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업의 종말
: 경쟁심을 느낄 수 없다. 나는 어쩔 수 없다.
'위대한' 르브론 제임스가 통산 득점 1위에 올랐다. 앞으로 그가 던지는 모든 슛이 NBA 득점 역사를 새로 써내려 가는 상황에서, 아쉽게도 나는 그의 fan이 아니므로 전혀 설레지도 놀랍지도 않은 날들이 흘러가고 있다. 내가 좋아했던 선수들을 나열해보면, Mr.fundamental로 불린 팀 던컨, 권투에서 농구로 전향했던 Larry johnson, 높지 않은 버티컬을 열정으로 버텼던 알론조 모닝 등등 이었다. (너무 완벽했던 MJ는 리스펙 했지, 좋아하지는 않았다)
좋아했던 플레이어들의 공통점은 비교적 1티어 급에 해당하지 않는 운동능력을 지닌 선수라는 점이고, 그리고 대부분 포지션은 PF 또는 C라인이 대부분이었다. old-school 농구로 따지면, Blue-worker 스타일의 포지션이겠다. 그렇다, 나의 최애 선수들은 포스트업 플레이에 능하고, 즐기고, 해야만 했던 선수들이었다.
운동경기를 '하는 것'은 좋아했지만, '시청하는 것'은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 의미로 이 나이 먹도록 한국사람이라면 상당히 좋아들하는 프로야구를 전혀 시청하지 않는다. 축구 역시 월드컵이 아니면 챙겨보지 않는다. (그나마 월드컵도 하이라이트로 주로 본다) 그런데, 농구는 특히 NBA는 자주 시청하곤 했고 찾아보려 했다.
역동적인 농구는 시청 자체로 엄청나게 재미있었고, 플레이하는 것 조차 시청의 재미를 뛰어 넘었다. 농구는 단연코 잘 만든 구기 종목이다!
몸과 몸이 부딪히는 구기 종목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 중에 몸과 몸이 많이 부딪히는 구기종목은 역시 농구다 (미식축구 당연히 그건 언급할 이유없이 탑이고)
농구를 농구답게 하는 것은 미드레인지에 있다고 난 생각한다. 수비가 밀집된 그 공간을 풋워크와 피벗 몸싸움으로 벗겨내고, 그럼에도 수비와 마찰하며 림을 향해 올라가는 모든 동작과 순간을 사랑한다.
미드레인지에서의 속임동작의 성공은 프리스페이스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저 내가 림을 향해, 슛을 향해 올라갈 시도를 허락하는 기회일 뿐이다.
포스트업은 정체된 두 명의 선수사이에 흐르는 물리적 긴장감의 향연이다. 밀고 밀리는 두 육체 사이에서 전후좌우 힘의 밸런스가 어우러진다.
마치 씨름선수가 상대의 힘의 방향을 예상하듯 등과 가슴이 상대의 힘의 흐름을 본능으로 느낀다. 그 물리적 긴장감이 너무나도 짜릿하다.
마치 영화 영웅의 무명(이연결)과 은모장천(견자단)의 우중결투와 같달까. 서로 치열하게 싸우지만 머물러있는 그 모습과 같이.
포스트업은 내겐 농구의 그런 면이고, 내가 좋아하는 선수들의 면면은 역시 그런 선수들이었다. 페이스업을 주로하는 선수 스타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경향은 지금가지 이어진다. (내가 르브론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 역시 그의 사이즈 대비 형편없는 포스트업 무브와 피벗이기도 하고)
포스트 업 실종은 3점슛의 비중 증가이고, 3점슛 증가의 트리거는 누누히 언급했듯이 소프트콜과 공격중심의 show 지향 NBA의 변화라고 생각한다.
KBL을 몇번 직관했다. 올스타전을 포함해서. 그리고 올스타전을 본 후로 직관하지 않는다. 장난스런 농구기술의 향연에서 전혀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내겐 예전 농구와 지금농구는 딱 2가지로 형상화 된다. "접촉"과 "공간" 이 두 가지 사이에서 접촉에서 공간으로 갈 수록 느껴지는 투쟁심과 경쟁심이 줄어드는건 내겐 어쩔수 없는 문제다.
오늘도 도저히 NBA 한 경기를 다 시청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