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구역 근처 일본 라멘 맛집
비가 냥냥펀치 마냥 타격감 없이 내리는 평화로운 주말이었다. 집안에서 시간을 보내자니 답답함이 느껴져 외출을 했다. 게더투게더라는 새로 생긴 카페에 들러 커피와 함께 책도 읽고 글도 끄적이며 시간을 보냈다. 11시 즈음 들어갔을 때는 우리 말고 다른 손님이라곤 갓난아이를 데리고 온 젊은 부부 한 쌍과, 홀로 어떤 작업에 열중이신 아저씨 한 분이 다였다. 덕분에 서로가 무언의 약속이라도 한 듯 조용조용한 면학 분위기를 조용하였고 카페에서 틀어준 lofi 음악 소리가 오히려 시끄럽게 느껴졌다. 그러한 분위기 오래 가진 않았다. 한 시간 즈음 지나자 한 팀 두 팀 들어오기 시작했고 이내 모든 좌석이 가득 찼다. 그제야 음악 소리가 안 들리는 구나 알아차렸다. 어찌나 시끄러웠는지 서둘러 짐을 정리하고 밖으로 나섰다. 생각보다 떨어진 기온에 움직임으로 체온을 유지하려고 부지런히 걷기 시작했다. 비는 내리다 말다 반복하였다. 우산을 쓰기도 안 쓰기도 애매한 정도였다. 그렇게 걷다 보니 점심시간이 훌쩍 지났고 시장기가 몰려왔다. 비 오는 날에는 짬뽕이지라는 말이 나오기 무섭게 일본라멘 식당이 눈에 들어왔다. 개업을 한 지 1년 채 안되었고 오고 가며 몇 번 눈으로 지켜본 식당이었다. 비도 오고 그러니 가볍게 라면 한 그릇 먹자고 복숭아씨와 눈빛으로 텔레파시를 주고받고 식당 안으로 들어섰다.
식당 안은 약간 어두운 느낌이었다. 비가 와서 날이 흐려서 그런 거 일 수도 있겠다. 테이블이 따로 있는 자리는 없었고 전부 주방과 연결된 바테이블 형식이었다. 사장님 홀로 일을 하셔서 많은 손님을 감당하기 위해 그런 것 같았다. 우리가 식당에 들어갔을 땐 손님이 한 명도 없어서 브레이크 타임인가? 걱정하며 사장님께 식사되는지 여쭈어 보니 다행히 가능하다고 하셔서 바테이블 제일 안쪽에 자리를 잡았다. 시간을 보니 2시 정도 되었다. 메뉴는 굉장히 심플했다. 토리빠이탄과 탄탄멘 2종류의 면음식이 있었고 고명을 추가할 수 있었다. 사이드로는 닭카츠와 고기밥, 그리고 공깃밥이 다였다. 우리는 처음부터 간단한 식사가 목표였기 때문에 토리빠이탄과 탄탄멘을 하나씩 주문하였다. 사장님께서는 서둘러 조리하기 시작하셨는데, 기본적으로 육수와 면 그리고 고명들이 잘 정리되어있어서 뚝딱뚝딱 마치 기계 공정처럼 일사불란하게 조리하셨다. 음식이 나오자 한 두 팀씩 손님들이 가게안으로 더 들어오기 시작했다.
