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등학생 시절에 우리 가족은 서부역 건너 만리동에서 살았었고 아버지께서 조그만 기원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나와 내 동생은 어깨너머로 아저씨들이 두는 바둑을 보고 조금씩 배우게 되었고 가끔씩 내 동생과 바둑을 두곤 했었다.
그런데 바둑을 둘 때마다 내가 패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때마다 나는 약이 올라서 다시 바둑을 두자고 우기며 도전했지만 결과는 다시 패하는 쓴 맛을 보고 돌(바둑알)을 던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50여 년 전의 이야기지만 그때는 왜 그렇게 속에서 열불이 났었는지......
돌이켜 보면 학창 시절부터 졸업 후 직장생활을 하면서 나는 주위 사람들에게 크건 작건 간에 본의 아니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받기도 했었다. 사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 기억에는 사라진 지 오래되었지만 숱한 인간관계 속에서 모르긴 몰라도 많은 사람들에게 그냥 툭 던진 말 몇 마디에 상대편 당사자가 받은 상처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보편적으로 우리들이 만나는 사람들의 생각과 감정을 우리가 미리 파악하고 그에 따라 적절하게 대응하는 것은 용이한 일이 아니다. 만약 그것을 미리 안다면 서로 감정이 상하거나 언쟁이 벌어지는 불상사를 예방하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뉴스를 통해서 다양한 각종 사건사고를 접한다. 데이트폭행사건, 우발적 살인사건, 이웃 간에 사소한 이유로 물리적인 충돌이 발생하는 사건 등.....
아까 내 동생과 바둑을 두다가 생긴 나의 상한 감정은 너무 사소한 일이지만, 다른 일로 동생과 다투는 일도 많았었던 것 같다. 그때는 어머니께서 형이 져주라고 하시면서 우리 싸움을 말리셨다.
어머니께서 보기에는 누가 잘못했든지 사소한 문제에 불과한 것이었을 것이다.
살아가면서 크던 작던 서로 상처를 주고받는 것이 인생사다. 하지만 때로는 작은 감정의 문제가 큰 상처가 되어 복잡하게 얽히고설켜서 큰 사건이 되기도 하고 심하면 법적 분쟁에 까지 확대되기도 한다.
육체의 상처와 마찬가지로 마음의 상처도 아물기 전에 건드리면 아프다. 그 마음의 상처가 회복되려면 그 상처의 경중에 따라 치유의 기간이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어떤 상처는 사는 동안 계속 따라붙어서 콤플렉스가 되고 트라우마로 남는 경우도 있다.
아마도 내 잠재의식 속에도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트라우마가 있을지 모른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의 기억이다.
내가 부산에 살았을 때 큰 아버님께서는 수색에 거주하였다. 가끔씩 큰아버지께서 사시는 곳으로 가서 지내곤 했는데, 어느 날 강가에서 낚시 놀이를 하다가 미끄러져 강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지금은 생소한 단어지만 `토정비결`이란 신년 운수를 알아보는 책자가 있었다. 지금은 핸드폰으로 검색하면 토정비결이 어떠한 것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한 페이지 안에 작은 글씨로 1~12월까지 월별로 운세를 풀어놓은 것이다. 흔하게 나오는 운세중 한 가지 중에 "물가로 가지 마라. 손재수가 있다"는 말은 거의 빠지지 않는다.
지금도 샤워를 찬물로 하면 숨이 가빠지는 것은 아마도 내 어린 시절 강물에 빠졌던 그 기억이 내 잠재의식 속에 남아 있는 까닭인지도 모른다.
넓은 안목으로 본다면, 어쩌면 개인적으론 큰 상처나 아픔일 수 있고 충격적 경험이 일생동안 남아 있을 수도 있는 기억들이지만, 인생이란 소용돌이 속에서 그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는 각자가 겪게 되는 아니 겪을 수밖에 없는 갖가지 사연들은 어찌 보면 우리의 숙명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도토리 키재기", "오십보백보"라는 속담이 있다.
가급적이면 서로 감정을 건드리지 않고, 상처를 건드리지 않고 살아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하지만 상대방의 모든 상황을 알 수 없는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본의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고 감정을 건드리게 된다.
가급적 서로 이해해 주고 공감해 주는 여유로움이 필요하다. 그것은 "생활의 지식"이 아니라 "삶의 지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