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산에서 잠시 속력을 늦추었다가 직선도로가 나타나자, 다시 속력을 올렸다. 하지만 언제든 정체행렬과 맞닥뜨릴 수 있었기 때문에 금방이라도 설 수 있는 태세를 갖추었다. 오른쪽 도로에서 진입하는 차량들이 수시로 끼어들어 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곳이 보였다. 물금표지판도 나타났다. 조금만 더 달리면 대동이다. 크게 하나가 되는 세상은 누가 꾸었던 세상일까. 묵자였던가. 시계를 보았다. 오전 8시 10분이다. 10분이면 넉넉했다. 그런데 채 십 미터도 달리지 못해 길게 늘어선 차량 행렬을 만났다. 또 사고가 난건가. 아니면 일시적 현상인가. 하나 둘 셋 넷, 마음속으로 오십까지 세어 보기로 했다. 상류층에 속하고 싶은 욕심이 있는 사람은 결코 그런 세상을 꿈꾸지 않을 것이다. 군주제든 민주제든 인간의 내면에서 나오는 것이다. 묵자인가, 전북 진안의 누구인가. 생각이 나지 않는다. 뒷자리를 돌아보았다. 여직원은 아직 눈을 뜨지 않았다.
‘내리자, 길은 톨게이트에서 물어보기도 하고.’
트럭들을 따라 요금소 앞에 닿았다. 톨게이트 박스 안에 앉아있는 징수원에게 말을 걸었다. 그녀도 시간제 노동자였다. 나는 파견 노동자. 노동자를 위한 노동절을 정부에서는 근로자의 날이라고 바꾸었다. 무슨 이유인지 모른다. 노가다의 날이라고 하면 되는데 말이다.
“서부산쪽으로 가려고 해요. 양산으로 해서요.”
그녀는 좌회전하라고 말해주었다. 요금소를 빠져나와 양산으로 방향을 잡았다. 곳곳이 공사 중이고 출근시간대라 막히고 있었다. 성은 공씨고 이름은 사중이라. 혼자 웃었다. 연말이면 벌어지는 도로공사들. 정부라든가 예산편성이라는 게 없다면 이런 일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중앙집권적 피라미드 구조에 대해, 권력의 지배에 대해 바쿠닌도 말한 바가 있다. 바쿠닌이라고 하니 자꾸 바카스라고 하는 것 같다. 아니 자꾸 세상이 빠꾸하는 것 같다. 세상이 진보했다는 말은, 그러고 보면 허상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러다가 늦는 것은 아니야. 걱정이 됐지만 다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어린 시절이 그립다고, 독재시대로 돌아갈 수는 없다. 라면 먹기 시작했다고, 땅값 오르기 시작했다고 독재자를 찬양할 수도 없다. 그런데 독재자 고무찬양하면 처벌하는 법은 왜 생기지 않는가. 어떤 노인들은 말한다. 애들이 힘든 시절을 안 겪어 고마운 줄 모른다고. 맞는 말이다. 요새 애들은 70년대에도 빵이나 라면을 먹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거기서 출발한다. 그래서 독재 찬양하는 어른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남양산 나들목이 보이며 양산이 가까워 온다. 나들목 몇백 미터 앞에서 차들이 움직이지 않는다.
다시 한 번 뒤를 돌아본다. 여직원은 여전히 잠들어 있다. 무정한 애인 같은 정부, 그래 꼭 맞는 말이군, 그래. 아니,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이야. 자꾸 쳐다보지 마. 사랑하게 되면 어쩌려고. 나도 모르게 사랑하게 될까 두려워 고개를 돌린다. 예기치 않게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미워하는 것도 사랑하는 것도 두려운 일이다.
