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 없는 도둑 12

by 양산호

‘좋아, 이제부터 지금까지와는 다른 좋은 일이 생길 거야.’

그가 중얼거린 말이 있었다면 이 정도일 거야. 그 길로 그는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어. 이건 완전범죄야. 그는 이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어. 앞에서 말한 것처럼 그는 자신이 범죄자라는 인식은 없었어. 그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했어. 언젠가 범죄소설, 탐정소설에서 읽은 대로 누구에게도 그 사실을 발설하지 않았음은 물론 운동화와 돈도 아주 잘 숨겨 놓았어. 아주 우연한 기회에도 누구에게 들켜서는 안 되는 일이었으니까.


가출 이후에도 그는 자신이 무언가를 훔치는 인간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그 버릇을 개 주지는 못했어. 오랫동안 무언가를 훔치는 데 성공하거나 실패했어. 성공했을 때는 별다른 일이 없었고, 실패했을 때는 당연히 벌을 받았지. 그것이 잘못된 행동이라는 주입을 받으면서 말이지. 하지만 그는 왜 훔치는 행동이 잘못된 것인지 여전히 깨닫지 못했어. 그 버릇이 사라져 버리고 난 뒤에도 마찬가지였어. 훔치는 것 자체에는 별다른 뜻이나 죄악이 붙을 리 없지만 사회의 질서유지라는 것과 상관된다면 그럴 수 있겠다고 인정했지만. 이런 말도 했을 거야. 누가 사람에게 땅이나 집, 나무, 동물, 금덩어리를 소유할 수 있는 권리를 주었는가.


그러던 그가 그토록 행운을 부르는 일을 그만둔 것은 굳은 결심을 하고 용맹정진을 한 결과가 아니었어. 어느 날인가부터 그는 이상하리만치 자신이 도둑이었고, 훔치는 일에 행운을 걸고 있었다는 것을 아주 깜빡 잊어버렸어. 아이와 함께 외출했다가 아이를 잃어버린 줄도 모르고 혼자 집으로 돌아온 엄마처럼 말이야. 이런 때 정신과 의사라면 사춘기의 청소년이 겪는, 두뇌나 감정이 제자리를 잡는 용트림 같은 이상행동일지도 모른다고 말할지 모르지. 어쩌면 연쇄점에서 돈과 운동화를 훔치고 난 후에 일어난 가출 때문인지도 몰라. 그는 가출로 인해 그 나이 아이들로서는 생각지도 못할 것들을 맛보게 되었고, 음지에서 보내는 몇 년 동안 죽음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거든.


이후 그의 삶에 대해서는 별로 말할 게 없을 거야. 그는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사회의 일원이 되어 회사를 다니고 매월 급여를 받는 것에 만족하며 살았어. 이를테면 사회가 정해 놓은 테두리 안으로 들어가서 안주했다고 할까. 한 번 고향을 떠난 이후 그는 다시는 돌아가지 않았어. 과거에 알던 돌이나 이파리 하나도 자신을 기억하고 있을 테니까.


신호등을 지키고 적금을 붓고, 새로운 친구들과 맥주를 마시는 날이 이어졌어. 그렇지만 그는 자신의 과거를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었어. 사회에서 매장을 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거듭 들었거든. 아마 그는 자신의 가슴속에만 그것들을 묻어두는 것이 신상에 좋겠다는 생각을 했을 거야.


그 사이 그는 한 여자를 만나서 결혼도 했고, 전세방에서 신혼살림도 꾸렸어. 곧 아이도 태어났고. 이런 그가 IMF를 맞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는 10년 이상 돈을 모아 집을 샀을 것이고, 아이들이 자라는 것을 즐겁고 흐뭇한 눈으로 바라보았을 거야. 간혹 윤색된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며 자신이 얼마나 대견스럽게 컸는지도 흐뭇하게 느꼈을 거야. 누구든 어느 고지에 올라서면 여유를 갖게 되고 지난 일 중에 좋은 것만 떠올릴 수도 있는 법이니까.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그런 여유 있는 시기가 오면 신분을 세탁한 채 지어낸 과거를 풀어내며 살기도 하고, 뜻하지 않게 오만해져 자신의 가정이 아닌 다른 곳에 한 눈을 팔게도 되니까.


IMF가 어땠는지 짐작할 수 없는 사람은 드물 거야. 그것은 그 때까지 일어났던 각종 파동이나 오일쇼크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였으니까. 많은 사람들이 실직했고, 파산한 사장은 집에서 목을 매고, 의지할 곳이 없음을 알게 된 가족은 동반자살을 택했지. 하루가 다르게 터져 나오는 부동산 경매 매물들.


처음 실직했을 때만 해도 그는 낙담하지 않았을 거야. 인생이나 사회는 살아있는 생물처럼 유기적이어서 고비라는 게 있기 마련이고, 내일 부도를 맞을지라도 낚싯대를 메고 외출하는 사장님처럼 낙관적인 태도로 살아가다 보면 다시 예전으로 복귀하기도 하거든. 그래서 그는 아내에게 이 사실을 말하지 않았어. 한국의 다른 남자들처럼 그에게도 알량한 자존심이 있었는지도 몰라. 가부장제에서 자란 남자들은 자신이 무너지면 가족이 무너진다고 여겼으니까 울고불고 하는 아내를 볼 자신이 없었던 것인지도 모르지.


그는 IMF때 많은 실직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아침이면 회사에 출근을 하는 것처럼 집을 나왔어. 그런 다음 평소 안면이 있던 철물점으로 들어갔어. 거기서 그는 등산복으로 갈아입고 가까운 산을 향해 걸어갔어. 그곳이 설악산이었는지 한라산이었는지는 몰라. 그보다 가깝고, 금방 돌아올 수 있는 낮은 산이었는지도 모르지. 그러면서 그는 차츰 자신이 움츠러들고 왜소해지고 있음을 느꼈을 거야. 음지에서 보내던 시절처럼.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 시간을 가지게 되었어. 첫 아이가 태어났을 때 느꼈던 기쁨, 승진공부를 하며 바라보던 도시의 야경, 아내와 나누었던 사랑의 순간들. 그런데 어느 순간 그는 어린 시절로 돌아갔고 자신이 도둑이었고 무언가를 훔쳤을 때 일이 잘되어갔다는 것을 떠올리게 된 거야. 순간 그는 미소를 지었고, 이렇게 중얼거렸어. 3일 굶고 남의 집 담을 넘지 않을 사람은 없는 거야. 이제부터 내겐 행운이 오는 거야. 복권이 없어도 내게 다가올 행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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