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 없는 도둑 5

by 양산호

***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들려온다. 어디에 불이 난 게 아닐까. 아우성이 들리는 것 같다. 어쩌면 지구는 곧 망할 거야. 종말론자들이 외치는 것처럼 지구의 종말이 멀지 않았을지도 몰라. 나는 왜 지금 종말에 대해 생각할까. 가만, 비몽사몽 중에 들리는 소리는 시계의 알람이다. 사이렌소리가 아니다. 아내나 아이들이 깰까 두려워 서둘러 버튼을 눌렀다. 조용해진다. 정확히 오전 6시다. 좀 앉아 있을까, 아니면 바로 일어날까. 몇 번을 생각하다가 자리에서 일어선다.


‘담배가 어디 있더라.’

실내화를 끌며 거실을 걸어가는 동안 여전히 눈을 감고 있다. 그러다가 서늘하게 다가오는 기운에 눈을 뜬다. 거실은 안방처럼 따뜻하지 않다. 더운 공기가 세력을 얻지 못하고 차가운 공기에 눌려 있다. 세상에서 말하는 따뜻한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 사람들은 그런 사람을 좋아하면서 왜 스스로 되려고 하지는 않을까. 그런 사람들이 많이 사는 세상을 바라지만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일까? 그래서 차갑고 냉정한 이성을 가진 사람으로 살려는 것일까. 현실을 직시할 줄 아는 사람,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사람, 자신과 가족에게만 충실한 사람.


담배에 불을 붙이고 남자아이가 오줌을 누는 그림이 붙은 화장실 문을 연다. 작은 창문을 열고 담배연기를 훅 뿜어낸다. 몇 가닥은 밖으로 달아나고 몇 가닥은 내부에 남는다. 환풍기 없는 화장실은 금방 뿌연 담배 연기로 메워진다. 이룰 수 없는 꿈처럼 피어올랐다가 자취도 없이 사라지는 연기. 늘 꿈을 가져야 한다고 그랬지. 그때 선생님이나 형들이나 어른들이나. 그것이 없으면 오아시스 없는 고비사막이라고 말이지. 현실이란 냉혹하기 이를 데 없다는 말도 들었어. 하긴 현실만 본다면 누구든 절망하고 말겠지. 그래서 꿈을 본다는 거겠지. 본인들이 그 세상을 만들었으면서도 말이지. 꿈이나 현실이나 다를 게 하나도 없어. 우리의 눈이나 귀로, 보고 들은 것을 재료로 만들어낸 것뿐이야.


아니야, 현실이 냉혹한 건 우리 속에 짐승이 살기 때문이야. 돼지 같은, 여우같은 짐승이 내 속에 살기 때문이지. 차라리 그걸 버리라고 하는 게 나아. 꿈을 가지라고 하지 마. 꿈은 현실이기도 하니까. 그걸 버리면 모든 게 평온해지지. 안 그래. 그런데 그게 가능할까. 나는 노래 가사를 쓰고 있다.


문득 아파트 9층에 살던, 1개월 전의 일이 떠오른다. 깨끗하고 넓기는 했지만 한시도 마음이 편치 못했던 그곳. 처음으로 가졌던 내 집이었지만 고작 6개월밖에 살지 못하고 나왔다. 넓은 강화마루 거실, 하얀색 주조의 인테리어. 연갈색 방문과 하얀 섀시 유리문. 베란다에 서면 얕은 앞산과 작은 개울의 흐름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지금 떠오르는 풍경,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곳. 어느 것도 추억으로, 정감 있게 다가오지 않는다. 그 중 베란다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몰고 온다. 그 곳에서 담배를 피울 때마다 9층 높이에서 떨어져 피범벅이 되어 뒹구는 나를 보았다.


머리를 감고 나와 보니 아내가 식탁 위에 아침을 차려놓았다.

“언제 일어났어?”

“일어나야지, 그래도.”

아내는 마주 앉아 지난 밤 꿈을 이야기한다.

“어젯밤 꿈에 우리가 어떤 아파트에 살고 있었어. 이름은 모르겠는데 12층이야. 정확히 생각나. 그 아파트에서 천천히 돌계단을 타고 내려왔어.”


“12층?”

“그래. 꿈에서 정확히 보이는 숫자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대. 돌계단을 내려오는 것은 아주 좋은 꿈이래.”

아,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다니. 하강의 꿈은 아닌가. 돌계단이라니, 야곱의 돌베개도 아니고. 속으로 이런 말을 하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간밤의 꿈을 서로에게 말하고 해몽을 부탁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꾸는 좋거나 나쁜 꿈들. 거기에는 어떤 의미가 있었다. 꿈이라고 할 수도 있는 것도 있었지만, 꿈속의 꿈이라니. 어느 때는 몰랐던 내 잘못이 발각나 울기도 했다. 각성 상태에서는 몰랐던 무의식의 내가 거기 있었다.


“나는 시골 고향집을 수리하는 꿈을 꾸었어.”

“시골집 다 부서졌다고 했잖아.”

“응. 담에 진흙을 바르고, 나무들을 새끼줄로 당겨서 펴주기도 하고. 음 그러다가 나중에 동생부부가 왔을 거야.”

“고향집이라?”


아내의 말에 나는 꿈속을 더듬어 보았다. 무언가 환하게 비쳤는데, 뭐지. 전등이었다.

“고향집에 전등이 환한 것은 좋은 꿈이잖아.”

“그런데 왜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는 거지?”


그래도 안심이 된다. 꿈은 우리를 외면하지 않는다. 꿈은 현실이니까 현실도 우리를 외면하지 않을 것이다. 꿈은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들을 유전자를 통해 물려받은 지식을 더듬어 반영해 주고, 희망이 담겨 있음을 알려준다. 그래서 우리는 아침마다 꿈 이야기를 하고 인터넷에서 꿈 해몽을 뒤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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