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로동 삼계탕, 가벼운 한정식 맛집
근검절약이 몸에 배어있어서 그런지 필자의 커플은 캠핑의자 하나 없는 처지였다. 그래서 몇 년째 산으로 들로 봄나들이 나갈 때마다 돛자리 신세를 면치 못했다. 그러던 중 얼마 전 큰마음 먹고 캠핑의자를 구입하였다. 우리는 설레는 마음으로 캠핑의자를 껴안고 인적 드문 우리들만의 아지트로 향했다. 도착을 하니 꿀이 그득한 봄꽃이 한창 피어있어서 벌들과 새들이 당분을 섭취하느라 바빴다. 우리도 부지런히 캠핑의자를 조립하고 적당한 볕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휴식을 취했다.
간식거리로 대구에 생긴 제로웨이스트샵과 비건식당을 함께 운영하는 '#더커먼'이라는 곳에서 팔라펠 샐러드를 포장해와서 먹었다. 100%비건요리여서 맛은 그닥. 적당한 요기후 봄볕이 마치 수면광선과 같아 자연스럽게 낮잠을 즐겼고, 반려견 '재'만 사냥개의 본능이 살아난 듯 꿩을 쫓느라 사방팔방 돌아다녔다. 나른한 오후를 맞이하며 평화로운 봄나들이를 잘 마무리하니 때마침 시장기가 찾아왔다. 주변을 산보하며 요깃거리로 먹었던 샐러드를 마저 소화시키고 난 뒤 근처 식당으로 향했다.
그곳은 기와집이라는 식당이었다. 필자가 대구에 처음 왔던 2012년부터 1년에 한두 번씩은 꼭 방문할 정도로 정감 있는 단골식당인 기와집은 삼계탕과 가성비 괜찮은 한정식을 주로 파는 꽤나 오래된 식당이다. 점심시간이 지난 뒤여서 식당은 한산했는데, 다행히 식사가 가능하다고 하셔서 자리를 잡았다. 고즈넉한 시골 '큰'집 느낌의 식당은 꽤나 큰 편이다. 몇몇 나무로 잘 조경해놓은 너른 마당에는 봄꽃이 만개해있었고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안방과 작은방들로 이루어진 본채에는 손님의 기호에 맞게끔 좌식 테이블과 의자 테이블이 종류별로 있었다. 그 옆에는 주방이 있고, 또 옆에는 별채가 있는데 단체 회식을 하기 좋게 널찍하다.
우린 안내받은 대로 의자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메뉴판을 훑어보았다. 평소 방문하였을 때 삼계탕과 한정식만을 주문하는 편이었는데 오늘따라 새로운 메뉴가 눈에 들어왔다. 한정식도 12,000원으로 저렴한 편인데 갈치찌개도 1인분에 12,000원 이길래 어떨까 궁금해졌고 가격도 갈치찌개 치곤 비싼 편은 아니어서 부담 없이 주문하였다. 그리고 빠질 수 없는 사이드 메뉴가 바로 촌두부였다. 처음 복숭아씨와 함께 방문했을 때 멋모르고 촌두부를 시켰었는데, 그때 그 고소한 두부의 맛을 잊을 수가 없었다. 특이하게 양배추를 채 썰어서 두부와 함께 나왔었는데 그때 그 맛이 그대로이길 기대하며 주문하였다.
금방 촌두부와 반찬들이 나왔다. 가장 먼저 촌두부부터 맛보았다. 주문할 때 요구사항으로 두부를 따뜻~하게 해달라고 당부했는데 처음 나온 비주얼을 보고 살짝 당황하였다. 냉두부무침이라 불러도 이상하리 없을 것처럼 신선한 상추 겉절이와 김가루가 두부 위에 소복이 덮어져 나왔다. 옛날처럼 양배추채는 아니지만 촌두부의 느낌은 비슷하였다.
믿음을 갖고 숨어있는 두부를 찾아내서 꺼내보니 역시나 김이 모락모락 나는 것이 그 특유의 고소한 콩향이 코끝을 찔렀다. 따뜻한 두부와 상큼하고 시원한 상추를 함께 먹으니 그야말로 별미였다. 게다가 김가루가 어찌나 고소하던지 볶음밥에서나 느낄 수 있는 김가루의 고소한 맛과 향이 촌두부의 끝 맛을 알차게 마무리해 주었다. 복숭아씨는 처음 먹었던 것처럼 양배추가 덮여있는 것도 아니고 소스도 그때랑은 맛이 다르다고 다소 실망했지만 따뜻한 두부를 입에 넣으니 은근한 미소를 지었다.
