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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vable Mar 29. 2023

국제연애 = 다름을 이해하는 과정

- 스페인 남자와의 연애 -

영국에 살면서 당연히 영국사람을 만나게 될 거라는 막연한 상상을 했다. 내 영어실력을 위해서도 현지문화 적응을 위해서도 그 편이 좋을 것이라 생각했기도 하다. 그렇지만 불쑥 내 삶에 들어온 스페인 남자는 생각보다 더 내 삶을 풍요롭게 만들었다. 


과거 내 국제연애의 끝은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외국에서 오래 거주했던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중국사상이 깊이 박혀있던 그 남자와의 연애는 다시는 중국남자와 연애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만들어 주었다. 하필이면 교제하던 시기가 홍콩시위가 발발했던 시기였다. 그 주제를 가지고 얼마나 싸웠던지.... 지금 생각하면 내 일도 아닌데 왜 그렇게 열을 냈나 모르겠다. 아무튼 그때 얻은 깨달음은 국제연애는 누구 하나가 완전히 열린 마음으로 상대방의 문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흡수하는 편이 관계에 이롭다는 것이었다. 


스페인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고, 그냥 관광으로 많이 찾아가는 나라, 순례길로 유명한 곳, 빠에야와 샹그리아의 나라, 정열과 열정의 나라가 끝이었다. 어떤 편견과 환상도 없는 '아, 그런 나라가 있지' 정도의 흥미뿐. 급작스럽게 시작된 스페인 남자와의 연애 덕분에 나는 검색창에 '스페인 나라 특징' '스페인 문화' '스페인 남자의 특징' '스페인 연애 문화' 등등을 찾아봐야 했다. 아쉽게도 정보가 많이 없었고, 스페인의 섬에서 온 이 남에게는 전혀 적용이 되지 않는 듯했다. 


내가 바라본 남자친구는 스페인 사람이라기보다는 전형적인 한국인같이 느껴졌다. 밖에서 손잡는 것을 부끄러워했고, 젓가락을 잘 사용하고, 유교보이의 정석 같았달까. '정열'의 타이틀 때문에 내가 기대했던 건 완전히 불같은 사랑이었는데, 마치 우리는 중년 부부의 사랑 같았다. 잔잔함 그 자체랄까? 심지어 국적심리테스트라는 것을 해봤는데 '한국인'이라고 나오더라. 반대로 나는 훨씬 개방적이라서 남자친구는 내가 한국인일리가 없다고 했다. 같은 심리테스트에서 나는 '아르헨티나인'이라고 판정이 난 것을 보면 말 다했다. 




우리가 함께 스페인을 방문하기 전까지는 큰 문화적 차이를 느끼지는 못했다. 하지만 나의 첫 스페인 방문 3주간 우리는 진짜로 많이 다투었다. 남자친구가 고집이 센 편이 아니고 유한 편이라서 그동안은 나의 생활 습관에 맞추어서 밥을 먹고 산책을 나가고 했었는데, 그곳에서는 달랐다. 로마에선 로마법을 따르라고 했던가. 서양인은 개인주의라 가족문화가 한국처럼 심하지 않을 거라는 기대감을 평생 가지고 살았던 나는 스페인의 엄청난 가족 문화에 충격을 받았다. 


남자친구의 고향은 스페인의 섬, 유럽인들이 사랑하는 여름 휴양지로 불리는 팔마 데 마요르카 섬이다. 작은 마을에서 살아서 그런지 어디를 가도 사촌에 팔촌이더라. 그리고 남자친구네 집과 할머니 집, 삼촌집이 3분 거리에 위치해 있는데 덕분에 한평생을 매주 일요일마다 점심에 할머니 집에 모여서 식사를 했다고 했다. 물론 음식도 맛있고 엄청 잘 대해주셔서 너무 좋은 시간이었지만, 매주 일요일마다 할머니 집에 가는 것은 우리 할머니 집도 자주 찾아가지 않는 나에게는 굉장히 신선한 충격이었다. 


또한, 스페인에 대한 무지로 그들의 식사 문화를 전혀 알지 못했다. 원래 우리 집은 아침이 제일 중요한 식사였기 때문에 일찍 일어나서 아침을 꼭 거하게 챙겨 먹고 하루를 시작해 저녁식사도 6시 이전에 끝내고 일찍 잠자리에 드는 한마디로 새나라의 어린이 같은 생활을 해왔다. 영국에서 생활하면서도 나는 그 생활습관을 계속 유지해 온 것은 당연한 말이다. 그런데 스페인에서는 오전 10시 11시가 되어서도 가족구성원 그 누구도 아침을 먹지 않았다. 그리고 점심을 2시에 먹고 저녁을 10시가 다 되어서 아주 간단하게 먹었다. 온 가족 분들이 굉장히 날씬하시던데 이렇게 식사를 해서 그런가 싶더라. 아니 건강한 위를 위해서는 소화를 다 시키고 잠을 자야 하는데 저녁 10시에 밥을 먹으니 자연스럽게 잠을 늦게 자게 되고 아침에 늦게 일어나게 되는 건 당연했다. 이런 극단적인 식사시간에 여전히 나는 적응하지 못했다. 


