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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크나폐인 Feb 22. 2023

수제비

 80년생, 태어나긴 전라도에서 태어났다. 다만, 서울에 정착하여 살아간 지 꽤 되었기 때문에 고향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다. 아마도 내 서울살이는 두서너 살부터 시작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미아동, 수유리, 번동 등에도 거주했던 것으로 들어왔지만, 기억하는 곳은 노원구 상계동이다.


 상계동...


 행정구역상 서울의 최북단, 본디 경기도에 속했던 동네. 내 기억 속의 유년시절은 초가집과 논밭, 큼큼한 거름냄새, 그리고 오물이 흐르는 지천으로 기억된다. 아버지는 경찰관이었다. 정말 박봉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섯 식구가 먹고 살기에는 턱 없이 빠듯했다. 몇 가지 스틸 사진처럼 남아있는 그 시절 모습은 공동 화장실, 판잣집 작은 단칸방, 그리고 실제 맡았는지 아니면 나중에 기억을 덧씌웠는지 모를 밥을 지을 때 나던 석유곤로의 아릿한 향기다.


 그 시절 자주 먹던 것이 수제비와 김치찌개(사실 재료라곤 김치와 다시다,  멸치 정도인  멀건 김치국이나 김치지짐에 가깝지만..)다. 지척에 살아 자주 찾아갔던 다섯째 이모집은 문을 열면 한 층에 두 가구가 같이 살던 집이었다. 작은 거실공간과 화장실을 사이에 두고 우측에 작은 방 2개를 사용하던 이모집도 역시 형편이 그다지 다를 바 없었다. 이모는 "빵이모"라고 불렀다. 좀 더 크기까지 한참을 빵이모로 불렀는데 그 이유는 좀 뒤에 알았다. 어려운 형편에 풀빵 장사를 꽤나 하셨나 보다.


 빵이모 집에 가면, 아랫목 이불 아래 스텐 밥공기 한 사발이 있었다. 이모부의 식사용밥이었다. 이모부는 생마늘에 고추장, 그리고 밥만으로 밥을 곧잘 드시곤 했다. 어린 마음에 "아빠는 왜 이모부처럼 밥을 안 먹어요? 이모부는 반찬이 없어도 마늘하나로 밥 잘 먹는데?"라고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빵이모 집에서도 수제비를 먹었던 것 같다. 당시에는 수제비를 곧잘 먹었다. 원체 먹는 걸 좋아하기도 했고, 어릴 적부터 엄마가 낮잠 들면 머리맡에 앉아서 맨밥에 물을 말아 김치를 먹고 있었단다. 수제비 역시 마다할 이유가 없는 음식이었다.


 역시 지척에 살던 외숙모 집에 놀러 가는 날이면 기분이 좋았다. 단칸방에 살던 외숙모는 당시 무려 양배추 채를 썰어 마요네즈에 버무려 주는 새로운 음식을 보여주셨다. 별것 아니겠지만, 그 당시 양배추를 양껏 먹으며 맛있어했던 기억이 난다. 적당히 얇게 채 썰어진 양배추에 고소한 마요네즈가 듬뿍 올라간 모습이 정말 좋았다. 지금도 마트에 가면 양배추 한 통을 사서 온통 채를 썬 다음 고소한 마요네즈(무조건 골드여야 한다. 하프 마요는 마요네즈가 아니다!)를 양껏 뿌려 한입 가득 떠먹고는 한다.


 내가 기억하는 외숙모는 다소 어두운 표정의 얼굴과 그리고 없는 살림에도 맛깔나던 음식솜씨다. 물론 그 음식솜씨에 대한 기억도 양배추 샐러드가 큰 몫을 차지한 것은 당연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고 지척에 모여 살던 이모님, 외숙모님과는 걸어서 제법 걸리는 거리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우리 집은 전세지만 창동이나 도봉동의 아파트로도 생전 처음이사를 가보기도 했다. 그럭저럭 중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리고 등록금이 제일 싸고 장학금 받기도 수월한 공립대학교를 선택하여 다행히 대학교도 졸업했다.


 빵이모가 돌아가셨다...


 관절염과 합병증으로 엄청나게 고생하시다가 이른 나이에 떠나셨다. 아마 내가 취직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고등학교 이후 나 살기 바빠 외가 친지 분들과는 왕래가 거의 없었고 어머니를 통해서 간간이 소식을 들어왔었다. 그리 아프신지 몰랐다.


 생전 처음 가까운 가족의 장례식장에 갔다. 화장터에 들어가는 마지막 모습을 보지 못했다. 왠지 모르게 눈물이 미친 듯이 터져 나왔다. 사실, 그렇게까지 유년시절의 내 기억이 슬프거나 아프지 않았다. 하지만, 그 순간 내게 밀려온 감정은 고통이나 슬픔보다는 정말 미치도록 밀려오는 허무함 같은 느낌이었다.


 맞다.. 그저 죽을 듯이 밀려왔던 허무함이다. 빵이모의 마지막은 슬픔과 허무함이 교차되어 밀려왔다. 난, 도저히 그 자리에 서 있을 수 없어, 잰걸음으로 식장을 빠져나와 공터에서 서럽게 울었다.



 

 다 큰 이후 난 웬만해서는 수제비를 먹지 않는다. 물론, 사회생활을 하며 누군가 대접하거나 할 경우에는 맛있게 먹는다. 먹으면 맛없지 않다. 다만, 수제비를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단연코 '싫어한다'라고 답한다.  내게 수제비는 독특한 음식이다. 일종의 허무함이다. 육수에 밀가루를 넣어 끓여 먹는 음식. 익힌 밀가루를 국물과 함께 먹는 음식. 묘하게 허무하다.


 그것이 내가 기억하는 몇 안 되는 어린 시절의 잔상 때문인지, 아니면 영양학적 계산에 따른 내 취향인지 잘 모르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내가 죽기 전까지 내 돈 주고 사 먹지 않을 음식 중 하나는 분명하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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