먼저 토리빠이탄부터 맛보았다. 비주얼은 말 그대로 흰 닭육수였다. 토리빠이탄은 닭을 넣고 고온에서 푹 끓여 만드는 육수를 말하는데, 한국으로 치자면 몇 시간 푹 고아낸 닭곰탕에 비유할 수 있겠다. 이 식당의 토리빠이탄은 육수가 하얗다 못해 누리끼리했다. 어찌나 푹 고아냈는지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떠오르며 약간의 불안감이 엄습했다. 원래 노란색은 경고를 뜻하지 않는가. 하지만 한 숟갈 맛보니 진국은 진국이었다. 내가 느끼기에는 오로지 닭 하나로 한우물을 판 것 같았다. 고명에 닭고기차슈가 올라오기 때문에 그렇게 유추하기도 했다. 식당마다 저마다의 비법으로 원조격인 닭육수를 베이스로 돼지뼈나 다른 육수를 블렌딩 하는 것으로 아는데, 이 집에서는 순수한 닭의 맛이 온전하게 느껴졌다. 음식에 대한 주인의 고집스러운 철학이 담겨있는 것 같았다. 그런 음식은 존중하며 맛 봐야 하기 때문에 보다 신중하게 맛을 보았다. 다행히 짠맛은 크게 느껴지지 않았지만 약간의 느끼함과 텁텁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오래간만에 이렇게 고집과 철학으로 만들어진 음식을 접하니 만족스러웠다. 고명은 멘마로 불리는 우리나라말로 죽순과 닭고기 차슈, 반숙계란 그리고 옥수수 제일 끄트머리 부분 같은 것이 올라가 있었다. 고명 하나하나가 정성으로 준비되었다는 게 맛으로 느껴졌다. 닭고기 차슈는 가슴살로 만든 것 같았는데, 텁텁함은 정말 1도 없었다. 어찌나 부드러운지 어린아이가 엄마에게 찌찌 달라고 어리광 부리듯 가슴살보단 찌찌살이라는 이름이 잘 어울릴 정도였다. 차슈는 원래 중국의 차사오라는 말에서 유래된 것으로 삶아낸 고기를 다시 구워내는 요리로 알고 있었다. 추측하건데 닭 가슴살로 육수를 내고 특별한 비법으로 시즈닝을 한 뒤 오븐에 잘 구워내지 않았을까. 긴 말 필요 없이 정성이 느껴졌다. 반숙달걀도 끓는 물에 적당히 삶아낸 것이 아니라 아지타마고로 불리는 우리로 치면 달걀장조림과 비슷해 보였지만 엄연히 클래스에서 장조림과는 차이가 났다. 노른자가 보기만 해도 촉촉해 보이는 것이 젤리와 같았고, 적절하게 익은채 간이 잘 되어 있었다. 나의 미각으로는 달고 짠맛이 노른자에 과하지 않게 잘 스며들어 있었다. 고명에 큰 감동을 하며 본격적인 식사를 하기 위해 면치기를 시전 하였다. 후루룩 한입 넣고 열심히 씹으며 음미를 해보았는데 고개가 갸우뚱했다. 면에 메밀껍질 같은 굵은 입자가 느껴져서 순메밀면을 먹는듯 약간 거친 식감은 독특하고 재미있었는데, 전반적으로 글루텐의 끈적끈적함이 치아 사이사이로 느껴져서 솔직하게 불편한 식감이었다. 면의 겉에 묻어있는 밀가루가 과도하게 많은데 그대로 삶아 곧바로 나오니 그렇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면의 굵기나 익은 정도는 괜찮은데 끈적이는 식감이 나와는 맞지 않았다. 면 한 번은 무료로 리필되어서 사장님께 요청을 하고 면이 어떻게 삶아지는지 주의 깊게 관찰하였는데, 역시 면을 뜨거운 물에 삶자마자 바로 그릇에 담아주셨다. 필자는 삶고 나서 면을 찬물에 헹궈서 나오는 탱글한 우동면발에 너무 익숙해져 있는 모양이다. 일본라멘에는 문외한이어서 그런 것 같다. 이것이 일본라멘 면발의 고유의 식감인가 궁금증이 생겨났다.
