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월 목련시장 안 노포 맛집
완연한 봄이 와서 그런지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이마에 송골송골 맺히는 날씨였다. 간단한 부모님의 심부름을 하고 나니 어느덧 점심 무렵이 되었다. 인류의 영원한 고민 중에 하나가 바로 뭐 먹지? 일 것 같다. 배부른 소리다. 다른 동식물들은 그저 주어지는 대로 군말 없이 생존을 위해 양식을 몸에 비축하는 방면 인류는 문화적으로 너무나 많은 발전을 이루어서 무엇을 어떻게 잘 먹을지를 고민을 한다. 이렇게 높은 수준으로 식문화가 쌓아져 온 것에 대해 조상들에게 감사함을 느끼고 나 또한 사명감을 가지고 발전을 이어 가고자 한다. 이렇게 거창한 고민 끝에 선택된 메뉴는 바로 보리밥이었다. 현대인에게 보리밥은 주말에 더 어울리는 음식으로 변모하였다. 과거에는 보릿고개라고 불릴 정도로 보리밥은 가난하고 배고픔의 상징과도 같았는데, 요즘은 함유하고 있는 비타민과 갖은 영양소로 건강의 대명사로 떠오른다. 그야말로 환골탈태하였다. 그래서 그런지 도심지역에서는 쉽사리 볼 수 없고 근교 나들이가면 볼 수 있는 토속식당에서 청국장과 듀엣으로 보리밥을 접할 수 있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였을 때도 처음 추천된 곳은 팔공산에 위치한 식당이었다. 주말 봄나들이객이 많을 것으로 예상되고 또 거리도 생각보다 멀어서 가장 근처에 있는 식당으로 가기로 하였다. 상호명도 '보리밥상'이길래 보리밥 전문점의 느낌도 물씬 풍겨서 기대하며 향했다.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받아 도착해보니 엄청난 인파가 득실거렸다. 바로 반야월 시장날이었기 때문이었다. 식당은 목련종합시장 내에 노포식당으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우린 약간 떨어진 마트에 주차를 하고 걸어서 식당으로 향했다. 도착하기 전 '부부식당'이라는 식당이 손님으로 가득 차 있었고 그 모습이 우리를 유혹하였다. 하지만 선지 해장국을 메인으로 팔길래 선지에 대해 거부감이 있는 필자는 그 유혹을 쉽게 떨쳐낼 수 있었다. 북새통인 시장과는 다르게 가게 안은 한산하였다. 조용한 '보리밥상'식당에 들어가 보니 노포치곤 꽤 넓었다. 12명 정도 단체로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이 식당 중앙에 길게 자리 잡고 있었고 그걸 중심으로 양쪽으로 3 테이블씩 띄어져 있었다. 그래도 노포라는 게 실감 나는 것이 주방 옆에 1평도 안 되는 크기로 사장님께서 쉬시는 공간이 오밀조밀하게 마련되어 있었다. 우린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보리밥정식 2인분을 주문하였다. 나이 지긋하신 주인장 혼자 계셨는데, 혼자 주문을 받고 조리를 하고 서빙까지 하시는 모습이 대단해 보였다. 혼자 일하시는 것치곤 빠르게 음식이 나왔다. 큼직한 오봉에 여러 반찬들과 찌개 그리고 공깃밥이 한상 담겨 나왔다. 오봉채 그대로 주셔서 될 듯한데 주인장께서는 일일이 테이블로 내려다 주셨다.
