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에 창덕궁 가자
거기 예쁜 꽃 펴서 되게 예뻐
친구에게 이런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단 두 줄 뿐인 말을 여러 번 읽었습니다. 쉽게 감상에 빠지는 편이지만, 좋은 말은 매번 손끝이 간지러울 만큼 민망하게 좋습니다. 지금도 괜히 손끝을 문지르며 글을 쓰고 있습니다.
두 달 전, 다자이 오사무의 창작집 <만년>을 읽었습니다. 책 표지에는 흰색 눈꽃이 그려져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겨울에 어울리는 책이더군요. 다시 책장을 덮고 몇 달 뒤에 다시 열어볼까 하다가도 단편 하나하나가 끝날 때마다 아쉬워져 멈추지 못하고 더듬더듬 읽었습니다.
추분이 지나 밤과 낮의 길이는 같아졌지만, 여전히 여름의 기운이 남은 9월 말에 전 이런 글을 옮겨 적었습니다.
죽을 생각이었다. 올해 설날, 옷감을 한 필 받았다. 새해 선물이다. 천은 삼베였다. 회색 줄무늬가 촘촘히 박혀 있었다. 여름에 입는 옷이리라. 여름까지 살아있자고 생각했다._ 다자이 오사무 <잎>
적으면서도 ‘아, 역시 새해까지 아껴둘걸.’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추운 계절에 읽었다면 오사무와 함께 삼베옷을 기다릴 수 있었을 텐데요.
아쉬움과는 별개로 두 달간 어떤 고민을 했습니다. 나도 이 더위가 완전히 가시기 전에 가을을 살아낼 선물을 준비해야겠다 생각했습니다.
‘다음 가을을 살기 위해 뭘 선물해야 할까.’
이렇게 적힌 메모장을 자주 보며 부지런히 고민했던 것 같은데,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면 저도 모르게 조급해졌던 것 같은데,
어느새 영락없는 겨울이네요.
그리고 친구의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친구는 가끔 실없이 단락을 나눠 메시지를 보내는 데, 이번엔 하필 제 호흡에 딱 맞아서 더 여러 번 중얼거리게 되었습니다.
저는 다음을 기약하는 말이 좋습니다. 어떤 조건도 없는 청유가 좋습니다. 그래서 자주 계획 없는 기약을 남발하곤 했는데 요즘은 이런 습관을 자제하고 있습니다. 매번 기약한 다음을 절대 잊지 않는 친구의 다정함이 부럽거든요. 친구는 분명 꽃샘추위가 끝나기 무섭게 말을 꺼낼 겁니다. 창덕궁에 가자고. 그럼 저는 그제야 봄이구나 하며 친구를 따라나설 겁니다.
친구는 알까요. 제가 이 메시지를 받고 흠칫했다는 걸, 그 흠칫한 감각이 좋아서 지금까지도 손끝을 문지르며 떠올리고 있는 걸 알까요. 친구의 다정함에 맞받아칠 다정함이 제겐 없어서 한참 동안 고민하다가 시답잖은 말로 답장한 걸 알까요.
예쁘단 말이 두 번씩이나 나온 창덕궁이 기대돼 봄까지 예쁘게 살아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