다음으로 탄탄멘을 맛보았다. 탄탄멘은 원래 중국음식인데 일본라면집에서 팔길래 순간 의아함을 느꼈고 주변을 두리번 살펴보았다. 여기저기 일본라멘잡지와 인테리어 소품이 눈에 들어와 일본라멘집은 맞는구나 확인하였다. 딴딴면이라고 중국 사천지방의 전통요리로 면이 탄탄해서 이름을 그렇게 붙였나 착각할 수 도 있지만 사실 한자로 擔(멜 담)이라고 한다. 영화 쿵푸팬더에서도 잠시 나오는데 긴 막대기 양쪽으로 양동이를 걸어 그걸 어깨에 메고 다니면서 팔았기 때문에 딴딴면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실제로 중국어 발음으로 봤을 땐 dān으로 딴이라는 소리에 더 가깝다. 일본라멘집에서 탄탄멘이라니 다소 생소했다. 일본식 탄탄멘은 어떤 맛일까 궁금했고 비주얼을 보니 아주 강렬한 붉은 고추기름에 깨가 솔솔 뿌려져 있고, 면과 그위로 파와 고기 고명이 층층이 예쁘게 쌓아 올려져 있었다. 어떤 식당에서는 국물이 흥건히 나오는 곳도 있는데 오리지널 탄탄면은 비빔면에 가깝기 때문에 이런 면에서 또 한 번 주인장의 전통을 중요시하는 음식에 대한 철학을 느낄 수 있었다. 야무지게 잘 비비니 탄탄멘 특유의 고소한 향이 먹어보기도 전에 풍겨졌다. 비비기 전에는 매운맛이 강렬하게 날 것 같아 긴장하였는데 비비고 나니 맛깔스럽게 노르스름해진 것이 마치 크림파스타 같은 질감에 긴장감은 사라졌다. 한 젓가락 맛을 보니 땅콩 특유의 고소함이 가장 먼저 느껴졌고, 다음으로 후추로 생각되는 향신료의 향이 서서히 올라왔다. 맛이 괜찮았다. 하지만 소스가 재료부터 원래 기름져 느끼한 맛은 피할 수 없었다. 다만 메뉴판에 안내되어있다시피 흑식초를 기호에 맞춰 첨가해 먹으니 흑식초의 묵은 상큼함으로 느끼함을 지그시 눌러 버릴 수 있었다. 흑식초보다는 후추가 뭔가 일반 후추와는 다르게 확실히 특유의 향을 강하게 가지고 있어 더 맛보고 싶었다. 하지만 어느새 만석이 된 자리에 너무 바쁘게 조리하시는 사장님을 보니 사적인 부탁을 하기에 죄송스러워서 참았다. 면은 확실히 기름에 코팅이 되어서 토리빠이탄처럼 끈적이는 식감은 전혀 없었다. 탱글탱글한 것이 입에 넣고 오래 씹어 음미하기 딱 좋은 식감이었다.
오늘은 카페나 식당에서나 한적하게 자리에 앉아 북적이며 떠밀리듯 자리를 나서는 특이한 경험을 했다. 이런 색다른 경험이 필자는 사실 거북하였다. 아마도 코로나 후유증인 것 같았다. 특히나 사회가 겪는 후유증이 아닐까 싶다. 조용조용히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별 탈 없이 2년여간 살아와서 그런 거리감에 익숙해져 버린 것 같다. 코로나가 종식되어서 다시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간다면 사람들 각자의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이러한 각자의 노력이 모이고 또 모여서 사회의 노력이 되지 않을까. 자리를 일어서면서 북새통 분위기에 빨리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는데, 조용히 글을 쓰며 그때 느꼈던 음식을 떠올려 보니 좋은 식당이었다. 독자분들에게는 이렇게 추천해드리고 싶다. 현지 일본라멘의 맛을 대구에서 느껴보고 싶다면 이 식당에 방문하라고.(참고로 필자는 일본 현지라멘을 먹어본 적이 없습니다ㅠㅠ 감안해주세요.) 한국인의 입맛에 어느 정도 타협을 하여 조리하는 여느 라멘집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만족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새로운 경험은 인생의 소중한 재산이 되지 않는가.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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