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기이

맹인들의 코끼리 만지기?

by 이영준

인간이 생존하는 동안에 사용하는 뇌의 기능은 10%도 안된다라는 말이 있지요.


만약 어떤 사람이 그(또는 그녀)가 자신의 뇌기능을 100% 사용할 수 있다면 어떤 일이 발생하게 될까요?


아마도 그(또는 그녀)는 초인적인 능력을 소유하게 되겠지요. 어쩌면 신과 같은 능력의 소유자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로 살아가는 것이겠지요.


우리는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서로를 용납하고 이해하려고 애쓰며 서로의 차이를 인식하고 인정해 줄 수 있어야 하겠지요.


때때로 사소한 의견차이나 생각의 차이로 언쟁이 발생하고 다툼이 일어나는 경우를 우리는 자주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견해차이는 개인 사이에서 뿐만아니라 단체, 사회조직, 나아가서 국가 간에도 발생하는데요.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인간의 뇌의 사용능력의 한계는 결국 인간 고유의 한계로 볼 수 밖에 없다는 것이겠지요.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유명한 말씀과 "다른 사람의 눈의 티를 지적하기 전에 먼저 네 눈의 들보를 보라"는 성경말씀에서 보더라도

이전부터 이미 "인간의 한계성"은 인식되어 왔고 그로인해서 수많은 문제들이 파생되어 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인간은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예술과 문학"도 어쩌면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고픈 끊임없이 계속되는 인간의 노력이 아닐까라는 생각입니다.


누군가가 "한편의 그림에는 수 천 가지의 언어가 있다"는 이야기를 했지요. 자신이 하고 싶은 주제를 말로는 다 표현하거나 설명할 수 없기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으로 우리에게 표현한 작품이라는 것이겠지요.


세계적으로 유명한 음악, 소설, 시,미술작품, 조각작품 등은 언어가 표현하기 부족한 부분들을 "예술과 문학"으로 승화시킨 아름답고 위대한 인간의 결과물, 즉 업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선조들은 "음과 양"의 "대비와 조화"를 설명하면서 오묘한 "인생의 진리"를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지요.


"인간의 양면성"과 연관성이 있는 "빛과 어두움"도


인간의 역사와 함께 지금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빛이 있기에 어두움을 인식하게 되고 "선"이 존재함으로써 "악"을 인식하게 되는 것은 "이들의 공존성"이 불가피한- 아마도 인간의 한계와 무관치 않은 - 어찌할 수 없는 "인간의 숙명"이 아닐까 라는 느낌입니다.


현존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우리는 그래서 -선이 종국에는 악을 이기고 물리쳐야 한다는 공감대의 형성에서 - 끊임없이 보이지 않는 전쟁을 치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역사를 통해서 보는 것처럼, 아무리 완전함을 추구하려고 갖가지 노력을 기울이고 애를 쓴다고 하더라도 "역사의 수레바퀴"는 "물레방아처럼" 반복되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미지기이", "맹인이 코끼리 만지기"를 제목으로 한것은 결국 우리들의 한계를 말하고 싶어서이고,


보다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노력과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러므로 더욱 "인간의 겸손함"을 잊지 말아야겠다 라는 제 자신에게 다시한번 각인시키고자 하는 의미입니다.


오늘의 정치현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면서, 나의 현실생활과 우리들의 삶의 주변을 살펴보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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