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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준 Oct 15. 2024

삶과 죽음 사이에서

삶과 죽음은  모두 아쉬워지는 것


삶과 죽음 사이에서.....

누구나 살아가는 동안 아주 드물게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한다.

그러니까....

철학적이 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철학의 개념을 찾아보니 "인간과 세계에 대한 근본원리와 삶의 본질 따위를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하면서 "흔히 인식, 존재, 가치의 세 기준에 따라 하위 분야를 나눌 수 있다"(네이버 검색)

부모님께서 생존해 계셨을 때  어머니가 수의를 미리 장만하셔서 옷장 서랍에 넣어 두시던 일이 떠 오른다.

두 분이 80 중반이셨을 때였다.

그때 내 나이 50 초반이었지만 내 앞에 닥쳐있던 일들 때문에 좀 더 깊이 있는 생각을 하지 못했었다. 철이 없었다는 얘기다.

70 세, 정확히는 68 년 9 개월이 된 지금도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심사숙고하는 시간을 가져본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저 막연히 죽음을 맞이할 시간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생각은 자주 하고 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점점 약해져 가는 것을 느낀다.

위에 언급한 철학의 개념에서 '삶의 본질과 존재, 가치'가 죽음의 문제와 연관성이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 의지'를 관철하면서 내 주관대로 살아온 시간들이 얼마나 될까?

내가 태어나는 것부터 내 의지와는 상관이 없었고 내  부모님도 그것은  마찬가지다.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도 나는 내 뜻대로 살아갈 수 없었다.

내가 살고 있는 주변환경과 경제적 상황, 국가와 사회적 여건 등에 의하여 내 삶은 좌우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고교 졸업 후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나는 '내 삶'에 대해 현실적으로 생각 내지는 고민을 할  여건이 마련되었다.

그 이후로 대략 50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그동안은 죽음을 생각하기보다는 어떻게 내게 주어진 삶을 살아야 할까를 막연히 때로는 심각하게 생각하면서 살아왔다.

살아오면서 겪은   갖가지 사건들....

작은 성공과 큰 실패 그리고 시행착오들...,

사랑과 미움(다행히 증오까지 가는 일은 없었으나, 다른 사람들이 나를  증오했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몇몆 이성과의 속물적 관계...

속고 속일 수밖에 없는 생존경쟁관계와 인간관계의 미묘함의 소용돌이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의 한계를 뼈저리게 실감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들이 있고  나는 놈 위에 더 높이 날아다니는 놈들이 있음을 이제나마 알게 되었다.

세상의 권력을 쥐락펴락 하는 권력자들도, 고생고생 끝에 큰돈을 벌고 경제적 파워를 휘두르던 사람들도.....

아무것도 소지하지 못한 채 한 많은 세상을 떠나는 것이 인생임을.....

철학이 아무리 높고 뛰어난 학문인들 우리 인생의 바다에 그 얼마나 영향을 끼쳐 왔을까?

인류의 역사는 우리에게 권선징악을 교훈하고 올바른 삶을 살아갈 것을 가르쳐 주지만, 왜 인간들은 물레방아처럼, 수레바퀴처럼  반복적인 역사의 오류를 쉬지 않는 것일까?

현실 속의 삶의 무게에 짓눌려 허우적거리다

헤어 나오지 못하고 안주해 버리는 인생이 바로 우리들의 현주소다 

잠시나마 나를 나 자신으로부터 격리시키고  냉정하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끊임없이 돌고 도는 인생의 수레바퀴 안에 갇혀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불행 속에서 삶을 영위하지 않고 싶다면 말이다.

잠시 얼굴을 들어 하늘을 바라본다.

거짓 없이 순수한 하늘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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