수행하고 점수도 따서 나중에 인력 보충할 때 우리 부서가 1순위로 인력을 받을 수 있도록 후일을 도모하는 것이 더 나은 의사결정이었다.
복기와 회고의 힘은 강력하다.
이번을 계기로 다시금 다짐해 본다.
안되는 이유를 논리적으로 말하는데 머리를 쓰기보다는 되는 방향을 탐색하자.
키 맨과 소통하고, 문제해결에 초점을 맞추자.
Key Message
1. 조직은 위계 구조(hierarchy)를 기반으로 운영되며 상위 리더는 조직 운영의 효율성을 위해 지시한다.
2. 세상에서 가장 쉬운 게 문제점 지적이다. 어려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추진해야 하기에 월급을 주고 직원을 채용하는 것이다.
3. 수학 개념을 이해했다고 단번에 문제에 적용하여 잘 푸는 것은 아니다. 여러 번 시행착오를 겪어봐야 잘 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