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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vable Mar 23. 2023

낯선 땅에서 만난 스페인 남자

-누군가에게 지극히 평범할지도 모를 우리의 첫 만남 -

영국에서의 유학생활이 익숙해져 갈 즈음이었던 2022년 1월. 


약 3개월 동안의 에어비앤비 생활을 청산하고, 나는 새로운 학교 기숙사로 이사를 했다. 

새로운 내 보금자리에 적응할 틈도 없이, 정말 학교의 모든 사람들을 알고 있는 것만 같은 중국인 언니 '아만다'가 옆방에 살고 있는 중국인 남자애와 엮어주기 위해서 나를 '새해 만두파티'에 초대했다. 마침 같은 층 공유주방에서 하는 파티였고, 새 학기가 시작하기 전에 외국인 친구들을 만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었기에 나는 흔쾌히 가겠다고 대답했다. 사실 아만다가 옆방 남자애를 소개해주기 위한 목적이었기 때문에 그 남자애와 아만다 그리고 나만 장을 보러 같이 갔고 그 남자애 방에서 따로 셋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하지만, 사랑은 타이밍이라고 그랬던가. 

주방의 큰 테이블 가장 안쪽에 앉아있던 유일한 백인이었던 그 남자는 같은 학부의 학생으로 스페인 사람이었다. 한참 학구열과 같은 학부 친구를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는 의지로 활활 불타오르고 있던 나는 교수님들은 어떤지, 팀과제 할 때 피해야 할 사람들은 누가 있는지, 학부 분위기는 어떤지 등등의 질문을 와 다다다 다 이어가며 두 시간가량 만두를 만들어 냈다. 

그날 먹었던 오렌지 쿠키

만두를 한참 같이 만들다가 그 남자가 자기가 만들어 온 후식을 조심스럽게 내밀었다. 그건 바로 오렌지 쿠키. 유일하게 나 혼자 오렌지 주스가 들어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던 순간이었다. 생각해 보면 인연이 꼭 그렇더라. 그날 구워온 쿠키가 왜 하필 오렌지 주스를 하루에 1리터씩 마시던 내 입에 들어왔을까? 그렇게 그 쿠키를 좋아하던 나를 보면서 그 남자는 쿠키를 통째로 나에게 내밀었다. 이때는 몰랐지, 이 쿠키를 몇 번이고 더 먹게 될 줄은. 


안타깝게도 중국인 남자애는 영어를 잘 구사하지 못해서 어느새 대화에서 빠지고 방에 들어가게 되었고, 같은 과 일본인 여자애와 나 그리고 그 남자는 학부 관련 이야기를 더 할 겸 같은 층에 있는 내 방으로 가서 셋이 티타임을 가지게 되었다. 어찌나 할 이야기가 산더미던지. 우리는 처음 만났던 그날 내 방에서 새벽 2시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우리는 인스타그램과 번호를 교환하고 헤어졌다. 


그 이후로 우리는 학부에서 주관하는 소셜이벤트에 친구들과 만나서 같이 참석하기로 했다. 그날 아침 기숙사 1층에서 만났는데, 내 파란 코트를 보고 예쁘다고 칭찬을 해 주었다. 나는 100명이 넘어가는 학생들을 만날 생각에 긴장과 떨림 그리고 빨리 좋은 학생들을 찾아내서 그룹과제 할 팀원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온 머리가 가득 찼었다. 우리는 구석에 앉아서 이야기를 시작했고 나는 다른 친구들을 만들고 교수님들과 질의응답을 하면서 엄청 돌아다녔는데 무슨 아빠처럼 계속 나만 졸졸 따라다니면서 내가 장소를 이동하면 어느샌가 옆에 와있었다. 그리고 옆에서 계속 저 학생은 이렇고~ 이 학생은 이렇다는 꿀팁을 대 방출해 주었다. 

