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길로 그는 크리스마스트리가 늘어진 거리로 나섰고, 캐럴송이 요란한 백화점 주위에서 환한 미소를 짓는 산타들의 얼굴을 보았지. 가난하고 고통 받는 자들을 돌아보지 않는 산타의 얼굴이란 바로 저렇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그는 백화점 주위를 몇 번이나 돌고 난 후 매장으로 들어갔지만 눈에 들어오는 것들이 별로 없었어. 아니 쌀이나 술, 고기는 있었지만 그것들은 너무 부피가 커서 언제든 보안요원의 눈에 띌 것 같았던 거지. 사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물건이 아니라 언젠가 그가 훔쳤던 적이 있는 화폐였어. 그러나 백화점은 물건을 훔치기는 쉬워도 지폐를 훔치기는 어려운 곳이지. 그는 아래층부터 맨 꼭대기 층까지 돌아다녔어. 손님인 척 가장을 하고 기회를 엿보았지. 그에게 기회가 왔을까. 그런 기회는 오지 않았어. 사람들은 언제부터인가 카드를 쓰고 있었어. 현금을 가지고 다닐 필요가 없었어. 그러다가 그는 자신도 모르게 화가 치밀어 올랐어. 같은 용도로 쓰이는 물건을 가격별로 만든다는 것이 화가 나기도 했지만, 이 곳은 네가 있을 곳이 아니라고 떠미는, 은연중 밀려오는 압력이었지. 그는 백화점을 나왔어. 화려한 물건이 많은 휘황찬란한 건물이 자신과 상관없는 곳이라는 것을 깨달은 거지. 넓은 도로도, 광장도, 야구장도, 시계탑도 자신의 아픔이나 죽음과 관련이 없다는 것도.
그는 백화점을 나와 부잣집을 찾아 배회하기 시작했어. 그것이 대정동인지 금옥동인지는 몰라. 아마 서울이라면 무인카메라를 가로등 대신 설치한다는 강남 어느 골목이 되겠지. 그때는 무인카메라를 도로에 다는 것은 먼 훗날의 일로만 여겨지던 때이니까. 그는 어둠 속을 배회했어. 날씨가 어느 정도로 추웠는지는 그 날의 일기예보를 찾아보면 되겠지. 12월 25일이었을 거야. 한기가 들어 이가 부딪치는 소리가 딱딱 날 정도로 추운 날씨라고 씌어있지 않겠지만 동장군 운운하는 따위의 말은 있을 거야.
새벽 2시쯤이 되자 그는 일을 시작했어. 물론 그 전에 무인경보기가 설치되어 있는 집인지 아닌지 확인하고, 불이 꺼지기를 기다렸겠지. 이제는 도둑이 아니라고 해도 사전답사라는 말을 알지. 집 앞에 서서 인기척이 있나 살핀 후에 그는 담을 기어올랐어. 유리조각이 박힌 구식 담을 기어오르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어. 그는 자신이 입고 있던 외투로 유리를 덮고 겨우 담 위에 서게 되었어. 자, 조금만 더! 아래를 보니 쉽지 않을 것 같아 그는 한동안 망설였어. 그러다가 평소에도 그랬던 것처럼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내가 왜 이런 짓을 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불시에 떠올랐을 거야. 그는 자신이 섹스를 하고 있는 순간에도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하고 자문을 했었으니까.
그런데 생각지도 않은 일이 일어난 거야. 갑자기 어디선가 사이렌 소리가 들려온 거지. 제기랄, 나는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되는 일이 없어. 아주 사소한 착수 단계부터 난 실패했어. 지금까지 죽 그랬어. 난 실패자야. 세상에 잘못 온 거지. 그것이 구급차인지 경찰차인지 아니면 소방차인지 몰랐지만 그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것을 느꼈어. 자신을 잡으러 출동한 경찰이라는 비관적인 생각이 줄을 이었고, 마침내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져들었어. 그는 무작정 담 안쪽을 향해 뛰어내렸어. 그런데 그것이 그의 마지막이었어. 그는 아래로 떨어지면서 장독대에 머리를 찧고 말았어.
그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다음 날 신문 한 귀퉁이에 나와 있었어. 그가 바랐던 행운은 없었어. 사소한 단계부터 실패를 일삼던 그는 가장 불행한 처지로 전락해버린 셈이지. 표제도 우스꽝스러웠어.
‘가장 축복 받은 크리스마스 날, 가장 재수 없는 도둑의 죽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