또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친구 문화이다. 내가 모든 한국인을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보통 남자친구를 친구들에게 대면으로 만나서 정식적으로 소개를 시켜주는 것은 결혼을 약속한 사람들이 그렇게 한다고 생각해 왔다. 아니면 정말로 오래 만났다거나. 그리고 데이트를 할 때에는 나와 남자친구 둘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스페인은 데이트에도 친구들 5-6명 정도가 우르르 나타났다. 둘이 데이트하기로 약속을 했어도 친구들이 같이 만날래? 하고 물어보면 바로 단체 만남이 성사되어 버리던 것. 그리고 자연스럽게 본인의 남자친구와 여자친구를 동행시키더라. 뭐지? 나는 둘만의 시간을 기대했는데? 영화를 보려고 해도 친구들이 우르르, 저녁을 먹으려고 해도 친구들이 우르르. 수영하러 가려고 하면 친구들이 우르르. 아니 애들아 일 안 하니? 이건 뭐, 뭐만 하려고 하면 바로 단체여행이 되어버리니.... 당황스러움 그 자체였다. 




가장 다르다고 느꼈던 점은 행복에 대한 기준, 직업에 대한 기준이다. 남자친구는 내가 대기업에 들어가야 하는지 설명하면 이해하지 못했다. '그게 중요해? 자기가 하고 싶은 일 하면 되는 거지!'라는 주체적인 사고방식은 나 자신을 돌아보게 했다. 사실 내 직업을 선택하면서도 부모님 눈치가 보이고, 주변사람들의 시선이 신경이 쓰였는데 그런 것과 관계없이 자신이 가진 것에 감사하고 행복해할 줄 아는 건강한 사고방식이 너무 부러웠다. 친구들하고의 만남을 가질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장소와 관계없이 함께 보내는 시간의 소중함에 집중했다. 비싼 레스토랑이나 멋진 카페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바닷가에 가서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내거나, 친구네 집에 가서 음식을 시켜 먹거나 하는 등 있는 자연을 그대로 즐기면서 친구들과 무엇인가를 함께 하기 위해 취미를 공유하고 시간을 공유했다. 


국제연애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가 새로운 친구를 많이 만들 수 있다는 것이라는 것이다. 내가 그들의 친구가 된 순간부터 스페인어를 구사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관계없이 나를 위해서 영어를 사용하면서 끊임없이 나에게 안부를 묻는다. 내 한국에 있는 친구들보다 더 전화도 자주 하는 것 같다. 한 친구가 강아지를 기르는데 내가 너무 그 강아지를 좋아해서 일주일에 한 번씩은 그 강아지 사진을 꼭 나에게 보내준다. 한국 관련된 뉴스를 보면 나보다도 먼저 나에게 알려주기도 하고, 스페인과 관련된 질문의 생겼을 때에도 그들은 언제나 친절하게 답변해 주었다. 


남자친구의 친구들을 봐도 삶에 대해서 전혀 조급해하지 않았다. 직업이 없어도 하는 일이 없어도 그들은 현재 주어진 삶에 만족하면서 여가생활을 즐기거나 자기 계발에 힘쓰는 모습이었다. 어떻게 불안해하지 않고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면서 살 수 있을까? 나에게는 가장 어려운 문제인데 말이다. 스페인 사람들은 대부분 장수한다고 알려져 있다. 실제 남자친구의 친할아버지는 97세에 돌아가셨고 친할머니는 현재 96세 이시다. 직접 가보니 이유를 조금 알겠더라.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충분히 누리는 삶, 있는 것에 만족하고 즐기면서 사는 삶은 닿을 수 없는 것에 닿기 위해서 나를 깎아내리고, 다른 사람과 내 삶을 비교하면서 스스로를 불행한 삶으로 밀어 넣는 행위를 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나는 가끔 영국에서의 삶에 치일 때 자연스럽게 남자친구네 섬을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가게, 할머니가 갈 때마다 해주시는 돼지 족발 같은 음식, 좋아하는 딸기 3박스씩 사다 놓으시는 남자친구네 부모님, 그리고 단골이 되어버린 집 근처 피자가게 사장님의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브라우니와 귀여운 고양이들. 뼛속까지 한국인인 나는 여전히 어떤 부분은 너무 다르다고 느끼기도 하고 또 불편하다고 느끼기도 하지만, 다르다는 것이 틀린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여전히 서로의 다른 점을 발견하면 싸우기도 하고, 투닥거리기도 하면서 그렇게 천천히 서로의 문화를 알아가는 중이다. 


다른 보통의 연인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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