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없는 도둑 4

by 양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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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는 서넛의 검은 정장 남자들. 그들은 모두 체구가 크고 힘깨나 쓸 것 같다. 지적인 느낌이라고는 조금도 풍기지 않는 이 남자들에게 나는 위압감을 느끼고 한껏 움츠러든다.


나는 이 남자들을 알고 있다. 그들의 표정은 주위 사람의 것과 달랐고, 주고받는 대화 내용도 일상의 것이 아니었다. 육중한 체구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살벌한 기운은 또 어떤가. 그들에게서 법이 금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당하게 채무자에게 신체포기각서를 요구하는 조폭의 냄새가 난다.


그런데 내가 그들과 같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자주 만나야 하다니. 그들 사이에 놓인 나는 어른들이 꽉 찬 만원버스 안의 초등학생 같다. 숨을 헐떡이며 엘리베이터 벽이나 숫자판을 보는 대신 바닥의 체크무늬 장판을 뚫어져라 본다.

‘설마 이 놈들이 내 얼굴을 아는 것은 아니겠지.’


얼굴을 힐끗 보려는 하는 사이 문이 열리고 육중한 남자들이 움직인다. 엘리베이터가 이리저리 흔들거린다. 그들의 앞에는 3층, 채권관리실이라는 글자가 선명한 표지판이 붙어 있다. 그들이 모두 사라지고 문이 닫히기 전까지 나는 눈을 크게 뜨고 노려본다. 언젠가 그들의 소굴에 몰래 잠입하기 위해 사전답사를 나온 것처럼.


이윽고 문이 닫히고 엘리베이터가 움직인다. 혼자 남게 된 나는 가볍게 숨을 내뱉는다. 이들은 어떤 계기로 채권관리직을 택하게 되었을까. 아마 여기에 심오한 의미는 없을 것이다. 그들을 낮게 평가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취업난이 극심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구미에 맞는 직업이 이것밖에 없기 때문에 이 일을 하고 있지는 않다. 아니 이 사회는 병든 사회다. 돈을 많이 벌기 위해 죽어라 공부하고, 성인이 되어서는 돈을 많이 벌기 위해 아등바등 살아야 한다. 그저 살아남기 위해,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사회가 요구하는 대로 살아야 한다. 생존과 이익만을 위해 사는 삶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 나라는 자살공화국이 아니던가. 하지만 단언하기는 이르다. 나는 이들과 깊은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고, 친한 사람 가운데 이 직업에 종사한 사람은 알고 있지 않다.


그들이 어쩌다 한 번씩 내뱉던 말들을 떠올려 본다. 그들은 차를 한 대 끌고 왔는데 아직 쓸 만한데 살 사람이 없을까, 라거나 누구 집에 갔는데 좋은 게 하나 있어 집어왔지, 라고 자랑삼아 말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화가 치밀어 오른다. 시도 때도 없이 전화해서 협박하던 놈들. 마치 내가 이들에게 직접 당한 피해자인 것처럼 생각된다. 결국 한 마디 잘난 체 중얼거린다. 인간은 자신이 원하는 것만을 본다. 그리고 자신과 싸울 상대가 악이라고 느껴야만 죄의식에서 벗어나는 것이고.


직업이 놈들의 인격을 모조리 삼켜버렸어. 선량함은 사라지고 고통스러워하는 채무자를 보며 놈들은 즐거워할 거야. 아마 그 놈들은 이런 일밖에는 할 수 없는 놈들일 거야. 평생 이 짓이나 해먹어라. 허무와 공허 속에서 허덕이다가 네 삶을 저주하여라.


빌어먹을 인간들. 그들에게 할 수 있는 악담은 모조리 생각해 내려고 애쓴다. 채무자들을 어르고 협박하고 수시로 핸드폰으로 전화를 할 뿐 아니라 집이나 사무실을 방문해서 일상생활에 의도적으로 지장을 주는 벌레들.


벌레들, 이라는 말이 떠오르자 통쾌한 기분이 되었다가 나도 한낱 벌레에 지나지 않는 것 같아 괴로워진다. 그래도 어느 날 갑자기 형벌처럼, 징그러운 벌레가 되어 가족의 짐이 되는 신세가 되는 것보다야 낫겠지. 그러다가 이 세상의 삶이라는 것도 하나의 허상이 아닐까 싶어진다. 그래, 눈을 감으면 모두 사라지는 이 세상은 가짜야. 인간은 아무 의미 없이 이 세상에 던져진 거야. 그저 하나의 시도에 불과한 거야. 나라는 인간도 그러니까 뜻 없는 시도에 불과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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