정식의 구성은 이러하였다. 기름에 바싹 구운 고등어구이와 된장찌개 그리고 시금치무침, 오이무침, 물김치, 감자조림, 어묵볶음, 김 마지막으로 계란후라이로 상이 푸짐하게 차려졌다. 먼저 반찬부터 맛보았는데 70은 족히 넘어 보이시는 주인장의 깊은 손맛이 느껴졌다. 흔한 밑반찬이지만 주인장 특유의 개성이 반찬 하나하나 잘 담겨있었다. 오이무침에는 달래가 들어가 있어 봄의 향기를 느낄 수 있어서 아주 좋았다. 시금치무침은 간이 적절하게 잘 되어있었고 감자조림에는 귀여운 느타리버섯이 같이 있어 먹는데 재미가 쏠쏠했다. 밑반찬만 먹더라도 내공으로 꽉 차 있는 묵직한 맛에 부족함을 느끼지 못했을 것 같다. 하지만 찌개를 또 빼놓을 수 없지 않겠는가. 처음에는 고추장찌개인가? 싶을 정도로 일반 된장찌개에 비해서 뻘건색을 띄고 있었는데, 메뉴판에 된장찌개라고 정확히 명시되어있어서 된장찌개구나 알 수 있었다. 한 숟갈 맛보니 육성으로 "어~헛! 헛!" 소리가 터져 나왔다. 확실히 고추장이 들어가서 얼큰한 맛이 충분히 느껴졌다. 필자는 과거 조리학원에서 요리를 배울 때 국물요리에 고추장이 들어가면 전분기 때문에 국물이 걸쭉해지니 고춧가루가 국물요리에 더 잘 어울린다고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집 된장찌개는 고추장이 들어간 것 같지만 결코 걸쭉한 느낌은 없었다. 주인장의 뭔가 비법 레시피가 있는 듯했다. 그것 말고는 여느 평범한 가정식 된장찌개였다. 들어가 있는 재료도 두부, 파, 애호박 그리고 홍합살 몇 개가 다였다. 역시 반찬과 마찬가지로 기가 막힌 간조절로 맛깔스럽게 숟가락이 계속 가는 찌개였다. 고등어구이는 크기가 땅딸막해서 그렇게 좋은 고등어는 아닌 것 같았지만 어찌나 기름에 바싹 구우셨는지 고소한 것이 뼈째 먹어도 될 정도였다.
마지막으로 오늘의 주인공인 보리밥에 대해서 말해보고자 한다. 사실 적잖이 실망하였다. 꽁보리밥이 나올 줄 알았기 때문이다. 꽁보리밥이란 쌀을 전혀 섞지 않은 100% 보리로만 지어진 밥을 말한다. 꽁보리밥은 알알이 따로 놀기 때문에 밥을 하기 전에 충분히 물에 불려야 하고, 또 먹을 때도 잘 씹히지 않고 요리조리 어금니의 압력을 피하기 때문에 천천히 꼭꼭 씹어먹어야 된다. 먹는 이로 하여금 신중해지게 하는 꽁보리밥을 필자는 원했는데, 막상 나온 보리밥은 쌀 + 보리로 지어진 요즘 흔히 먹는 보리밥이었다. 사실 필자의 식성이 독특해서 그렇지 쌀이 어느 정도는 들어가야 편하고 맛있게 보리밥을 즐길 수 있다. 많이 이들이 쌀+보리밥을 더 선호할 것이다. 이 집은 보리를 충분히 물에 불려서 그런지 쌀과 보리의 식감의 차이가 거의 없었다. 그만큼 밥이 잘 지어져 목으로 잘 넘어갔다. 그래서 맛있는 공깃밥 정도의 느낌으로 건강해지고자 하는 나의 욕심을 채워주진 못했다.
애당초 바라고 왔던 건강해지는 느낌은 받진 못했지만 포만감으로 아주 기분 좋게 식사를 마쳤다. 식사를 마치고 난 후 숭늉 한 그릇 맛보았는데 진국이었다. 괜히 보리차를 끓여 마시겠는가 보리밥으로 만든 숭늉은 쌀밥 숭늉에서 느낄 수 없는 보리 특유의 고소한 풍미가 그득하였다. 혼자 일하시는 주인장을 위해 반찬, 쌀 한 톨 남김없이 싹싹 먹고 그릇도 치우기 쉽게 층층이 잘 쌓고 나왔다. 오래간만에 식당에서 어머니가 해주시는 밥을 먹은 것 같은 기분에 육체보다는 오히려 정신이 건강해진 것 같다. 집 근처에 있다면 가끔씩 방문해서 편하게 밥 한끼 하고 싶은 그런 정겨운 맛집이었다.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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