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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는 힘이 리더를 단단하게 만든다

말의 덧셈보다, 침묵의 뺄셈이 필요하다

by 하랑

엄마는 내가 어릴 때 자주 말씀하셨다.
“침묵은 금이고, 웅변은 은이다.”

ChatGPT Image 2025년 11월 1일 오전 10_53_58.png

그 말이 어릴 적엔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하고 싶은 말을 꾹 참는 게 왜 금일까? 할 말은 해야 속이 시원하지 않나?’ 어린 나로서는 답답하기만 한 말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나는 깨달았다. 침묵은 단지 말을 삼키는 일이 아니라, 관계의 숨을 고르는 일이라는 것을.


사회 초년생일 때 나는 침묵을 ‘위험 회피’로 해석했다. 말을 옮기면 갈등이 생기고, 갈등이 생기면 불편해지니까. 하지만 직장생활 10년 즈음이 되자 조금 다른 깨달음이 찾아왔다. 맞는 말을 한다고 해서 상대가 설득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팩트를 말해도, 마음이 준비되지 않으면 소용이 없었다. 그 말은 결국 벽에 부딪혀 되돌아올 뿐이었다. 그래서 침묵은 단순히 말을 아끼는 것이 아니라, 때를 기다리는 말의 형태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팀장이 된 나에게 ‘침묵은 금’이라는 문장은 전혀 다른 울림으로 다가온다. 침묵은 더 이상 말의 부재가 아니다. 그것은 경청(listening)의 또 다른 이름이다. 조직 안에서 수많은 대화가 오가지만, 정작 진심으로 들어주는 사람은 많지 않다. 리더의 언어는 말보다 귀에서 시작된다. 나는 그것을 매일 현장에서 체감한다.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의 로널드 하이페츠(Ronald Heifetz)는 “리더십은 행동이 아니라 청취에서 시작된다”고 말했다. 그는 경청이 단순히 ‘말을 듣는 행위’가 아니라, 상대의 말 속에 담긴 감정과 맥락, 침묵까지 읽어내는 능력이라고 했다. 내가 경험한 현장에서도 마찬가지다. 팀원은 때때로 명확한 단어보다 숨소리와 표정으로 마음을 표현한다. 그때 말을 덧붙이는 대신 잠시의 침묵으로 공간을 내어주는 것이, 가장 큰 신뢰의 신호가 된다.


침묵은 또한 말실수를 줄인다. 우리가 말로 저지르는 실수 대부분은 즉흥적인 반응에서 비롯된다. 감정이 앞설 때 나오는 말 한마디는 관계를 금세 멀어지게 만든다. 스탠퍼드대학교의 심리학자 줄리언 트레저(Julian Treasure)는 TED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말하기의 첫째 조건은 ‘듣기’이며, 두 번째는 ‘필요할 때만 말하기’다.” 즉, 불필요한 말의 절제가 신뢰를 키운다는 것이다.


나 역시 예전에는 대화를 ‘말의 주도권 싸움’으로 여겼다. 누가 더 논리적인가, 누가 더 타이밍 맞게 말하는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팀장이 된 지금은 다르다. 대화의 목적은 이기는 게 아니라 이해하는 것이다. 상대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뒤에 하는 짧은 한마디가, 열 문장보다 큰 영향력을 발휘할 때가 많다.


어쩌면 엄마가 말한 ‘침묵은 금’은 단순한 언어의 절제가 아니라 ‘존중의 형태’였는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말을 끝까지 들어준다는 것은 그 사람의 존재를 인정하는 일이다. 듣는다는 건 시간을 내어주는 일이다. 그리고 그 시간에는 마음이 담긴다. 팀원과의 대화에서도, 아이들과의 대화에서도 그 원리는 같다. 들어줄 때 마음이 열린다.


최근에는 침묵을 ‘덜어냄의 언어’로 이해하게 되었다. 말은 더하고 싶어도 덜어야 깊어진다. 듣는다는 것은 말의 덧셈이 아니라, 말의 뺄셈이다. 우리가 침묵 속에서 배워야 할 것은 말이 아니라 마음이다.


결국, 침묵은 나약함이 아니라 단단한 배려다. 말하지 않아도 존재가 드러나는 사람, 침묵 속에서도 신뢰가 느껴지는 사람. 나는 그런 리더가 되고 싶다. 엄마의 오래된 말 한마디가 이제야 진짜 금처럼 빛나기 시작한다.
덜어낼수록, 더 깊이 들린다. 그것이 말의 본질이자, 리더십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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