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 쓰는 일상에서 나만의 문장이 자란다
새해 첫날부터 독서와 다이어트를 다짐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 또한 그런 사람 중의 한 명이었다. 그런데 코로나 시기 이후로는 ‘그냥 오늘부터’라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다음 주부터, 다음 달부터, 내년 1월 1일부터’ 그렇게 기다릴 필요가 있나 싶었다. 그러다 최근 지인이 한 권의 책을 추천해 주었다. 그날 바로 서점에 가서 그 책을 펼쳐봤다. 책장을 넘기자마자 묘하게 안정감이 밀려왔다. 백선엽 저자의 〈성공하는 습관을 만들어 주는 하루 15분 영어 필사〉. 왼쪽 페이지에는 100명의 기업가, 리더, 혁신가들의 영어 명언이 실려 있고, 오른쪽 페이지는 오롯이 나만의 손글씨로 채워 넣는 공간이다. 하루 몇 문장을 따라 쓰고, 짧은 소감을 적어 나가면 100일 뒤에는 ‘내 문장들만으로 구성된 책’이 한 권 완성되는 점에서 매력적이었다.
하루 15분이라는 루틴은 부담스럽지 않을 만큼 짧고, 또 나를 위한 행동이라고 말하기엔 적당히 길다. 팀장이라는 역할로 하루 대부분을 ‘반응’하며 살아온 나에게는 이런 단단한 루틴이 오래 기다려온 쉼표처럼 느껴졌다.
손으로 따라 쓰는 일은 예상보다 깊은 힘을 가진다. 심리학에서는 필사를 ‘정서적 정렬(emotional alignment)’이라고 정의한다. 손으로 글을 베껴 쓰는 과정에서 뇌의 전두엽이 활성화되고, 흩어지던 생각의 결이 서서히 정돈된다. 노스웨스턴대 연구에서도 손글씨는 키보드 입력보다 정보 유지율이 20~30% 높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과거에도 필사를 여러 차례 했었지만 바쁜 일상 때문에 한동안 후순위로 밀려있었다. 그러나 이 책은 짧은 명언 필사와 성찰을 포함하여 15분이라는 압축된 루틴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더욱 흥미로웠다.
평소의 삶은 회의, 보고, 팀원 상담, 결재 등 쉬지 않고 이어지는 의사결정의 연속이다. 반응이 빠를수록 더 좋은 리더처럼 보이는 환경 속에서 멈춰 있는 순간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필사는 다르다. 문장을 따라 쓰기 위해서는 움직임을 늦춰야 하고, 그 ‘느림’ 속에서 마음이 고요해졌다.
필사했던 문장이 하루의 방향성을 바꾸기도 한다.
“Trust the hard days. They teach you the most.” — Phil Knight(필 나이트, 나이키 공동설립자).
이 문장을 오른쪽 페이지에 또박또박 옮겨 적을 때, 무의식적으로 지난 며칠간 있었던 발표 자료 준비, KPI 지표 확인, 상사보고, 본사 조직장미팅 등 주요 일정이 떠올랐다. 그 모든 반복이 사실은 ‘단단한 나’를 만드는 힘이었다는 것을 필사로 깨우치게 되었다.
명언 한 줄이 손글씨가 되는 동안 문장은 내 언어가 되고, 내 언어는 결국 내 태도를 바꾼다. 필사는 팀장으로 사는 삶에도 의외의 변화를 가져왔다. 문장을 옮기다 보면 생각이 더 단정해진다. 조직에서는 빠른 답보다 정확한 방향이 중요하다. 이 정적인 활동은 생각을 지나치게 펼치지 않고 정교하게 압축하게 만든다. 덕분에 회의에서 말이 한층 선명해졌다.
감정 또한 잔잔히 가라앉는다. 언어심리학자 제임스 페니베이커(James W. Pennebaker)의 연구에 따르면 손으로 쓰는 자기표현은 스트레스를 30% 이상 낮춘다. 복잡했던 하루도 필사 한 페이지 앞에서는 먼지가 내려앉듯 부드럽게 정리된다.
무엇보다 필사는 나의 언어를 만든다. 팀장은 결국 말로 일하는 사람이다. 보고의 핵심을 짚고, 팀원에게 방향성을 전하며, 상사에게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 필사는 내가 어떤 문장을 좋아하는지, 왜 이 문장에 마음이 움찔움찔했는지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나다운 말”을 다듬게 해준다.
필사의 진짜 매력은 100일 뒤에 남는 손글씨의 흔적이 아니다. 100일 동안 내가 조금씩 바뀐다는 사실이다. 왼쪽은 유명인의 문장, 오른쪽은 그날의 나다. 그날의 마음, 그날의 원동력, 그날의 배움이 나만의 글씨로 저장된다.
회사에서는 늘 누군가의 기대를 충족시키며 살아간다. 하지만 필사만큼은 비교도 평가도 없다. 그저 오늘의 속도로 오늘의 문장을 남기면 된다. 이 단순한 행위가 말해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오늘도 나를 위해 한 가지를 해냈다.” 대기업에서 버틴 27년 동안 나를 지탱해 준 건 거창한 성취가 아니었다. 필사처럼 조용하고 작은 루틴들이었다.
오늘도 나는 한 문장을 따라 쓴다.
필사는 남의 문장을 베끼는 일이 아니라, 오늘의 나를 다시 세우는 가장 조용한 연습이다.
어제보다 단단하고, 한결 평온해진 나를 위해. 하루 15분이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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