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허영만백반기행 순대 맛집
일주일 중 가장 고되다는 금요일 오후였다. 일찍 퇴근을 하고 집에서 쉬고 있던 중 부지런하게 반려견 재와 함께 복숭아씨 퇴근길에 마중을 나가야겠다 생각이 들었다. 복숭아씨는 뒤늦게 회의가 생겼다며, 천천히 나오라는 말을 해주셨는데 늦으면 얼마나 늦겠나 싶어 제대로 산책이나 할 겸 서둘러 집 밖을 나섰다. 그때의 시각이 pm 4:30. 오랜만에 낯선 동네의 입지를 분석하며 요길조길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어느덧 pm 6:00. 원래 복숭아씨의 퇴근시간이 4:30분인걸 감안했을 때 이때쯤이면 회의가 끝나야 되지 않겠나 싶어서 다시 복숭아씨의 직장으로 갔는데 30분 넘게 기다려도 깜깜무소식이었다. 결국 15분 정도 더 기다리니 복숭아씨가 너무나도 지친 기색으로 퇴근을 하셨고 오래 기다렸냐라는 미안함이 담긴 질문에 걱정 끼치지 싫어서 방금 막 도착했었다고 착한거짓말을 하였다. 우린 터벅터벅 30분가량 더 걸어 집으로 도착을 했고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 우리를 위로해줄 따뜻한 저녁을 찾았다. 얼마 전 허영만 백반기행 팔공산편에 나온 순대집이 생각이 났다. 집 근처에 있어서 서둘러 마지막 힘을 쥐어 짜내며 식당으로 향했다. 도착을 하자 일단 당황스러웠다. 가게 내부가 너무 협소하였기 때문이다. 4인 테이블 4-5개 정도 있었는데 그마저도 다닥다닥 붙어있었고 하물며 금요일 퇴근 후 소주 한잔에 삶의 애환을 달래는 아저씨 무리들로 가득 차 있었다. 발길을 돌릴까 했는데 우리의 모습을 보고 손님 두 분이 얼른 식사를 마치고 일어나 주셔서 테이블이 치워지기 잠시 기다렸다가 식당 안으로 들어섰다. 말 그대로 비집고 들어가 구석진 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메뉴는 순대와 홍어가 주메뉴였고, 허영만백반기행 특선 세트 메뉴도 있었는데 순댓국 1그릇 + 왕순대를 28,000원에 팔았다. 워낙 시끄럽고 어수선해서 얼른 식사만 후딱 하고 싶은 마음이 커 우리는 명품순대국밥 두 그릇만 주문하였다. 주문하자마자 남녀 손님 두 분이 들어오셨고 우리가 앉아있던 4인 테이블을 수저통과 티슈로 반을 갈라 우리 바로 옆에 자리 잡으셨다. 코로나 시국에 거리두기를 하지 않는 식당 운영에 실망감이 컸다. 하지만 우린 너무 지쳐있었고 우리에게 필요한 건 오직 뜨끈한 순댓국뿐이었다.
곧 반찬과 밥이 나왔다. 순대국밥집의 국룰인 깍두기와 고추된장무침과 정구치무침(부추무침)이 기본으로 나왔고, 양파절임과 오이무침, 어묵조림, 콩나물무침 그리고 큼직한 구운 김이 나왔다. 백반 차림상 같이 8첩 반상이 나오니 테이블도 허전하지 않고 마음이 푸근해졌다. 일단 맛을 조금씩 보았는데 지극히 평범하였다. 새우젓은 충북 보은의 한 식당에서 먹었던 새우젓과 같은 특별한 향이 없어서 약간 실망했다. 일반 시중에 파는 새우젓 그대로였다. 깍두기도 잘 익은 것 말고는 특출난 점은 없었고 다른 반찬들 모두 마찬가지였다. 양파절임의 간장 맛이 진해서 조금은 특별한 레시피가 있지 않을까 싶었다. 밑반찬은 맛없지도 맛있지도 않은 여느 식당의 평균치 수준이었다.
