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1
프롤로그
이 일기장은 어느 날 길을 걷던 도중, 잠시 머물렀던 거리에 있었다.
사람들이 분주히 오가는 버스 정류장 부근이었다. 나는 버스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날씨는 추웠고, 주머니에 손을 넣고 서성거리고 있었을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정보신문 꽂아 놓는 보관함에 이것이 꽂혀 있었다. 정보신문들은 일찌감치 사라지고 한 장도 남아있지 않았다.
요즘 정보신문들은 그전처럼 많은 부수를 놓아두지 않는다. 아마도 신문지가 필요한 사람들이 한 뭉텅이씩 가지고 사라지기 때문일 것이다. 적은 부수를 여러 차례 놓아두려는 작전인가 보았다. 보관함은 어떻게 보면 긴 다리가 네 개 있고 칸칸이 나누어져 있어 비둘기집처럼 보였는데 여러 종류의 정보신문들이 들어 있는 집이었다.
그런데 먼지가 앉고 더러운 것을 보니 아주 오래된 것처럼 보였고,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플라스틱 뚜껑이 달린 새로운 보관함이 있었다. 아마도 오래된 집은 내버려 둔 채 새로운 집을 만든 것 같았다.
그렇다면 이 일기장은 얼마나 오래 여기 있었던 것일까. 지나던 사람들은 이것이 여기 있다는 것을 몰랐을까. 호기심에 손에 잡았다가 내려놓은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몇 장 넘겨보고는 다시 제자리에 처박았을 것이다. 겉장은 뜯어져 있어 책이나 공책으로 보기 어려웠다. 누가 생각 없이 버린 폐지였다.
버스를 기다리던 나는 우연히 그것을 보았고, 나와 비슷한 사람들처럼 호기심에 그것을 집어 들었다. 이것은 혹시 암호문이 아닐까. 보물섬 지도는 아닐까. 생각지도 못한 내용이 담겨 있을 것 같아 가슴이 두근거렸다. 나는 빨강 머리 앤 기질이 있는가 보다. 상상이 이어졌다.
어쩌면 짝사랑 이야기가 절절하게 적혀 있는 것은 아닐까. 이룰 수 없는 사랑을 적는 것으로 그리움을 달랬을까. 아니면 누군가의 욕을 써 놓은 것은 아닐까. 억압적인 상황에 있는 사람의 말을 그것이 들어주었을 것이다. 나는 일기장을 집어 들며 많은 상상을 했다. 언젠가 이렇게 시작하는 소설을 읽은 것도 같았다. 결말이 어떻게 되었을까. 추리소설이었나. 누군가가 죽고. 아니야, 어쩌면 이것은 난수표와 비슷한 것일 거야.
그게 아니라면 의도적으로, 자신이 쓴 일기장을 이런 곳에 누구나 볼 수 있게 내던지는 사람은 없어. 아니야, 암으로 고생하던 한 남자가, 아니면 여자가 이제 그 상태를 벗어났기 때문에, 아니면 하늘나라에 갔기 때문에 환자의 가족이 견딜 수 없어 지나는 길에 던져 버릴 수도 있어. 아, 재활용장에 던져 버릴 수도 있지만, 그러기에는 너무나 소중한 기록이기에 누군가가 보고 이것을 알아주고, 자신의 마음을 헤아려주지 않을까 기대했을 수도 있어.
아무튼 나는 더 이상 뜸을 들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일기장 첫 장을 열었다. 글씨는 그다지 반듯하거나 꼼꼼하게 쓰여 있지 않았다. 빨리 쓰기 위해 눕혀서 썼고 약간 갈겨쓴 글씨여서 어떻게 보면 영자라고 생각될 정도였다. 그렇다면 주인공은 여자가 아니라 남자였다.
나는 읽기 힘들지만 서서히 읽어갔다. 말 그대로 난수표 기분도 들었다. 앞으로 갔다가 다시 돌아오기도 했고, 엉터리 같아 피식 웃기도 했지만, 그때 그 시절 사람이라면 누구나 듣고 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래의 글들은 이 일기장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