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 없는 도둑 6

by 양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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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늘하게 식은 엔진을 금방 살려내지 못하는 배터리. 엔진은 마치 죽어가고 있는 환자 같다. 심장을 되살리기 위해 가하는 수십 차례의 충격. 몇 번이나 키를 돌리고 난 후에야 겨우 시동이 걸린다. 배터리가 죽을 때가 된 것일까. 나는 잠시 내가 나온 집 대문과 살고 있는 위층을 올려다본다. 무의식중에 취해진 동작이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살아있는가. 다시는 돌아올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내 신발을 본다. 주위를 둘러본다. 그러나 차에 오르고 문을 닫는다. 차는 천천히 나아가고 있다. 차 안이 춥다. 가속페달을 밟아 달리고 싶은 마음을 억누른다. 마트 앞 신호등 앞에서야 히터 스위치를 돌린다. 여전히 따뜻한 바람은 요원하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의 겨울이 떠오른다. 사방이 높은 산으로 둘러쳐진 고원은 여름이 시원한 만큼 겨울은 혹독했다. 겨울이면 허벅지가 푹푹 빠질 정도로 많은 눈이 내렸다. 내가 살았던 고장의 이름들을 불러본다. 겨울 추위를 피해 나는 이곳 남쪽으로 내려왔다. 좀 더 따뜻한 곳으로, 좀 더 온화한 곳으로.


‘이제 달리자, 황야의 이리처럼!’ 액셀러레이터를 밟는다. 다리를 지나는 동안 얼음에 덮인 시내 모습이 보인다. 저 얼음왕국에서 사람이 살아가다니, 신기한 일이다.

‘춥냐? 힘드냐? 그럼 달려라. 황야의 이리처럼.’


나는 황야의 이리가 된 것처럼 한바탕 몸을 후다닥 흔들어대고, 한기를 이기기 위해 달린다. 요즘 이곳을 달릴 때마다 외는 주문이다. 내가 알고 있는 이리는 헤르만 헤세의 ‘황야의 이리’이다. 그러나 그가 그리고자 했던 이리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내가 아는 이리는 부모를 떠나 혼자 황야를 달리는 야생의 이리다. 친구나 부모가 없어 외로운 존재. 추위를 피하기 위해 굴속에서 아니면 비탈 움푹한 곳에서 낙엽을 뒤집어쓰고 잠을 청하며, 동이 트면 뻣뻣하게 언 몸을 녹이기 위해 황야를 달린다. 그러면 몸에 묻어 있던 이슬은 마르고 굳어있던 근육도 제 활동을 되찾는다.


다리를 지나자, 아스팔트 위에 하얀 물체가 보인다. 곧이어 피범벅이 된 동물임을 알 수 있다. 차바퀴가 덜컥 그 위를 지난다. 길고양이일 거야라는 추측보다 먼저 내 몸이 으깨어진 듯 느껴진다. 피범벅이 되어 누운 내가 차바퀴를 쳐다본다. 얼굴이 짓이겨진다. 나는 살아있는 게 맞을까. 금방이라도 내게 죽음이 다가올 것만 같다. 죽음은 어떤 것일까. 삶의 연장일까. 단절일까. 무한반복일까.


지금 이 순간이 영원히 지속되어도 좋은가. 나는 머리를 마구 쥐어뜯고 있는 나를 상상하고 있다. 견딜 수 없는 고통이 느껴진다. 고개를 젓는다. 내가 지금까지 생각하고 느껴온 죽음은 몇 차례의 변모를 거쳐 두려움은 사라지고, 아주 단순한 것으로 바뀌었다. 죽음은 삶이 아닐 뿐이다. 그리고 절대적인 평등이다.


사람에게 죽음이 없다면 가난한 사람은 아주 오랫동안 가난하게 살 것이며, 부유한 자는 영겁의 세월 동안 부유하게 살 것이다. 그리고 힘없이 살던 사람은 늘 짓밟히며 질곡의 시간을 보낼 것이고, 권력을 누리는 자는 그것이 당연히 자신의 것인 양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기 위해 허무의 세월을 보낼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왕후장상의 씨가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아무튼 죽음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가. 죽음이라는 것이 없다면, 신을 믿는 자, 부활을 믿는 자들도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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