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없는 연애, 사랑이 뭐라고.
첫사랑을 잃고 난 후의 상실감은 감히 다 표현할 수가 없다.
예술 작품으로도, 글로도, 노래로도, 그 어떤 것으로도 전부 비워버릴 때까지 표현하는 것은 시간 따위가 해결해 주는 문제가 아니다. 다만, 시간이 희미해지게 도와주는 것뿐이다
첫사랑을 ’ 잊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두 가지가 있다. 거짓말을 하는 경우와 자기 자신이 ‘첫사랑’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이 정말 ‘첫사랑’이 아닌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첫사랑의 여파가 다른 사람들보다 배는 더 심했다. 오죽했으면, 첫사랑에 대한 그리움을 담았던 글이 교내에서 열리는 글짓기 대회에서 1등을 차지했으니 말이다. 그 일이 있은 후에는 글짓기 대회 심사위원으로 있던 선생님들을 정상으로 보지 않게 되었다. 하고 많은 글 중에서, 첫사랑에 대한 미련이 뚝뚝 떨어지며 중2병의 사춘기 냄새가 폴폴 나는 글에 금상이라는 영광을 비추다니. 나를 제외한 다른 이들의 글이 아주 못 보여주는 꼴이었거나, 선생님들 중 한 분께서 이별을 하시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첫사랑과 남이 된 지 4개월 하고도 3개월이 더 지난 시점이었다. 계절이 세 번 바뀌었고, 나뭇잎이 떨어지며 낙엽이 되고 그것이 그의 부모님이었던 나무의 재가 되어 또다시 다른 나뭇잎이 싹트게끔 도와주는 역할까지 전부 다 감상하는 입장에서, 나는 그 사람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입을 열면 그 사람이 혀 끝에 마중 나와 차라리 입을 다물고 있게 되었다. (새벽감성 따위가 가득 묻혀 때로는 오글거리기까지 하는) sns나 지인들의 말로는 시간이 약이라는 말을 귀에 딱지가 얹도록 들었는데, 그저 그 말은 딱지일 뿐이었다. 거슬리기만 할 뿐 도움은 되지 않았다. 그 말들을 들은 나는 겉으로는 고맙다며 인사치레를 하고 있었지만 속은 빈껍데기였다. 영혼이 없던 시절이었다. 우울함도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느끼는 것이지, 정말 텅 비어있기만 하면 우울함은 끼어들 축에도 못 끼게 된다. 왜 나만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나를 빈껍데기로 만든 그 사람도 같이 고통받았으면 좋겠다며 가끔 영문 없는 분노만 빈 껍데기의 겉면 틈으로 슬금슬금 스며들 뿐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하고 많은 감정 중에 끼어든 감정이 굳이 분노였다 싶다. 어쨌든 몸과 마음을 다해 사랑했던 사람에게 드는 감정인데, 나는 옛날부터 늘 못된 사람이었나 보다. 안심이 되었다.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크고 작은 악행들이 정당화된다는 작은 속삭임 같았기 때문이었다. 참, 안심이 되었다.
그 사람을 그리워하는 도중에도 연애를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내가 ‘잊었다’고 착각을 했던 것인지 나의 무의식이 첫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받는 애정으로써 잊으려고 발악을 했던 것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그리고 어떻게든 새로운 사람과 연이 닿게 되었다. 나는 그 연을 이어가던 중에 그 사람에게 단 한 번도 사랑했다고 말한 적이 없다. 나의 빈틈을 내어준 적이 없었다. 빈틈을 보여주고 그 자리에 상대의 이름을 새겨 넣는 것은 정말로 나를 그 사람에게 허락한 기분이 들게 했다. 그 감정에 대해 좋은 기억이 남아있을 리는 만무했다. 그런 것 따위, 악하고 녹이 슬어버린 한 때의 젊음과 열정으로 사랑을 맹세한 미지의 연인들 떠올리는 것 같았다. 혐오의 단어가 아니었다. 단지 약간 께름칙했다.
나는 진우의 기억을 꺼내려할 때마다 내 침대 밑 좁은 틈에 들어간 옛 사진을 꺼내는 것과 같은 기분이 든다. 먼지 때문에 잘 보이지 않고 꿉꿉하기만 하면서도, 사진처럼 그때의 기억이 정말 보잘것없진 않았다 생각하면서도, 잘 꺼내지지 않는 사진처럼 그때의 기억이 선명하게 회상되지도 않는다. 내가 내 스스로를 견딜 수 없어서 저 깊숙한 곳으로 보내버린 것 같다. 다시 꺼낼 수 없게, 빛을 볼 수도 없게, 상대방한테 미안한 마음도 들지 않도록, 죄책감으로 나를 더 이상 갉아먹지 않도록. 나쁜 사람이면 끝까지 악인을 자처할 것이지 쓸데없는 위선을 펼치는 것과 같은 기분이 든다. 확실하게 나쁜 사람이 되어 나를 미워할 자신도 없으면서 어쨌든 ’ 연애‘였다며 허울 좋은 이름을 붙이고 추억인 척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보기도 싫은 것이 어째 ’ 추억‘일까.
앞으로 한동안은 위선으로 가장 된 안갯속의 연애를 회상해 볼 것이다. 그 사람에게 받은 상처를 잊지 않았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기대하고 애정을 쏟을수록 아플 것을 너무나도 잘 알았다. 왜 하필 정 많은 성격으로 태어나 작은 호의에도 정을 붙이기 쉬웠던지, 그 연애의 과정에서는 불신과, 불신과, 불신. 불신은 번복하는 과정뿐이었다.
이쯤 되면 내가 드는 생각이 여러분에게도 들기 시작할 것이다. 대체 왜 그딴 연애를 한 것인지. 상처받기 싫어서 상대를 병들게 했던 연애는 과연 정상적인 연애였는지. 또 그 과정에서 무엇을 얻은 거였는지. 결과가 무엇인지.
미안하다, 나는 꽤나 멍청한 사람이었고 멍청함이 잘 어울려 그렇기에 무던했던 사람이었던 나는 그 질문에 대해 단 한 번도 진지하게 고민해 본 기억이 없어 제대로 된 답변을 내놓을 수가 없다. 또다시 자기 연민과 회피를 등에 업고 도망가기 쉬웠던 나는 쿨한 찐따가 되어 그 사람은 그저 지나가는 사람이었다고 생각하기 바빴다. 어쩌면 내가 사랑 없이 연애했던 상대인 진우에 대한 사과의 의미로, 또 그에 대한 회개를 위하여 다시 기억을 꺼내는 게 내 본심이 아닐까 싶다. 아니, 추측이 아니다. 사과하고 싶었다. 이것이 나의 진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