이제 정말 9시까지 도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시간을 줄이는 수밖에 없는데. 신호등이 바뀌고 직진차들이 달려 나간다. 우회전해서 요금소 쪽으로 핸들을 틀었다. 하지만 웬걸. 금방 차들이 몰린다. 지금껏 나는 되는 일이 없었다. 아주 사소한 것을 바랐는데도 이루어진 적이 거의 없다. 그러니 커다란 희망을 품을 수 있겠는가.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지 않으면 고독감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고 당사주에 나와 있었다. 하긴 대부분의 사람들은 팔자가 나쁘다고 한다.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주 잠시뿐인 것이다. 갑자기 불안하고 초조해진다. 빚쟁이, 카드사들이 금방이라도 집주소를 알아내고 압류 딱지를 붙일 것 같다. 그러면 내 가족은 어찌 될까? 아이들은 어디에 맡기지. 사흘 굶으면 남의 집 담을 넘는다고 했는데, 나는 어떤 인생을 살게 될까.
서부산으로 우회하시오. 대동IC 부근 사고 지체. 그때 교통방송에서 이제 막 사고차량들이 치워졌다고 말하고 있었다.
‘정보가 느리군.’
불안한 가운데 요금소에 진입했다. 서둘러 정산을 하고 양산으로 향했다. 곧 드넓은 도로가 나타났다. 언제 수많은 차량들 속에 있었는가 싶을 정도였다.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지 않다면 차들이 많이 없을 것이고, 경쟁이 치열한 사회에 살고 있지도 않을 것이다. 지구를 망가뜨리는 일등 공신, 인간에게 조물주는 그만한 역량을 주었을까.
차량이 치워졌으니까 남양산쪽으로는 빨리 빠질 거야. 그랬다가 안 빠지면 어쩌지. 서부산으로 갈까. 어차피 양쪽이 다 늦기는 마찬가지야. 그러니까 시간이 덜 걸리는 남양산으로 다시 들어가 보자. 이럴 때 누군가와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긴 김재규 부장이 남산의 부하와 의견을 나눌 수만 있었어도 육본으로 가지 않았을 거야. 결국 계획 없이 거사를 치루었던 터라 어쩔 줄 몰랐던 거야. 한 마디로 그는 왕위찬탈자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었어. 그랬다면 그는 중앙정보부로 돌아가 세력을 모아야 했어. 역사의 물길을 막는 자들을 쳐내고, 자신이 정상에 앉았어야 했어. 그러나 그는 한 번도 자신이 권좌에 앉는 모습을 생각해 본 적이 없어. 그러니 육본으로 가서 기대려고 한 거야. 역사적으로 권력을 탐하는 자는 다른 사람을 믿지 않아. 그러니까 누군가의 말처럼 대한민국 현대사를 모른 사람들은 정치를 논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야.
나는 뒷좌석을 다시 보았다. 독립선언을 기초하고 미연방을 만들었던 사람들도 어떻게 하면 무지몽매한 시민들이 지도층에게 반항하는 것을 막을 수 있을까 고심했다고 한다. 애초부터 민초의 저항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던, 가장 민주적인 국가의 헌법. 소수의 강자에게 약자가 대항하는 법은 한 가지밖에 없었다. 수적으로 우세하니까 서로 단결해서 서로를 돕는 것이다. 적어도 강자에게 세뇌 당하지는 않는 것이다. 그런데 서민들이 더 보수적이라는 얘기는 또 뭐야. 이런, 나는 크로포트킨이 아니야!
그런데 남양산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경악했다. 물금에서 내리기 전과 다름없는 상황이 눈앞에 펼쳐졌다. 개미에게 물린 사냥꾼처럼 나는 서둘러 남양산 나들목을 향했다. 그 이후로 어떻게 부산에 도착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왜 다시 혼잡한 구덩이 속으로 뛰어들었는지 설명해줄 수 없다. 말할 수 있는 것은 나는 시간에 쫓기고 있었고, 기다리는 동안 반정부적 사고를 했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환영받을 수 없는 그 생각. 그것은 어떻게 솟아났을까. 내가 별난 인간이기 때문에? 아니다. 이런 사고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고, 이것이 집단적 무의식 가운데서 나온 것이라는 것, 이 세상은 어찌됐든 조화를 지향하고 있다는 것으로 설명이 될까. 우리는 좀 더 나은 정부를 가질 권리가 있고 나은 정부가 불가능하다면 부패한 정부를 전복시켜야 한다. 이건 누가 한 말인가. 삼종지도나 장유유서처럼 교과서에서 배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