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 없는 도둑 16

by 양산호

카드연체자나 신용불량자의 원금탕감이나 이자 감면에 대한 미련이 아내에게는 남아있었나 보다.

“도덕적 해이는 저 놈들이 더 심해.”

아내는 TV를 보는 중이었다. TV에서는 정치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만남의 광장에 세워졌던 트럭을 비춰주고 있었다. 그들이 강탈해갔던 돈이 다른 곳에 쓰였더라면. 그러고는 곳간이 비었다고 한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이런 생각이었다.

순간 자기가 계산하겠다고 극구 우기는 광고 속의 한 남자가 떠올랐다. 그는 자신이 가진 것이 돈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는 듯했는데 계산은 카드로 했다. 이것도 계산해 주세요. 마지막 문구도 그랬다. 신용이 사라지면 당신도 사라진다, 라는.

그간 나는 어느 곳에 카드를 썼는가. 믿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한동안 실업자였다. 대부분은 가계부양을 위해 썼다. 가진 자들의 금융소득이 최고도로 올랐던 그때, 허리띠를 졸라매자, 금을 모아 외환위기를 극복하자고 했던 그때. 그런데 사람들이 허리띠를 졸라매었기 때문에 상황은 더 악화되었다. 모피아들 때문이었나. 아무리 큰 금융위기에도 살아난다는 대형은행들 때문이었나. 적자재정을 편성해야 한다거나 서민의 카드빚을 탕감하자는 말은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나중에 정부가 나서서 카드를 권장하며 소비를 진작시키기 전까지 상황은 좋아지지 않았다.

어디서 보았을까. 넌 참 이상한 것도 많이 읽는구나. 그게 무슨 도움이 되겠어. 너 같은 서민이 살아가는 데. 이것도 하나의 병이라면 병이다. 모리스 버만이 말한 문화가 몰락할 때 나타나는 네 가지 요인이 떠오른다. 사회적 불평등의 가속화,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비용 투자에 따른 한계이익 감소, 비판적 사고와 전체적인 지적 의식의 급격한 저하와 문맹률 확산, 비판적 사고나 지적의식보다 훨씬 더 깊은 정신적 가치의 쇠퇴와 죽음. 대안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현대의 문화 해체를 불러오는 요인은 기업주도의 소비문화다. 시장 가치나 실용주의 가치 따위가 온통 지배하는 세계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이 사회는 소비, 끊임없는 소비로 지탱될 수밖에 없었다. 끝없이 자원을 낭비하고, 새로운 물건을 사들이고. 모든 시민이 평등한 기회를 가지는 민주국가가 아니라 소수의 부자들이 모든 것을 가져가는 과두국가가 되어 가고 있었다. 식료품 살 돈이 없어 걱정할 정도의 빈곤층이 11%인 미국과 마찬가지로 중산층은 이미 몰락했다. 왜 나는 이제야 이것을 알게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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