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된 오누이

호랑이와 수수밭

by 강유원

(…) 호랑이에겐 오누이가 필요했다. 늘 배가 고팠다. 떡 한두 개로는 부족했고, 한 바구니도 부족했고, 오누이의 엄마로도 부족해 오누이를 찾아갔다. 달밤에 산 너머 작은 집까지 찾아갔다. 성대를 쥐어짜 가늘게 목소리도 내봤고, 손에 하얀 분칠도 해봤다. 각고의 노력 끝에 오누이를 볼 수 있었다. 도망치는 오누이를 쫓았고 결국 망할 동아줄 때문에 죽었다. ​


욕심은 호랑이에게 주어진 개념이 아니었다. 초원의 모든 동물을 먹다 배가 터져 죽어도 호랑이는 배가 고팠던 호랑이일 뿐이다. 정말로 그러하니, 오누이는 호랑이에게 욕심이 아니었다. ​


하늘로 올라간 오누이는 해와 달이 되었다고 했나. 동아줄의 주인은 그렇게 쉽게 오누이를 데려갔다. 달빛 아래서 호랑이는 해만 기다렸다. 해가 뜨면 세상에선 맛있는 냄새가 났다. 노곤노곤한 땅에서는 구수한 누룩 냄새가, 한적한 지붕 위에선 고릿한 장 냄새가, 푸른빛 햇볕에서는 기분 좋은 단 냄새가 났다. 해가 뜨면 배가 덜 고팠다. ​


죽어도 해가 되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그게 싫어서 오누이를 죽이려 했을지도 모른다. 부디 누군가는 해가 되어 그 자리를 서둘러 채워줬으면 해서. 이렇게 지원자들이 많으니 부디 나만은 해가 되지 않게 해달라는 간접적인 청탁이었다.

(…) 호랑이는 배가 고파 죽었다. 엄마가 준 떡 바구니를 먹지 말았어야 했어. 오누이가 손을 내밀어보라 했을 때 거부했어야 했어. 그만둬. 무의미한 가정은 그만둬, 오누이는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애들아, 왜 내 가정은 무의미할까. 난 의미 있는 가정이란 게 뭔지 전혀 모르겠어. 무슨 생각을 해야 의미 있는 가정이 되는 거야. 가정을 고치는 건 의미 있는 건가. 가정을 고친다고 가정하면 결말이 바뀌었을까. 내 가정에 의미를 좀 줘. 튼튼한 동아줄을 줘.

눈앞에 떨어진 밧줄은 좀먹은 고목처럼 너절했다. 비참하게도 그러했다. 기름칠 된 나무를 도끼로 찍어가며 겨우 올라온 호랑이는 자신이 무엇을 붙잡았는지 절대 모를 거라는 기만이었다. ​


하지만 호랑이가 몰랐던 건 자신이 태어난 이유 딱 하나뿐이었다. 그마저도 오누이를 만난 후엔 의미 없는 의문이 되었다. 동아줄을 잡는 호랑이의 손엔 망설임이 없었다.

마침내 동아줄은 끊어졌고 호랑이는 떨어졌다. 너덜너덜한 동아줄을 세게도 쥐었던 손엔 새하얀 분칠이 남아있었다. 오누이가 어머니로 착각했던 하얀 손이었다. 욕심이 없던 호랑이에게 후회도 없었을까.

혼자 있는 밤이 무섭다는 누이의 말에 오누이는 서로 역할을 바꿨다. 누이동생은 해가 되었고, 오라비는 달이 되었다. 우애 좋은 동화의 끝에서 호랑이는 빌었다. 이왕 떨어지는 거라면 동아줄이 되고 싶다고. 하얀 분 자국이 찍힌, 그리고 썩은, 그리고 끊긴 동아줄. 너무 세게 쥐어 바스러지기 직전인 그 동아줄이 되어 호랑이의 마지막 얼굴을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동아줄의 주인은 조용했지만 호랑이는 계속 빌었다. ​


그날 밤 호랑이는 추수를 마친 수수밭에 떨어졌다. 뾰족한 수숫대 위에 호랑이의 피가 물들었고, 그 뒤로 수수의 잎과 줄기가 붉어졌다는 전설이 내려왔다. ​


수수는 매년 가을이면 하늘에 닿을 듯 높게 자랐다. 무거운 머리에도 꺾이지 않고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수확철이 지나면 농부들의 무딘 낫에 비스듬히 잘려나갔다. 작은 밭에선 손으로 대를 꺾어 밟아버려 낫도 필요 없었다. 하늘을 향해 날카롭게 벼린 수숫대는 또다시 동아줄을 잡을, 어느 배고픈 호랑이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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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결국 수수밭이 붉은 이유를 설명하려 애꿎은 호랑이가 이용당한 것 같아 맘이 좋지 않습니다. 전래동화는 늘 그렇지만요.​


호랑이의 동아줄이 조금만 멀쩡했더라면 호랑이는 오누이보다 더 빨리 하늘에 도착해 그들을 환영했을지도 모릅니다. 산을 훌쩍 넘어 다니는 호랑이의 체력과 오누이를 속이려 바른 탄마 가루라면 로프 클라임 정돈 쉬웠을 테니까요.

다시 생각해도 썩은 동아줄은 너무하네요.