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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돌아오는 길은 몽롱하다. 잠이 다가오는 것일까. 잠이 오는 소리는 꼭 죽음이 오는 소리와 같다. 아무런 움직임이 없이 아련함으로 다가온다. 아니 움직임이 있을 때도 있다. 수십 마리의 말이 달려오지만 말발굽 소리는 나지 않는다. 눈썰매 소리라고나 할까.
갈 때와 달리 속도를 늦추고 돌아오기 때문일까. 120킬로미터 정도의 속도로 1시간이 넘게 달린 피로감이 80킬로미터의 속도로 달리는 지금 다가오는 것일까. 함께 탄 사람은 늘 말이 없다. 그들은 자거나 밖을 보고 있다. 나만 혼자 라디오를 들으며 운전할 따름이다. 2차로에서 천천히 달리는 동안 빨간 글씨가 눈에 들어온다. 아마 나들목에서 내릴 때 내 앞에 있게 된 트럭이리라. 유독물. 단지 이 글자만이 탱크에 붙어 있다. 해골모양의 그림이 보이지 않은 것이 이상하지만 앞 차의 운전사에게 그것을 물어볼 수는 없다. 마루치 아라치의 파란해골 13호는 왜 없는가요.
독극물이라니, 내게는 농약만이 떠오른다. 농작물의 병충해를 막기 위해 개발되었지만 많은 농민들이 마시고 죽은 농약. 꼭 저 안에 농약이 있고 머지않아 내가 그것을 마시고 죽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런 생각은 현실에 와 닿지 않는다. 현실에 닿으려면 좀 더 팔이 길어져야 한다. 현실과 꿈의 차이란 것도 이런 것이 아닐까. 나의 생각은 현실에 닿아 있는가 하면 금세 꿈에 가 닿아 있다. 이 사이를 오가며 삶이 지속되는 것이 아닐까. 그러니 현실만을 직시하는 것은 꿈을 버리라는 말과 같다. 꿈을 버리면 현실도 죽을 텐데. 이런 생각이 또 뒤섞인다. 눈앞이 흐릿하고 몽롱한 상태에서 잠의 말발굽소리가 들린다.
요즘 들어 잠이 모자라는 것은 아니다. 저녁 10시에 잠자리에 누워도 되지만 9시가 되기 전에 굳이 이불을 펴고 자리에 눕는다. 어제 저녁에도 큰아이 숙제를 잠시 봐주고 9시 뉴스를 보았다. 한국 기자들은 미국 관리들이 제공한 내용을 그대로 방송으로 내보낸다. 그래서 우리는 미국의 눈으로 세계를 보게 된다. 그게 뭐 어쨌다는 거야. 알자지라를 믿으란 말인가. …거슬러 올라간다. 나는 왜 이런 생각을 하나. 비자금 수사는 아니고, 아! 후세인 체포 보도 때문이었다. 아무튼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꿈에는 어린 시절이 있고 고향집과 친구들, 놓아두고 온 유년시절이 있었다. …그렇게 내리 잠을 자고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잠이 쏟아진다. 직업병인가. 많은 화물차 운전자들이 졸음운전으로 목숨을 잃는다. 너는 이제 죽을 수도 있어. 꿈이 아니야. 현실이야. 나도 그 중 하나가 되려나 보나 싶었을 때 경부고속도로에서 내렸다.
교차로에서 잠시 눈을 감은 채로 있었다. 잠에서 깨어나지 않는 법은 없을까. 아마 죽음일까. 아직 나는 죽음에 가까이 있지 않은 것일까. 너는 삶을 말하지 않고 왜 죽음을 자꾸 말하는가. 너의 삶의 태도는 이 지상에 맞지 않다. 너는 이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지탄을 받을 것이다. 어쩌겠는가. 너의 태도는 자살자처럼 결코 환영받지 못할 것이다. 산 자들은 한사코 죽음으로 가까이 가려 하지 않는다. 아니 그러한가.
신호가 바뀌자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오르막을 오르는 동안 1차로의 차들이 모조리 우측 방향지시등을 켜고 있다. 공사 때문이다. 중앙분리대를 만드는 작업이 한창이다. 한숨이 나온다.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를 헤매고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는 지금 지방정부가 벌이는 짓이란, 그저 남은 예산을 쓰는 일이다. 요즘은 신노숙자도 출현했다. 대부분이 실직과 카드연체로 거리에 나선 사람들이다. 그래서일까. 고급차, 외제차가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액수로 환산해 보면 몇천만 원을 호가하는 차들. 나는 아이 때처럼, 그 돈이면 호떡이 몇 장인가, 라면이 몇 박스인가 계산해 본다. 호떡은 지구 둘레를 돌고, 라면은 에베레스트만큼 쌓인다. 이들은 가난한 이웃들과 자신의 부를 나눌 생각이 없는 것일까. 부자가 되려면 남을 믿지 말라고 배웠기 때문일까. 하긴 복권을 사면 가장 친한 사람부터 버린다더니. 고약한 벌이군.
자본주의 경제는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물건을 만드는 것만이 아니라 사람들 생활수준별로 물건을 만들어 판다. 자본주의, 이렇게 말하면 내가 꼭 빨갱이 같다. 누가 내게 이런 검열을 집어넣어 주었는가. …자본주의가 물건을 만들어 끊임없이 팔고 소비하는 과정일진대 소비자가 모두 죽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물건이 창고에 그득하게 쌓이는 세계공황이 오리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카드까지 써가며 물건을 사들였지만 카드가 막힌 현재 어쩔 줄 모르고 위험한 길에 서 있다. 아니, 다른 사람들 얘기가 아니다. 내 얘기다. 내가 어떻게 이런 말을 입 밖에 낼 수 있겠는가.
빚내서 소비하세요. 빚내서 집 사세요. 이런 말들을 직접적으로 유포하지 않지만 부자 되세요, 라는 말은 수시로 방송에서 흘러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