밑반찬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었다. 한번 들어보면 깜짝 놀랄 정도로 무거운 놋쇠 그릇에 여느 평범한 종류의 반찬들이 담겨 나왔는데 맛은 평범함과 거리가 멀었다. 일단 잡채가 따뜻해서 좋았다. 당면이 불어있는 정도가 갓 한 것 같진 않았지만 먹기 좋게 한번 데워서 나왔다. 이 집의 시그니처 반찬인 김절임도 여전히 밥도둑의 기질을 잘 간직하고 있었다. 하지만 필자의 입맛이 세월이 지나감에 따라 바뀌었는지 이제 너무 달게 느껴졌다. 김절임은 흔하게 접하지 못하는 반찬인지라 한 장도 안남기도 잘 먹었다. 푸릇푸릇한 계절 나물 무침도 아주 신선해서 맛이 좋았고 고사리 무침도 어찌나 부드러운지 애기들이 먹어도 좋아할 것 같았다. 우엉조림은 잘 튀긴 뒤에 달콤하게 살짝 졸여서 나왔는데 이것도 아주 달짝지근해서 애기들이 좋아할 것 같았다.
필자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반찬은 콩나물무채였다. 명절 제사지내고 밥을 먹을 때면 고사리, 시금치와 함께 삼색 나물로 상에 올랐는데 이렇게 따로 먹으니 그 순수한 맛이 잘 유지되어 있었다. 오로지 콩나물과 무만의 채즙이 국물에 잘 베여있었고 참깨가 한 꼬집 뿌려져 있어 심심한 맛을 잘 커버하였다. 담백함과 순수함의 끝판왕이었다. best 3를 굳이 꼽자면 콩나물무채, 연근조림, 김절임 되시겠다. 씨의 best 3는 이름모를 초록나물무침, 고사리나물, 고구나줄기볶음이다.
오래된 부르스타와 그것보다 더 오래되어 보이는 전골냄비에 갈치찌개가 가득 담겨 나왔다. 5분 정도 끓이고 먹으라는 주인장의 조언에 따라 바글바글 갈치찌개를 끓였다. 흔한 bgm 하나 없이 조용한 식당에서 찌개 끓는 소리를 들어보신 적이 있는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맛있는 소리에 괴로움을 느꼈고 일각이여삼추였다.
결국 기다림을 참지 못하고 갈치 한덩이와 무 그리고 파를 고루 건져 맛보았다. 기침이 날 정도로 매운맛이 확 느껴졌다. 고춧가루가 엄청 많이 들어있는 듯했다. 갈치에서도 생선 비린내가 살짝 풍겨 '아 생각보다 별론데?'라고 머릿속은 당황함으로 가득 찼다. 이 집은 찌개에 무가 얇고 널찍하게 썰어져 들어가 있었고 무를 한입 베어 물었는데 아삭한 식감에 아직 덜 익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다시 기다림을 시간을 가졌다. 맛있어져라 맛있어져라 마음속으로 주문을 외우면서 촌두부를 부담 없이 계속 먹었으며 기다렸다.
찌개는 확실히 푹 끓이고 나니 고춧가루의 잡내도 없어지고 갈치도 처음보다는 덜 비렸다. 제철도 아니고 신선한 생물 갈치가 아닌지 약간은 오래된 것 같은 특유의 비린내는 쉽게 사라지진 않았다. 하지만 맛이 있었다. "Simple is the best."라는 말이 떠올랐다. 들어있는 건더기도 갈치와 무, 양파, 대파가 끝이었다. 비법 육수가 따로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정말 정직하게 재료에서 우려 나온 달짝지근한 맛과 시원한 맛이 느껴졌다.
고춧가루가 태양초 국산인지 기분 나쁜 매운맛이 아니어서 좋았다. 땀은 삐질삐질 나는데 혀에 고통은 크게 느껴지지 않아 스트레스 해소하기 딱 좋을 정도의 맵기였다. 시뻘건 국물의 외관과는 다른 맵기가 뭔가 어머니에게 혼쭐나는 것보다는 할머니에게 혼나는 느낌이랄까 매는 맞는데 뭔가 정겨워서 거부감이 생기진 않았다.
밥 한공기 말 그대로 뚝딱하였다. 반 공기 정도만 먹을까 고민을 살짝 하긴 했는데, 쓸데없었다. 밥도둑놈들이 어찌나 테이블 위에 많은지 오히려 밥을 한 공기 더 시키면 시켰지 한 공기만으로는 살짝 부족했다. 복숭아씨가 한 숟갈 정도 남기지 않을까 이기적인 마음으로 그걸 뺏어 먹어야겠다 생각을 했는데 복숭아씨도 나와 마찬가지로 쌀 한 톨 남김없이 다 드셨다.
역시 단골식당은 이래서 계속 들릴 수밖에 없구나 생각이 들었다. 어떤 상황에서 가더라도 실망하지 않고 포만감과 만족감을 가슴 가득 채우고 나가니 여러 식당을 다니면서 실망감이 만족감을 밀어내면 다시 만족감을 채우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재방문하는 것 같다.
The end.
이 글은 개인 블로그에 함께 게재된 글입니다.
https://m.blog.naver.com/youdarly/2226904982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