아기다리 고기다리 던 순대국밥이 보글보글 끓으며 우리 앞으로 나왔다. 끓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마음이 후끈해졌다. 식당 벽면의 안내문에는 "후추, 면, 들깨가 기본으로 들어있으니 기호에 맞지 않는 손님은 넣지 말라고 따로 말씀해 주세요"라고 쓰여 있었는데 우리는 셋다 좋아해서 주시는대로 먹었다. 이렇게 삼총사가 완전체로 나오니 당연히 면부터 손이 갔다. 순댓국에 칼국수 면이라니 황당하기도 했는데 한편으로는 노동에 허기진 분들의 배를 충분히 채워주기위한 주인장의 따뜻한 마음씨가 담겨 있는 것 같아 감동을 받았다. 후루룩 면치기를 시전 해보니 특별한 면은 아니고 설렁탕에 소면이 들어가는 것처럼 단순히 포만감을 위한 면인 것 같았다. 적당한 양의 식사를 원하시는 분이라면 면은 따로 추가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다음으로 곧바로 이 집의 하이라이트인 순대를 맛보았다. 보기에도 일반 찰순대가 아닌 순대 곱창 껍데기에 갖은 재료들을 가득 넣어 만든 순대였다. 한입에 넣기 부담스러울 정도의 크기였는데, 그 맛을 온전히 즐기고 싶어서 한입에 넣고 우걱우걱 씹어보았다. 처음 씹을 때는 '아 이거 내가 못 먹는 순대다'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충북 보은] 김천식당'편에서 그 이유에 대해 설명하였는데, 돼지 냄새가 심하게 나는 피순대는 필자는 잘 먹지 못한다. 처음 씹을 때 그 돼지 냄새가 날 것 같아서 순간적으로 아차 싶었는데 계속 씹으니 역한 냄새가 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씹으면 씹을수록 무언가 입속에 화~한 느낌이 점점 올라왔다. 필자가 느끼기엔 경상도에서 보신탕이나 추어탕을 먹을 때 필수적으로 넣어먹는 산초가루 혹은 제피가루라 불리는 향신료의 향이 강하게 느껴졌다. 정식 이름은 초피나무라고 하는데 이 열매의 껍질을 '제피'라고 한다. 매콤하고 톡 쏘는 향이 특징이어서 주로 역한 냄새를 잡는 역할로 자주 사용된다. 필자는 제피가루를 좋아하는 편이어서 괜찮았는데 문제는 그 세기가 생각보다 강했다. 역류성 식도염 환자가 먹으면 안 되겠는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순대와 국물을 계속 먹다 보니 목 깊숙이 화~한 느낌이 강하게 들어 나도 모르게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고기는 깔끔한 돼지 살코기가 주를 이루었는데 먹었을 때 지극히 평범한 돼지 냄새가 나서 잡내를 잡기 위한 특별한 레시피를 쓰시진 않았구나 생각 들었다. 보아하니 옆 테이블에서는 허양만백반기행 세트를 주문해서 찜기에 후끈하게 올라온 왕순대를 먹으셨는데, 주인분이 그 손님들에게 설명해주길 김에 순대와 나물장아찌를 잘 싸서 먹으면 맛있다고 하셨다. 우리에게 나물장아찌는 없었지만 김이 있었기 때문에 나도 한번 그렇게 싸 먹어보았는데 확실히 김의 고소한 맛이 순대의 센 향을 어느 정도 잡아주었다. 확실히 호불호가 갈릴 순대의 맛이었다. 시장이 반찬이었기 때문에 둘다 맛있게 다 먹고 서둘러 자리를 일어섰다. 이유인즉슨 고된 일상에서 소주 한잔 기울이며 즐거운 한때를 보내시는 아재들의 들뜬 목소리는 상상 그 이상으로 시끄러웠다. "그게아이고!!마따마따&#^..."
큰 명성에 비해 실망감이 큰 식당이었다. 주메뉴가 순대 말고는 홍어이기 때문에 굳이 이 식당에 다시 방문하진 않을 것 같다. 순대에는 확실히 주인장의 음식에 대한 철학이 담겨있는 게 느껴졌지만 필자의 개인적인 성향과는 잘 맞지 않았다.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적절한 것 같다. 힘을 조금만 빼면 먹기에 더 편하지 않았을까 싶다. 티비에서 보았던 주인장분이 순대에 쏟는 정성을 필자가 건방지게 제대로 느끼지 못해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냉정하게 보았을때 일반 순댓국식당에서 파는 순댓국과 크게 차이점을 느끼지 못했다. 다만 안에들어가는 순대가 다를 뿐. 정신집중해서 미식을 하기 위한 것보단 우리네 경상도 토박이 아버지들을 모시고 왕순대 한 접시, 홍어 한 접시 그리고 국물요리 하나씩 정감 있게 주문해서 소주 한잔 같이 기울이기에 아주 좋은 식당이지 않을까. 추어탕 드실 때 항상 '국산' 제피가루를 찾으시던 아버지를 떠올리며 이 글을 마친다.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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