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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크나폐인 Jan 29. 2023

삼국지(三國志)를 삼가다

나이들면 삼국지를 읽지마라? 어릴 때부터 읽지말자.

 고백하자면, 나는 무려 '삼국지'를 단 한번도 제대로 완독하지 않은 성인이다. 동양의 고전, 처세술의 집약체, 논술을 위한 필독서, 아이들의 추천서적인 '삼국지'를 말이다. 내게 삼국지는 읽는게 고역인 소설이었다. 물론, 양이 방대한 것도 있으나, 왜 다른 나라의 역사를 바탕으로 한 소설을 꼭 읽어야하는지 의미를 찾을 수 없었다. 하물며... 삼국지는 참 묘한 책이다.


 "삼국지를 읽으며 주제의식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역사에 사실 어떤 주제가 있을까? 조선왕조실록이나 삼국사기를 보면서 "아!" 하고 주제의식을 느끼지는 않는 것처럼, 양념을 상당히 많이 가미했다해도 삼국지는 역사의 큰 줄기를 따르며 서사를 이어가는 수준이다. 소설을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를 잡기란 상당히 어렵다고 봐야한다.


 그럼에도, 고전은 읽는 사람의 시각과 시대,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되야 한다는 명분에 따라 삼국지는 다양한 방식으로 소비된다. 영웅적 인간상의 표본 또는 큰 뜻을 품은 사내들의 이야기(아쉽지만 여성은 그저 소비된다)를 보여주려는 것인가? 아니면 전쟁의 전략과 병법을 가르치려는 것인가? 아니면 난세에는 간웅이 적격이라는 점을 보여주려는 것일까.


 서점이나 인터넷 검색만 해봐도 삼국지의 리더십, 유비의 처세술, 조조의 리더십 등등 삼국지는 마치 이 세상만사 처세의 표본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조조의 리더십을 따라한답시고 인정없이 엄격한 규율을 강조하며 상벌을 제대로 하려는가 하면, 유비의 리더십(유비는 리더쉽보다는 처세에 방점이 있지 않나?)을 본받자면 이내 외유내강의 리더십, 뛰어난 인재경영이 등장한다. 유비의 처세를 본받자면, 무릇 진정 무서운자는 도회지술(韜晦之術)로 자신의 큰 뜻을 숨길줄 알아야한다. 관우는 어떠한가? 충의의 화신으로 그려진다.


 유교사상을 표면에 내세운 유비는 서번트 리더십, 인정의 리더십, 인재등용의 리더십, 비전의 리더십, 공감의 리더십 등등 여러가지로 그려진다. 조조는 법가적인 관점을 비롯해서 효율 최대의 실용주의 리더십의 표본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삼국지의 리더십을 총망라하면 삼국지가 아니라 기업경영서가 될 정도일지 모르겠다.


 이쯤되면 역사를 기저에 깔고, 허구의 서사를 듬뿍 얹은 삼국지연의의 진정한 주제는 '처세'가 아닐까 싶다. 격변의 후한말 난세의 영웅호걸들이 각자의 처세를 무기로 세상을 얻기위해 싸운다! 이 어찌 웅장하고 가슴뜨거워지는 일이 아니란 말인가. 하물며..


 유비는 조운을 위해, 자신의 아이를 내동댕이치고, 초선은 동탁을 죽이기 위해 자신을 미인계에 바치고, 황개는 적벽에서 그 유명한 고육지계를 위해 자신의 몸을 내놓는다.


 "처세란 무엇인가?"


 사전적인 정의는 "사람을 만나고 세상을 살아가는 것" 말그대로 세상에 처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처세에 "술(術)"이 붙으면, 우리가 그렇게 제대로 하고 싶어하는 처세술이 완성된다.


 삼국지는 정사의 역사를 토대로 어벤져스 급의 영웅화된 인물들과 그 사이의 여러 인간 군상을 조합하여 소설의 맛을 살리는 구조를 취한다. 그리고, 정사와 영웅화된 인물들을 스토리로 이어가는 유일한 양념은 위계, 간계, 모략, 술수, 배신 등이며, 이를 통해 "삼국지에서 처세를 배우다" 식의 개념이 쏟아지기도 한다.


 인간사 모두 중상모략과 처세의 아수라장이라서 그럴까? 온갖 모략과 술수가 난무하는 삼국지는 대의라는 명분을 등에 없고 그것을 상당히 '정당화'한다. 소설을 계속 읽다보면, 현실이라면 상당히 야비하다고 느낄만한 모든 행동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아니 오히려, 소설 속 인물의 간교한 술수를 능수능란한 처세로 숭상하는 지경에 이른다.


 고전은 문학과 신학의 중간 쯤에 위치한다고 본다. 마치 아이언맨이 현실과 판타지 코믹북의 중간자로서 마블유니버스를 스크린에 안착시킨것처럼, 역사를 뒤에 업은 펙션 고전은 그 내용을 정당화하고 자연스럽게 한다.


 삼국지라는 소설을 역사라는 채에 걸러내면 남는건 매장마다 반복되는 온갖 권모술수다. 마치 짬뽕탕에서 우리가 맛있다고 느끼는것이 갖은 해물(사실 별로 들어가지도 않는다)이 아니라 맵큰 짭조름한 그 국물때문인것처럼,  권모술수에 감탄하며 책장을 넘긴다


삼국지의 주제는 무엇인가? 속이거나 속거나, 죽거나 죽이거나, 그 외에 무엇인가? 이 고전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일까?

처세? 간계와 위형이 처세라고 각인시키는 것이라면 이미 그리 살아온 이세상이 상당히 올바르다 여기는 것인데.. 적어도 내 아이에게 미리 굳이 읽히고 싶지 않은 내용임엔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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