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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크나폐인 Oct 04. 2023

마블링

영원한... 비가역적 결합이라...비관적인..

오리고기는 내 돈 주고라도 먹고
돼지고기는 누가 사주면 먹고
소고기는 누가 사줘도 먹지 마라


 이런 이야기를 누군가에게서 들었다. 오리고기는 14도 이상에서 액체(기름)로 존재하는 반면 돼지고기는 30도 후반, 소고기는 40도 이상에서 액체로 존재하기 때문에 나온 말인 셈인데. 양태가 어떻든 지방이란 영양소는 같겠지만... 여하튼 나는 소고기를 그다지 즐겨 먹지 않는다.


 그럼에도 명절날이나 회식 때, 살코기 사이로 미세한 지방의 물줄기가 흐르는 고기를 보게 된다. 꽃등심이니 뭐니 여러 수사로 불리기도 하는 마블링 소고기.


 우리나라와 일본은 특히 마블링 소고기를 높게 평가한다. 직접 불에 구워 먹다 보니 지방질이 충분해야 기름 타는 고소한 향기가 나고, 부드럽게 씹히는 맛을 일품으로 치는 것 같은데. 덕분에 살코기를 먹고 싶은데도 지방을 반이나 섭취해야 한다.

 발라낼 수 없다


 일전에도 썼지만, 즐겨 읽었던 동양고전 소설이 수호전이다. 수호전에서 좋아하던 캐릭터는 훗날 귀의하여 노지심魯智深이 되는 위주 제할(일종의 하급 경관)"노달"이었다.

 

 한 날은 노달이 불쌍한 부녀를 구하기 위해, 부녀를 괴롭히던 백정 정도를 시비를 걸어 죽인다. 이때 시비가 별것 아닌 것이 은근 얄미로 와서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살코기 10근만 발라주시오. 비계가 단 하나도 있으면 안 되오.


정성 들여 발라 주니 이제는 이리 말한다.


이젠 비계 10 근만 발라주시오 살코기가 단 하나도 있으면 안 되오


어라 이 놈 봐라.. 하면서


더 못 참고 백정 놈이 칼을 움켜쥐고 달려드니 기다렸다는 듯이 주먹 한 방에 하필 비명횡사한다. 노달이 도망자가 되고 양산박에 흘러가 천강성의 호걸이 되는 첫 단추다.


 고기에서 살과 비계를 발라내는 것이 오죽 힘들고 짜증 났을까 싶다. 그 고기는 그나마 마블링 수려한 소도 아니오 그저 돼지고기였으니, 만약 투쁠 한우등심이었다면 첫 주문에 칼 잡았을 듯싶다.


마블링...비가역적인 살과 기름의 결합


 한국과 한우의 공통점이 바로 저 마블링이다. 해체하고 발라낼 수 없는 비가역적 결합체. 씹으면 고소하나 건강에 좋지 않은 무엇. 그럼에도 높게 평가받고 장려되는 무엇.


 해방 후 70여 년... 그 사이 우린 수많은 이념과 사상과 사건과 이해관계 속에서 아무런 솎음 없이 그저 흘러왔다.


 하나의 가치를 부정하고 비판하고 비난하려면, 사람을 관계를 그리해야 할지 모른다. 단 한 번도 솎아 내지 못한 우리는 모든 영역에서 첨예하게 살과 비계가 위태로이-그러나 매우 맛나게- 결합되어 있다. 거대한 마블링 사회.


 양질의 살코기를 거기 붙은 비계 약간 때문에 버릴 수 있겠나. 추석 맛난 투쁠 소고기 거하게 먹다 보니, 같이 들어오는 기름생각에 불편하다.


 이 비가역적 결합을 결코 되돌릴 수 없을 거라는 비관적인 생각이 커지는 오늘 하릴없이 닭가슴살 캔을 뜯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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