교수님 카메라에도 포착된 우리 모습

그날 소셜이벤트가 마무리되고 친구들하고 모여서 사진을 찍는데, 그 순간 내 허리에 손을 쓱 감았다. 사실 나는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고 내가 이쁘게 나오는데만 신경 쓰느라 허리에 손을 감았는지 어깨에 감았는지 정말 몰랐는데 나중에 이야기해 줘서 알았다. 그날 유독 날씨가 좋아서 노을이 질 저녁즈음에 혼자 다시 산책해야지! 했는데 문자가 띠링하고 왔다. "내가 너랑 같이 가도 되겠니?"하고. 

선물로 받은 버터쿠키

그렇게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두 시간을 넘게 걸었고, 그 남자는 자신이 스페인 요리를 해줄 테니 함께 다음에 저녁을 같이 먹자고 제안했고, 나는 "오 그래? 좋지!" 하면서 다음 약속을 잡았다. 돌아가는 길에 같은 기숙사 3층과 5층에 살아서 1층에 있는 마트에 주전부리를 사러 들렀는데, 내가 좋아하는 버터쿠키가 없어서 엄청 슬퍼했었다. 그런데, 이 섬세한 양반이 이거를 기억하고 함께 저녁을 먹는 그날 선물이라며 직접 만든 버터쿠키 한 상자를 내밀었다. 


나란 여자는 그렇다. 하루종일 함께하는 문자, 나만 졸졸 따라다니던 그 행동들 심지어 저녁까지 만들어 준다고? 아 나를 좋아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을 무렵. 나는 일본인 여자애에게 어떤 학생인지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무슨 일이람? 지난 학기에서 한 개의 전공과목에서 1등을 해서 교수님이 굉장히 아끼는 학생이고 교우관계가 굉장히 좋은 친구야~라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래서 "아 굉장히 성실한 친구구나"라는 생각을 들었다.  그리고 그가 직접 만든 버터쿠키를 내밀었을 때, 나는 비로소 확신했다. "아 이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구나"! 


그렇다고 막 티를 내지는 않았다. 함께 내 방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같이 영화를 보았는데, 영화 중간에 갑자기 어디에선가 손이 쓱 다가오더니 내 손을 잡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때는 도장 쾅쾅으로 "아 맞네 나 좋아하네"라는 생각이 듬과 동시에 올라오는 썸 탈 때의 설렘이 좋았다. 하지만 우리 만난 지 5일밖에 되지 않았는걸?, 개강하기 얼마 남지 않았는데 설마 나 과씨씨되는 건가? 하는 별의별 생각이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다. 그렇게 영화를 다 보고 이야기를 하다가 헤어질 때, 급작스럽게 가벼운 뽀뽀를 당했다. 


스페인 사람이라 인사를 그렇게 하는 건가라고 생각할 수 있었겠지만, 그랬다기엔 가벼운 입술 뽀뽀를 해가지고 뭐지 스페인 사람은 고백을 이렇게 하는 건가? 생각하며 나는 뒷걸음질 치고 "잘 자~~~"하고 문을 쾅 닫았다. 나의 반응에 그 남자는 내가 자기를 싫어하는 줄 알고 그날 밤 마음이 싱숭생숭해서 케모마일 티를 사발로 마셨다고 했다. 나도 내 반응이 오해를 자아낼 만했어서 문자로 해명 아닌 해명을 보내며 저녁에 대한 고마움을 문자로 보냈다. 이때가 바야흐로 2월 1일이었다. 


그렇게 썸을 좀 오래 탈 줄 알았던 내 예상과는 다르게, 2월 2일 새벽 5시경, 이따가 학교에 가서 친구들이 내가 누구냐고 물어보면 나를 여자친구라고 소개해도 되겠냐고 물어보더라. 아.... 이게 외국식 고백이구나? 하면서 우리나라의 고백문화에 대해서 친절하게 설명을 해줬더니 다시, "내 여자친구가 되어줄래?"라고 해서 편하게 여자친구라고 소개하라고 했다. 그렇게 첫인상이 굉장히 외국인 그 잡채였던 그 남자와 만난 지 1주일 만에 개강 첫날을 시작으로 과씨씨로서의 우당탕탕 국제연애, 공개연애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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