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고성 메밀막국수 맛집
겨울이면 생각나는 지역 강원도로 겨울 나들이를 떠났다. 막상 고성 동해바다에 도착해 보니 쨍한 햇볕이 따사롭게 내리쬐고 사시사철 푸르른 소나무 덕분에 풍경도 푸릇푸릇해서 겨울 느낌이 도무지 나지 않았다. 하물며 음식 또한 시원한 여름철 별미인 막국수를 선택하여 계절에 모순되니 기분이 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국수집은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만석이었고 메뉴의 단일화와 음식의 특성상 회전율이 빨라 다행히 기다리지 않아도 되었다. 허름한 시골 촌집 방구석에 비좁게 자리를 잡고 앉아 주문을 하였다. 메뉴는 시력 0.1인 사람들도 멀리서 알아볼법하게 큼직한 글씨로 메밀국수, 메밀국수 곱빼기, 편육 세 가지가 떡 하니 쓰여 있었다. 옆 테이블에서 편육을 시켜서 어떻게 나오나 보니 머리고기 이미지보단 보쌈고기에 가깝게 두툼한 비주얼이 둘이 먹기엔 부담스러워서 주문하지 않았다. 우리는 간단히 곱빼기도 아닌 그냥 메밀국수 2인분 주문하였다.
상차림은 아주 단조로웠다. 간간한 열무김치와 보기만 해도 군침이 나올 정도로 강렬하게 새빨간 명태회무침 그리고 소금물에 제대로 숙성된 듯 쿰쿰한 냄새를 은은히 풍기는 백김치가 반찬으로 나왔다. 양푼이 그릇에 충분한 국물의 동치미가 나왔고 사리 그릇에는 꽁꽁 동그랗게 싸매 여진 면사리가 다소곳이 담겨 나왔다. 가장 먼저 살얼음이 유유히 떠다니는 동치미 국물을 맛보았다. 확실히 내공이 상당히 높은 맛이었다. 단순한 짠맛이 아니라 최소 2년은 숙성된 듯한 그러한 깊은 짠맛이었다. 그 짠맛은 시원함으로 승화되어 중독성까지 띠고 있었다. 이러한 숙성이 마치 비법인 듯 다른 반찬들도 저마다 오랜 숙성으로 한층 더 깊은 맛을 뿜어내고 있었다. 확인해 보지는 않았지만 필자의 미각으로는 앞서 언급했듯이 최소 2년의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다음으로 국수사리에 동치미 국물을 넉넉히 부은 뒤 살살 달래듯 면을 국물에 풀어 한 젓갈 후루룩 맛보았다. 100% 순메밀은 아니고 어느 정도 전분기가 있어서 냉면에 가까운 식감을 뿜어냈다. 아마도 면의 굵기가 세면이어서 그런 듯 냉면처럼 입안에서 착착 감기는 얄궂은 식감이었다. 냉면은 원래 취향에 맞지 않아 문외한이지만 추측하건대 면의 전분함량이나 두께를 봐선 강원도 고성 쪽은 함흥냉면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았다. 그렇게 면으로는 별다른 특이점을 못 느꼈지만 그럴 때마다 나를 달래주는 것은 시원한 동치미 국물이었다. 동치미 국물 하나는 전국구 스타감. 입이 점점 심심해져서 시간이 지날수록 국물에 양념장과 겨자를 넣고, 심지어 명태회무침도 국물에 살살 풀어 순수했던 동치미 국물을 더럽?혀 갔지만 기본 베이스가 워낙 탄탄한 지라 맛이 크게 훼손되지 않았다. 자리를 일어서면서 적당한 포만감에 보통을 시키기 잘했다 생각이 들었지만 여름에 땀 뻘뻘 흘린 날 메밀국수 한 그릇 먹으로 온다면 무조건 곱빼기를 시켜야 될 듯했다. 멀리서 찾아갈 만큼 맛집이긴 하나 코로나 시대에 걸맞지 않은 테이블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좁디좁은 내부와 주말 오랜 웨이팅으로 생길 불쾌감이 괜스레 걱정되는 집.
동치미 국물이 다했다.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