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속초 숯불 생선구이 맛집
참새가 방앗간 그냥 못 지나쳐 가듯 속초에 왔는데 생선을 먹지 않는다는 것은 가당치 않은 일이었다. 애당초 속초 여행을 계획할 때 이미 물망에 오른 식당이었다. 허영만의 백반기행 애청자로서 속초편을 한번 다시 보았는데 가장 눈에 들어온 식당이 바로 88생선구이 집이었다. 주인장이 직접 숯불 위 석쇠에 대단한 자부심으로 손수 구워 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생선구이를 원래 좋아하지는 지라 몇몇 식당을 한 번씩 방문하는데 모두 주방에서 저마다의 비법으로 조리를 하였다. 예를 들어 프라이팬, 에어후라이기, 오븐 등등 다양한 방식과 방법으로 생선을 완전히 다 익혀서 상에 나왔었다. 그래서인지 숯불구이라는 색다른 방식의 생선구이가 너무 기대되었다.
속초 구경할 겸 부둣가를 곁에 두고 뚜벅뚜벅 걸어 식당에 방문하였다. 골목에 생각보다 생선구이 식당들이 많이 있었다. 저기 건너편 곧은 도로 양쪽으로 상가가 줄을 지어 서있는 모습과는 다르게 다닥다닥 건물들이 붙어 노동의 고된 애환이 묻어있는 서글픈 동네 풍경이었다. 과거에 방영하였던 SBS '피아노'라는드라마의 배경이 오버랩 되었다. 88생선구이 식당 또한 노포 느낌이 강렬했는데 문이 닫혀있어 순간 당황했지만 바로 옆에 새로 올린 3층 상가 건물로 들어가라는 안내를 받았다. 이른 저녁시간임에도 상당수 손님들이 자리를 잡고 식사 중이었다. 바닷가 지역에 꼭 있는 홀이 넓은 중소기업형 식당 인테리어여서 정감 가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더군다나 외국인 노동자분들이 대여섯 명 넘게 홀을 담당하시고 나이 지긋하신 어머님들은 주방에서 일을 하셨다. 생선 굽는 냄새가 생각보다 심해서 최대한 구석진 자리에 자리를 잡고 새로 산 옷에 냄새가 밸까 봐 옷을 따로 보관하는 곳이 없냐고 물으니 큰 비닐 백을 주셔서 옷은 벗어 거기에 넣고 거의 내복 차림으로 자리에 앉았다. 자리에 앉으니 외국인 종업원분이 속전속결로 주문을 받으셨고 마치 하나의 공정처럼 밑반찬과 숯 그리고 생선이 순식간에 차려졌다. 약간 황당하면서 웃긴 것은 백반기행에서는 사장님께서 그렇게 생선 굽는 방법에 대해서 자부심을 가지고 출연진이 절대 못 건들게 엄포를 놓으신 거에 비해 외국인 종업원분들이 주입식으로 배운 대로 기계적으로 생선을 구워주시는 모습이 애잔했다. 생선이 익는 틈틈이 타국에서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서 휴대폰을 만지작 만지작 바라보는 모습이 요즘 말로 웃펐다.
주객이 전도되는 모습을 원치 않았기에 반찬 사진을 못 찍은 것이 글의 완성도를 떨어뜨릴지 모르지만 글로 표현을 하자면 정식에 맞는 괜찮은 밑반찬들 이었다. 가짓수도 8가지 정도 나왔고 특히 미역국이 따뜻하고 간간해서 식전으로 먹으니 식욕이 돋구어져서 마음에 들었다. 밑반찬들은 생선구이 특성상 약간의 기름진 느끼함과 담백함으로 심심해질 수 있는 것을 보완하기 위해 대체적으로 간이 있는 편이었다. 오징어 젓갈은 따로 판매도 할 정도로 자신감이 듬뿍 담겨 있었는데 맛을 보니 되직하게 무쳐진 것이 마치 쌈장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바다지역이어서 그런지 미역이나 해조류 무침이 있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생선은 메뉴판에 명시되어 있는 것과 같이 고등어, 황열갱이, 꽁치, 도루묵, 오징어, 삼치, 가자미, 청어, 메로가 나왔다. 숯불에 생선을 구우니 그 풍미가 연기의 양과 비례하여 뿜어져 나왔다. 생선은 생각보다 빠르게 익어져 갔다. 중간중간 정해진 시간마다 종업원분이 오셔서 집게로 탁탁 전문가적인 소리를 내가며 석쇠에 껍질이 달라붙지 않게 조심스럽게 뒤집어 주셨다. 하지만 사람인지라 실수를 조금씩 하는 모습도 보였다. 생선을, 하나하나 종류별로 맛에 대해서품평하기에는 두서 없어질 것 같고 전반적인 숯불 생선구이의 맛에 대해 표현하자면 확실히 일반적으로 프라이팬이나 오븐에 굽는 것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숯불의 열기에 생선의 기름들이 석쇠 사이로 자연스럽게 빠져나와 생선 자체에서 나는 비린 맛들이 일절 나지 않았다. 또한 바다지역이어서 생물로 즉시 공급받을 수 있어서 그런 것 같았다. 숯불 향이 은은하게 나니 마치 캠핑을 하는 듯한 기분도 들었다. 기름기가 쫙 빠진 담백한 생선살에 흰쌀밥과 간간한 반찬들을 함께 먹으니 든든한 저녁식사를 할 수 있었다. 게다가 가정에서 흔히 먹지 못하는 열기나, 메로도 조금은 맛볼 수 있어서 좋은 경험이었다. 메로는 양이 적지만 그 특유의 뭉클거릴 정도의 부드러운 식감을 느끼기에는 충분하였고 열기는 고등어와 삼치처럼 살이 단단하지 않고 가자미처럼 감칠맛이 뛰어난 것도 아닌 어중간한 맛을 잘 느낄 수 있었다. 도루묵은 알이 꽉 차 있었는데 별다른 맛을 느끼진 못했고 살이 전혀 없어서 생선구이보다는 건어물에 가까워 억지로 먹지는 않았다.
서두에서 언급했다 싶이 바다지역에 가서 예의 상 생선구이를 먹은 것은 후회 없는 일인 것 같다. 더군다나 도시지역에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숯불생선구이를 난생처음 접해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비록 매스컴에 나온 모습과는 다소 차이가 있었지만 현실의 상황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것도 현실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중요한 덕목이라는 점을 배웠다. 오로지 생선구이 하나만을 목표로 방문한 식당에서 생선구이의 궁극을 경험했으니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悔者不必有之情也
후회는 반드시 있어야 하는 감정이 아니다. [노암집]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